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본행 야간열차를 타고, 내 인생의 기차역을 돌아보다. 삶의 어느 지점에서 문득 이런 질문을 마주합니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삶은, 내가 택한 삶인가?
영화 <리스본행 야간열차 (Night Train to Lisbon, 2013)>는 바로 그 질문에서 시작됩니다. 스위스의 고전 문헌 교사, 라이문트 그레고리우스는 매일 반복되는 지극히 단조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자살을 시도하던 여인을 구하게 되고, 그녀가 남긴 책과 리스본행 기차표를 통해 전혀 예상치 못한 여행을 시작합니다. 그가 탄 야간열차는 단지 공간을 이동하는 수단이 아니라, 삶의 궤도를 바꾸는 열차였습니다.
아마데우의 문장, 나의 질문
그레고리우스는 책의 주인공인 포르투갈 철학자이자 의사인 아마데우 드 프라두의 흔적을 따라 리스본 곳곳을 여행하며, 그가 남긴 문장들과 마주합니다.
우리는 모두, 우리가 살지 않은 삶에 대해 어떤 아쉬움을 갖고 있지 않은가?
이 문장은 내 가슴에도 깊이 박혔습니다.
한국과 미국 양국에서의 교육과 여러 직업을 거쳐, 그리고 지금, 세계를 여행할 준비를 하며 살아가는 이 시간 속에서 나는 종종 이런 질문과 마주하곤 했습니다.
과연 나는 나답게 살아왔는가?
그리고 이젠 이렇게 대답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나는 내가 ‘살아야 했던 삶’을 살았고, 지금은 내가 ‘살고 싶은 삶’을 살아가려 한다.
내 인생의 기차역들
영화 속 리스본은 단순한 도시가 아닙니다.
과거와 현재, 기억과 회한이 겹쳐지는 정신의 풍경입니다. 그레고리우스가 리스본에서 아마데우의 흔적을 쫓는 것처럼, 나 역시 지난 삶의 여러 ‘기차역’을 떠올려 봅니다.
풍기, 수원, 안산, 콜럼비아, 세인트루이스… 그리고 앞으로 다녀올 수많은 도시들 – 그곳마다 내 선택과 꿈, 회한과 배움이 서려 있습니다. 이제 나는 ‘야간열차’에 올라, 인생 후반부의 기차역들을 향해 떠납니다. 그 여정은 가벼우면서도 의미 있고, 느리지만 확실한 슬로우매드(Slowmad)의 길입니다.
떠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에게, 야간열차는 언제든 있다. 이 영화는 극적인 사건 없이도 묵직한 울림을 주는 작품입니다. 철학적 사유와 아름다운 리스본의 풍경, 그리고 사람의 내면을 관통하는 질문들이 조용히 다가와 오래 남습니다.
어쩌면 우리 인생은 언제나 선택되지 않은 또 다른 삶들과의 조용한 이별 속에서 흘러가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중요한 건, 지금이라도 내 삶의 방향타를 스스로 쥘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나는 이제, 기차를 탑니다. 내가 설계한 인생의 노선 위로 천천히 달려가는 이 열차는 나를 결국, 내가 사랑하는 삶으로 데려다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