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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인산 Aug 27. 2020

오월의 달밤 문학산을 걷다

해 질 녘 신포역으로 향하는 길은 화살처럼 쏟아지는 햇살에 얼굴이 따갑다. 새로 개통된 수인선 신포역은 넓고 산뜻한데 초저녁 플랫폼엔 인적이 드물다. 지하철에 오르니 벤치처럼 긴 좌석들엔 한 줄에 한두 명씩 널찍하게 자리들을 차지했다.


원인재역에서 인천지하철 1호선으로 갈아타고 두 번째 역인 선학역에서 하차했다. 이른 저녁 역 주변엔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 등산복 차림의 초로들,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들,... 나이나 행선지는 달라도 발걸음은 다들 급할 것 없다는 듯 느긋하다.


선학역 3번 출구에서 산행 들머리인 법주사로 가는 좁은 골목엔 식당, 주점, 노래방, 슈퍼 등 점포들이 형형색색 화려하게 전광판의 불을 밝혔고 시원스레 벽이 트인 주점엔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 앉아 잔을 기울인다.


산행 들머리엔 선학산 법주사(仙鶴山 法住寺)라는 현판이 걸린 일주문만 덩그러니 서있고 정작에 사찰은 어디인지 보이지 않아 의아하다. 나지막한 일주문 옆길로 들어서니 '연수 둘레길' 안내도가 초행자에게 갈길을 알려준다.


그 옆 널찍한 공간에서 걷기 열풍 때문인지 동호회 회원들이지 싶은 일단의 무리를 비롯하여 적지 않은 사람들이 걷기에 나설 채비를 하고 있다. 어두운 밤 산길을 홀로 청승맞게 걷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은 괜한 걱정이었다.


시나브로 어둠이 짙어지는 산길은 갈마산, 문학산, 삼호현 고개, 연경산, 옥련 국제사격장으로 이어졌고, 며칠 후엔 흠집 하나 없는 쟁반처럼 완벽하게 부풀어 오를 꿈을 품은 상현달에 의지해서 길을 잡았다.


봉우리들은 모두 해발 1~2백여 미터로 나지막하지만 갈마산으로 오르는 계단은 어둠 속에 묻혀서 끝이 보이질 않는다. 잘 자란 나무 숲 사이로 문학 월드컵 축구장이 하얀 돛대를 펼친 범선처럼 우아한 모습을 드러냈다. 몸을 돌려 방향을 바꾸면 산 아래 마을의 불빛 저 너머로 융단을 깔아놓은 듯 신비롭게 빛나는 송도 신도시 빌딩 숲과 인천대교가 황홀한 야경을 선사한다.


출입이 통제된 문학산의 정상 바로 아래 목둘레로 터놓은 잔교를 지나서 삼호현(三呼峴)으로 내려가는 계단은 어둠 속에 잠겨 바다처럼 깊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짙은 연기 내음은 문학동과 청학동을 잇는 삼호현 고갯길을 타고 올라와서 갈 길을 잃었는지 흩어지질 않는다. 숲길 공기는 더없이 상큼한데 그 반은 아카시아 꽃을 행군 내음이요 나머지는 어둠과 고요와 달빛이 채운 듯하다


우리 산천은 산 많고 고개 많다 보니 그에 얽힌 얘기들 또한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삼호현도 예외는 아니다. 삼국시대 중국을 오가던 백제 사신들이 배웅하는 가족들과 이별하고 이곳에서 헤어진 가족을 세 번 불러본 후 능허대(凌虛臺)로 가서 배에 올랐다고 한 데서 유래한 이름이라고 한다. 한 번 가면 돌아올 기약이 없었을 사행(使行) 길은 고달프고 이별은 쓰라렸을 터이니 마음속으로는 가족들을 수 십 번 수 백 번도 더 불렀지 않았을까?


삼호현에서 연경정으로 오르는 계단 길도 달빛을 가린 숲의 어둠에 묻혀 끝없이 높아 보인다. 숲길 옆으로 때를 만나 무성히 자란 나뭇가지와 잎사귀, 간간이 나타나는 기암괴석들이 손전등 불빛을 받아 만들어 낸 기괴한 모양의 그림자들로 불쑥불쑥 튀어나와 가슴을 쓸어내리게 한다.


사람들도 미래의 일에 있어서는 볼 수도 알 수도 없기 때문에 힘들어하거나 두려워하기도 한다. 또 일어나지도 않을 일을 걱정하며 지레 포기하기도 하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계단을 오르니 어둠 속에서 연경정(衍慶亭)이 또렷이 눈앞에 나타나며 반긴다.


문학산이 품은 여러 동네들은 멀리 가까이서 또는 높거나 낮게 옹기종기 모여 앉아 고달픈 하루를 마감하고 내일을 꿈꾸며 잠들 준비를 한다. 옥련동으로 내려서는 길목에 다다르면 산행길 동무가 되어 준 소쩍새 소리는 아득히 멀어져 가고 동네 개울에서 들리는 개구리울음소리는 점점 커진다.


귀로에 들른 송도역은 동네에서 멀찍이 떨어진 산 밑에 위치해 있는데 규모가 남다르게 크고 시설도 산뜻하다. 한창 진행 중인 주변의 개발을 염두에 두었을 것이다. 봄날은 짧아도 잠 못 드는 이들에게 오월의 밤은 잦아들 줄 모르는 개구리울음소리 마냥 길고도 길 것이다.


#오월 #인천 #문학산 #산책 #산행 #삼호현 #송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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