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이야기를 먼저 꺼내야 하는 이유
황혼의 계약 동거에서 가장 조심스러운 주제는 돈이다. 좋아하는 마음은 충분하지만, 생활을 함께 하다 보면 결국 부딪히게 되는 문제다. 특히 재산, 연금, 상속 같은 민감한 부분은 시작할 때 명확히 해두지 않으면 작은 불편이 큰 상처로 돌아온다. 나는 이런 이야기를 계약서의 중요한 항목으로 삼는다. 좋아서 만났지만, 돈 때문에 사이 나빠지지 말자는 원칙 아래에서다. 감정을 보호하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은 오히려 돈 이야기를 먼저 꺼내는 것이다.
자산은 철저히 독립적으로 관리한다
가장 기본이 되는 원칙은 각자의 자산은 각자가 관리한다는 것이다. 동거를 한다고 해서 서로의 재산을 공유하거나 간섭할 이유는 없다. 서로의 노후 자금은 각자가 준비한 인생의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계약서에는 이렇게 명시한다.
계약 동거 중에도 각자의 자산과 금융 거래는 독립적으로 유지한다.
부동산, 금융자산, 개인 물품 등의 소유권은 각자의 명의로 관리한다.
공동 명의 자산은 원칙적으로 생성하지 않는다.
이렇게 해두면 불필요한 오해나 기대를 줄일 수 있다.
서로가 각자의 경제적 독립성을 지키는 것이야말로 가장 성숙한 관계다.
연금은 생활비, 합의 후 함께 쓰는 돈
반면 연금은 조금 다른 성격을 가진다. 연금은 말 그대로 노후의 생활비다. 함께 사는 동안 생활비를 나누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래서 연금은 계약을 통해 합의된 범위 내에서 공동 생활비로 사용하는 것이 원칙이다.
각자의 연금 수입에서 일정 비율을 생활비로 공동 분담한다.
생활비 사용 내역은 상호 투명하게 공유한다.
연금 외의 자산(저축, 투자 등)은 원칙적으로 개인 용도로 사용한다.
이렇게 하면 얽히지 않으면서도 필요한 부분은 함께 할 수 있다. 서로의 자존심을 지키면서 동거 생활의 실질적인 부분을 조율하는 지혜다.
상속은 건드리지 않는다
가장 민감한 부분은 상속이다. 자녀가 있는 경우, 동거 파트너가 상속 문제에 얽히는 것은 대부분의 갈등을 부르는 지름길이다. 따라서 상속에 대해서는 명확한 선을 긋는 것이 필수적이다. 계약서에는 이렇게 적는다.
각자의 자녀 및 가족에게 귀속되는 상속 재산에 상호 간섭하지 않는다.
서로를 법적 상속인으로 지정하지 않는다.
사망 후 재산 처리 및 상속 절차는 각자의 가족 및 법적 대리인을 통해 진행한다.
중요한 것은 이 합의를 서로의 자녀들에게도 명확히 알리는 것이다. 우리는 동거 파트너일 뿐, 상속 문제에는 일절 관여하지 않는다. 이 사실을 자녀들이 이해하고 받아들이도록 투명하게 공유해야 한다. 그래야 추후 발생할 수 있는 불필요한 오해와 갈등을 예방할 수 있다.
계약 동거는 사랑의 거래가 아니다. 오히려 서로를 존중하기 위한 최소한의 약속이다. 자산은 철저히 독립적으로, 연금은 합의 후 생활비로, 상속은 무관한 문제로 선을 긋는 것. 이런 명확한 조율이야말로 황혼 동거를 오래도록 평화롭게 유지하는 방법이다. 사랑은 마음으로 하지만, 평화는 약속으로 지킨다. 계약서 한 장이 지켜주는 그 평화 속에서, 우리는 비로소 진짜 동반자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