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들어 떠나는 여행: 두려움

by 라온재

60을 넘긴 지금, 여행이라는 단어 앞에서 나는 예전보다 조금 더 신중해진다.

젊을 땐 지도를 펴지 않아도 길을 나설 수 있었고, 어딘가에 아프면 진통제 하나로 버틸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하나하나 살펴야 하고, 준비해야 안심이 된다. 무엇보다, 몸이 말하는 소리를 무시할 수 없어진 시기에 나는 도착해 있다.


그렇다 해도 여행을 포기할 수는 없다.

오히려 이제야 진짜 여행자가 된 것 같은 기분이다. ‘보았다, 먹었다, 사진 찍었다’로 끝나는 여행이 아니라, 머무르고 익숙해지고, 가만히 앉아 그 나라의 공기를 들이마시는 여행. 그게 내가 꿈꾸는 슬로매드 라이프다.


하지만 여전히 마음 한켠에는 걱정이 스며든다.

동남아시아, 남미, 이런 ‘개발도상국’이라고 불리는 지역들은 나에게 매력적이면서도 두려운 곳이다.

낯선 음식, 위생 상태, 수돗물, 치안, 언어, 그리고 무엇보다 내 몸이 아플 수도 있다는 사실.

예전 같으면 “가서 어떻게든 되겠지” 하고 넘겼을 일이, 이제는 며칠을 고민하게 만든다.


그럴 땐 마음속으로 조용히 자문해본다.

‘정말 그곳이 위험해서 가지 못하는 걸까, 아니면 내가 준비가 안 되어 그런 건 아닐까?’


그래서 나는 조금씩 내 방식대로 여행을 설계해본다.

한 나라를 통째로 여행하는 대신, 한 도시를 깊게 들여다보자.

수많은 목적지를 욕심내지 말고, 한두 군데를 ‘두 번째 집’처럼 느껴보자.


예를 들면, 멕시코의 메리다처럼 외국인 거주자가 많은 도시는 의료 서비스도 괜찮고, 물가도 적당하다.

콜롬비아 메델린처럼 날씨 좋고 은퇴자 커뮤니티가 활성화된 곳은 처음엔 낯설어도 어느새 익숙해진다.

태국 치앙마이처럼 아시아권에 있고 한국인도 많은 도시는 언어의 장벽도 낮고, 무엇보다 친근하다.


이런 곳에 두 달씩, 세 달씩 머물며 사는 여행.

마트도 가고, 현지 음식도 천천히 시도하고, 동네 병원의 위치도 파악해두고, 익숙한 카페에서 아침을 맞는 여행.

‘관광객’이 아니라, ‘거주자’로 살아보는 경험.

그게 내가 찾은 조금 느린, 하지만 더 안전하고 풍요로운 방식의 여행이다.


물론, 준비는 철저해야 한다.

예방접종은 기본이고, 여행 보험도 빼먹지 않는다.

냉정한 현실을 인정하며 계획하는 것이, 오히려 더 자유로운 여행을 가능하게 해준다.


우리는 이제, 모험이 아니라 지혜로운 이동을 선택할 수 있는 나이에 와 있다.

겁이 나면 나지 않도록 준비하면 된다.

불안하면 그 불안과 대화하면서 나에게 맞는 방법을 찾아가면 된다.


나이 들었다고 해서 여행을 포기할 필요는 없다.

다만, 나이 들었기에 가능한 여행의 깊이를 즐기고 싶다.

세상이 줄 수 있는 가장 다정한 풍경들을,

조금 더 천천히, 조금 더 조심스럽게, 그러나 놓치지 않고 바라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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