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을 함께 하기로 한 친구가 사당에서 산행 버스를 놓쳐 잠시 마음에 먹구름이 몰려왔다. 연풍 IC에서 국도 3호선으로 내려섰다. 끌거나 느릿느릿 페달을 밟으며 구불구불한 이화령 고갯길을 오르는 라이더 몇 명이 눈에 띈다.
두 시간쯤 걸려 도착한 이화령은 안개로 흐리다. 소백산맥 조령산과 갈미봉 사이에 있는 해발 548m 이화령은 옛 조령을 대신해서 중부와 영남을 잇는 주요 교통로다. 국도 3호선과 중부내륙고속도로 터널이 뚫리며 실용과 멀어졌지만 '백두대간', '국토종주 자전거길' 등이 옛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백두대간 이화령을 출발하다.
이번 산행은 코스 잡기가 애매하다. 스무 명 남짓 산객들은 주어진 8시간 동안 조령산과 주흘산을 두고 각자 코스를 정해야 한다. 이화령 휴게소를 출발해서 조령산, 신선암봉, 조곡관, 꽃밭서들, 주흘산, 혜국사, 여궁폭포를 지나 제1관문 주차장으로 내려서는 코스를 마음속에 그렸다.
'백두대간 이화령'이라 쓰인 훤칠한 이정표 옆 생태통로 아래를 지나 들머리로 올라서서 '이화정' 정자를 스쳐 지난다. 단독 산행하는 한 분과 초입에서 어쩌다 동행하며 발을 맞추게 되었다. 호타준족의 고 장효조 선수의 고교 동문이라는 십 년쯤 연배인 그분은 십여 년 만에 조령산을 다시 찾았단다.
출발 후 1km쯤 능선 아래로 비껴 지나는 길은 그리 가파르지 않지만 준족처럼 가벼운 그분 페이스에 맞추기가 버겁다. 앞서 걷던 선두 주자 그룹을 따라잡을 즈음 걸음을 늦추며 벌써 흥건해진 이마와 목덜미의 땀을 훔쳐냈다.
늦춘 걸음을 비껴 산객 네댓 명이 지나쳐 간다. '부부는 서로 닮는다.'는 말도 있듯이, 산행에서도 자기보다 더 뛰어나거나 특출난 사람보다는 자기와 비슷한 사람이 가장 좋은 동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차고 상쾌한 조령 샘물은 갈증을 달래주고... 고도가 400미터 가까이 올라 900m를 넘을 즈음 어깨를 짓누르는 배낭을 벗고 호흡을 가다듬었다. 이화령 기점 2km쯤 능선으로 향하는 길목에 조령 샘이 산객을 맞는다. 수량이 풍부한 샘물은 차고 상쾌하다. 페트병에 물을 받아 배낭에 챙겨 출발하는 세 분 말미에 붙었다.
산행 스타일이 나와 닮은 듯 일행 말미에서 느긋하게 걷는 한 분과 발을 맞췄다. 제천에서 오셨는데 조령 제3관문-새재길 코스를 예정하고 있단다.
주 능선 위쪽은 안개에 덮여 보이지 않는다. 한참 동안 나무계단을 올라 헬기 착륙장이 나오고부터는 길이 평탄하다. 안개는 금방이라도 이슬비가 되어 내릴 듯 짙고 곧게 뻗은 소나무 솔잎에 맺힌 물방울이 가끔씩 머리로 떨어진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걷던 젊은 여성 산객 한 분은 지친 기색 하나 없다. 친구들이 산행을 싫어해서 혼자서 왔더란다. 조령산과 주흘산을 모두 오르겠다는 계획이 당차 보인다. 젊을 때를 돌아봐도 힘겹고 무미건조한 산행을 즐겨한 기억이 별로 없다.
이화령에서 3km 남짓 지점 해발 1017미터 조령산 정상에 올랐다. 정상 표지석 앞뒤에 한글과 한자로 산 이름과 고도가 적혀 있다. 산정 가장자리 나무 옆에 앉아 숨을 고르고 있는 앞서 갔던 그 여우(女性山友)는 변함없이 밝은 얼굴에 지친 기색 하나 없다.
"들꽃처럼 산들산들 아무것도 없었던 것처럼 영원한 자연의 품으로 떠난 지현옥 선배를 기리며"
정상 한편에 1993년 한국인 여성 처음으로 에베레스트에 오른 산악인 고 지현옥을 기리는 푯대가 자리한다. 1999. 4. 29일 엄홍길 대장에 이어 안나푸르나 등정 후 하산 중 실종되었다고 한다. 논산 출신으로 충주 서원대 산악부 출신인 그녀를 '충북 산악인'으로 부르는 후배들이 세운 것으로 보인다.
조령산 정상에서 380m 지점에 신선암봉과 마당바위 갈림길이 나온다. 이정표 옆에 "제3관문까지 힘든 3.3km 암릉구간이라 체력이 약한 분은 마당바위 쪽으로 하산하라"는 안내문이 있다. "가능하면 주흘에서 보시죠. 조심해서 가세요." 마당바위 쪽으로 내려서는 여우에게 한 마디 하고 지친 몸을 다독이며 신선암봉 쪽으로 길을 잡는다.
내려가고 오르는 가파른 계단 길이 반복된다. 앞쪽으로 점점 안갯속으로 희미해지는 산군이 겹겹 늘어서 있다. 거친 암릉으로 이어진 봉우리들이 우뚝 우뚝 앞을 막아선다.
칼날처럼 좁게 날 선 암릉과 가파른 계단을 오르내리는 길이 힘겹지만 시시각각 장쾌한 전경을 내놓는다. 백두대간 종주 산객들이라면 필시 험하지만 잊지 못할 이 길을 지났을 것이다.
좌우로 산자락부터 산정까지 암벽을 드러낸 저 봉우리가 필시 해발 937m 신선암봉일 것이다. 제법 너른 정상의 비스듬히 기울어진 암반 위에 서있는 무릎 높이 표지석이 소담하다. 중천에 오른 해가 안개를 물리고 따갑게 내려쬔다. 전망이 으뜸이라는 말은 허언이 아니었다.
반대쪽에서 올라오는 일단의 산객을 피해 신선암봉을 뒤로했다. 신선암봉을 벗어나서부터는 계단길도 드물어지고 암벽 위 나무에 덜렁 밧줄 하나를 묶어 놓은 곳도 한 둘이 아니다. 암벽에 박아 놓은 철심을 밟고 밧줄에 의지하며 이 봉에서 저 봉으로 오르내리기를 수 차례 반복한다.
스쳐 지나는 산객과 주고받는 말 한마디가 산행의 고통을 덜어주고 힘을 북돋워 준다. 모자 사이로 보이는 산객은 가벼운 인사에 말 대신 미소로 답한다. 팔이 빠질 듯 아프고 어깨가 무겁다. 번번이 배낭을 내리고 음료수 과일 등도 간간이 꺼내어 무게를 줄이고 허기도 달랬다.
마당바위 쪽으로 향했더라면 가능했을 주흘산 코스 연계 산행은 단념키로 마음을 고쳐 잡았다. 시간에 쫓길 일도 없으니 마음이 느긋하다. 신선암봉에서 암릉을 오르내리는 길 1.5km 여를 걸었다.
문경새재 제2관문과 제3관문의 갈림길 부근에서 길이 명확하지 않다. 이리저리 길을 찾는 반바지 차림의 젊은 산객이 눈에 들어온다. 달랑 작은 어깨 가방 하나를 메고 있다. 좁은 안부의 이정표를 찾아 그 친구와 나란히 앉았다. 과일, 에너지바와 함께 얘기를 건네니 수안보에서 여기까지 걸어왔더란다. 젊음은 겁이 없고 엉뚱해서 용감한 것인지도 모른다.
이제 하산길이다. 바위틈과 밧줄을 타는 구간을 지나고 가파른 흙길도 지나며 고도가 뚝뚝 낮아진다. 미끄러운 흙길이 봉황산에서 부석사로 내려가던 옛 기억을 소환한다.
"소백산 고치령 마구령 갈곳산 봉황산으로 이어지는 무미건조한 산행, 그 끝에 마주한 벅찬 보너스 부석사여!"
더러 땅에 떨어지기도 했지만 진달래꽃이 싱그럽던 능선과 달리 하산 길목엔 분홍 철쭉꽃이 초록 잎사귀 속에서 돋보인다. 꽃과 잎의 색깔은 보색이지만 저렇듯 서로 아름답게 어울리니 극과 극의 조화야 말로 아름다움의 극치가 아닌가 싶다.
해발 550여 미터쯤 무덤 하나를 지나서 아래쪽에서 물 흐르는 소리가 시원스레 들리는가 싶더니 이내 조곡관 위쪽 해발 440m쯤 새재길로 내려섰다. 길 옆에 계곡 너머 주흘산 부봉으로 가는 길을 알리는 이정표가 서있다.
조곡천과 나란히 난 숲길에는 봄의 끝자락을 놓치지 않으려는 듯 여유로운 발걸음에 마스크를 낀 상춘객들이 적지 않다. 픽업까지 두어 시간 이상이 남아 있어 마음이 느긋하다. 길 옆 계곡에 발을 담그니 얼음장같이 찬 물이 산행의 피로를 잠시 잊게 한다.
"문경새재 넘어 갈제 구비야 구비야 눈물이 난다."
큰길 옆 '한시(漢詩)가 있는 옛길'을 따라 조선조 선현들이 문경새재를 넘으며 남긴 시들을 감상해 본다. 이언적, 김성일, 정약용, 김만중 등 많은 선현들의 시 한 편 한 편에는 저마다 절절한 사연과 감회가 묻어 있다. "문경새재 넘어 갈제 구비야 구비야 눈물이 난다."문경새재 아리랑은 땀과 눈물로 얼룩진 듯 구슬프다.
높고 험해서 새도 넘기 힘들다는 문경(聞慶) 새재(鳥嶺)를 과거길 선비들은 기쁜 소식 듣기를 고대하며 넘었다고 한다. 조곡관과 영남제일관을 지나 새재를 빠져나왔다. 한 그릇 냉콩국수와 식당 여주인의 살가운 사투리가 허한 산객의 마음을 메워준다. 차에 올라 눈을 감는다. 꿈속에서라도 기쁜 소식을 고대해 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