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사회는 겉보기엔 여전히 전통적 가족주의가 강한 나라처럼 보인다. 혼인, 자녀, 3세대 가족이 중시되고, 제례와 호적을 통해 혈연 중심의 유대가 강조되는 문화 속에서 계약 동거란 개념은 다소 생소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실상은 조금 다르다. 고령화와 1인 가구 증가, 미혼의 일상화 속에서 일본 역시 새로운 가족 형태를 모색하고 있으며, 그중 하나가 바로 실용적인 동거, 특히 황혼기의 동반자 관계다.
일본의 고령자들은 단순히 외롭기 때문이 아니라, 생활의 효율성과 건강, 경제적 안정, 정서적 지지를 이유로 동거를 택한다. 그리고 이러한 동거는 반드시 사랑이나 결혼을 전제로 하지 않는다. 동반자라는 개념이 보다 중요해진다. 함께 밥을 먹고 병원에 동행하며, 혹시 모를 응급 상황에 서로를 돌볼 수 있는 생활 동반자로서의 관계. 일본은 이를 조용하지만 꾸준히 받아들이고 있다.
일본에서 황혼기의 재혼은 생각보다 낮은 비율을 보인다. 특히 여성은 경제적으로 어느 정도 자립한 경우, 재혼보다는 동거 또는 친구 이상의 친구 형태를 택하는 일이 많다. 재혼에 따른 상속 구조의 복잡함, 전 배우자 가족과의 관계 부담, 사회적 시선 등 다양한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대신 나카요시 구라시(仲良し暮らし, 사이좋은 동거)처럼 서로 생활을 공유하지만 법적 구속은 지양하는 실용적 동거 형태가 확대되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일본의 사회 제도와도 무관하지 않다. 일본에는 사실혼을 인정하는 법적 틀이 일부 마련되어 있고, 동거 커플을 위한 주거 지원 정책도 지역에 따라 존재한다. 특히 후쿠오카, 교토 등 일부 지자체에서는 고령자의 공동 주거 형태를 실험적으로 지원하며, 혼자 사는 노인의 사회적 고립을 줄이기 위한 노력으로 계약 동거 형태를 유도하기도 한다.
또한 의료 현장에서도 동거인이 가족처럼 간병이나 동의 절차에 참여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으며, 유언장 및 상속 관련 법률 자문을 통해 관계를 명확히 정리하는 실천도 보편화되고 있다.
일본의 황혼 동거에는 독특한 정서적 거리감이 있다. 서로를 너무 깊이 간섭하지 않으면서도 필요한 순간에는 자연스럽게 손을 내미는 관계. 이를 쯔카즈 하나레즈(つかず離れず, 가까우면서도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관계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이는 일본인의 관계 맺기 방식과 문화적 정서가 반영된 동반자 관계의 한 형태다.
가령 동거를 하더라도 한 집의 방을 나눠 쓰거나, 아예 인근 아파트에 거주하면서 생활 일부만 공유하는 사례도 많다. 어떤 커플은 주 3~4일만 만나 식사를 함께하고, 서로의 시간을 존중한다. 감정의 농도가 짙지 않더라도, 같이 있는 것이 마음이 놓이는 관계. 이런 형태의 동거는 오히려 장기적으로 안정적인 관계를 만들어준다.
또한 일본의 실버 커뮤니티 내에서는 세컨드 라이프 파트너라는 개념이 점점 일반화되고 있다. 이는 인생 후반전을 함께하는 두 번째 인연 으로, 결혼이라는 제도보다도 실질적 삶의 공유를 중심으로 한다. 일본은 바로 이런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접근을 통해 황혼기의 동거를 새로운 가족 형태로 받아들이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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