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과 가을에 물든 남한산성

성남 누비길 제2-1구간, 남한산성에서 이배재까지

by 꿈꾸는 시시포스

반쪽씩 쪼개어져 밤새 소금에 절여져 있던 배추가 순이 죽어 거실 한쪽 대야에 다소곳이 쌓여있다. 아내가 근처에 사는 처형들과 각자 김장을 하기로 한 날이라 어제 미리 준비를 해둔 터였다.

모란에서 버스를 내려 8호선 전철로 갈아타고 남한산성역에 도착한 후 다시 버스로 대여섯 정거장을 지나니 산성 체육공원에 닿았다.

김장을 돕기로 단단히 마음먹고 있었는데 날씨도 좋고 단풍도 절정이니 근처 산에라도 다녀오란다. 극구 사양을 해도 평소답지? 않은 아내의 넓은 아량에 등 떠밀려 못 이기는 척 '간 큰 남자'가 되어 주섬주섬 배낭을 챙겨 집을 나선 것이다.


예전 코스와는 달리 사람들이 드문 영도사 쪽으로 오르는 길을 택했다. 대웅전과 산신당 두 채만 들어선 단출한 절집에 비해 산비탈을 등지고 서있는 미륵불은 고개를 젖혀야 용안을 뵐 수 있으리만치 큰 키로 우뚝 서 있는데 맑은 가을 햇살에 투명하게 빛나는 자태가 아름답다.

미륵불은 석가모니 열반 후 56억 7천만 년 후에나 사바세계에 출현하여 모든 중생을 교화한다고 하니 오실 날이 까마득한데 마음속으로 키운 미륵 세상에 대한 열망이 얼마나 컸으면 중생들은 저리도 큰 미륵불을 세웠을까.

산 능선을 옆구리에 끼고 앉은 영도사를 비껴지나 산정으로 난 능선길로 들어서니 반대편 기슭을 타고 불어오는 바람에 목덜미가 시리도록 차고 상쾌하다.


바닥에 수북이 쌓인 참나무 잎사귀는 능선을 타고 불어오는 바람에 서로 앞다투어 구르며 소란스럽게 아우성이다. 건너편 골짜기엔 지난봄 들렀을 때 마당 한편에서 자목련이 한창 만개하던 약사사가 아늑하게 자리하고 있다.

남한산성 남문인 지화문을 둘러보고 남쪽 검단산으로 발길을 돌렸다. 그 정상으로 가는 길은 능선을 따라 포장된 도로로 산정까지 이어진다.


산마루 아래 둘레에 쳐져있는 녹슨 철조망에 '과거 지뢰지대' 라 적힌 경고 푯말이 군데군데 붙어있다. 과거 어느 땐가 매설되었을 지뢰가 아직껏 제거되지 않아 현재 진행형 '위협'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지뢰든 빚이든 역사든 일방에게 아픔과 괴로움이 되는 것들은 곪아 터지기 전에 청산되어야만 한다. 그래야만 고통을 야기한 자와 고통받는 자 사이의 원망과 불신은 사그라들고 언젠가는 서로 소통하고 손도 내밀 수 있는 여지가 생길터이니...

군 시설이 차지한 산정을 비껴지나 이배재 고개 쪽으로 걷다 보면 망덕산이 맞이한다. 그 정상에 닿으니 끝자락 가을의 낮은 짧아 벌써 해가 서쪽 청계산 마루에 걸렸고 반대쪽 동편으론 상현달이 이마 위 하늘에 말갛게 떠 올랐다.

인적이 끊길듯한 시각 이배재 쪽에서 산성 방향으로 향하던 등산객 한 분이 돌조각 하나를 주워서 아이 키만 한 돌무더기 탑 맨 위에 조심스레 더해 올려놓으며 손을 한 번 모으고 서둘러 지나간다.

숲에 서로 어울려 무성한 소나무, 떡갈나무, 참나무, 오리나무,... 종류별로 또 같은 이름의 나무들도 저마다 각기 다른 독특한 모습으로 서서 으스름한 초저녁 석양을 지켜보고 있다.


이배재 고갯마루로 내려서니 푸드트럭 짐칸 그릴에서 손바닥 만한 크기의 통닭들이 먹음직스럽게 익어가고 있다.

옛 과거길 이 고개를 넘으면서 임금이 있는 북쪽과 부모가 계신 고향 쪽을 향해 각각 한 번씩 두 번 절을 한 데서 유래했다는 이배재에 배어있는 충효의 정신은 지금도 버릴 수 없는 금과옥조의 덕목이다.

모란행 버스를 기다리며 치킨 두 마리를 사서 배낭에 넣었다. 김장이 우리 집 '지뢰'가 되지 않길 바라며 아내의 노고에 작은 위로라도 될까 하는 마음으로.

언제 켜졌는지 가로등이 산 아래로 굽이진 고갯길을 따라 불을 밝혔고 산은 서서히 어둠 속에 몸을 감추기 시작한다. 버스에서 내린 모란은 골목골목마다 사람들로 북적대며 활기가 넘친다. 20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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