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후에도 사람이 그리운 당신에게
나는 평생을 두고 한 가지 고민을 해왔다.
서로 마음을 주고받을 수 있는, 이해와 신뢰를 바탕으로 한 순수한 우정.
그것이 가능할까?
아니, 가능하다고 해도 그것은 어떻게 만들어지고 유지될 수 있을까?
살아오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직장에서, 지역사회에서, 교회나 커뮤니티에서. 하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을 깊이 나누는 관계는 늘 손에 꼽았다. 친절하고 정중한 사람들은 많았지만, ‘조건 없이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는 사람’, 그리고 ‘나 역시 아무 계산 없이 다가갈 수 있는 사람’은 드물었다. 그럴 때면 나는 묻게 된다.
진정한 우정은 가능한가?
그리고 그것은 은퇴 후의 삶에서도 지속 가능한가?
젊을 때는 조건 없이 만나는 친구가 있었다. 학교라는 공간이 그들을 연결했고, 시험을 같이 걱정하고, 연애를 이야기하고, 가족도 모르는 비밀을 나누며 시간의 축적이 곧 우정이 되었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인간관계는 목적과 기능을 띠게 된다.
직장에서는 동료, 지역에서는 이해관계자, 모임에서는 역할로 만나는 관계들.
그 안에는 진심보다는 균형과 예의가 먼저였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를 점점 더 외롭게 만들었다.
이제 은퇴가 다가온다. 사회적 지위도, 경제적 이해관계도 사라지는 순간, 나에게 남는 사람은 누구일까? 아니, 그때 내가 만들 수 있는 관계는 어떤 형태일까?
1. 다르게 보는 시선에 대한 민감함
순수한 우정을 원하면, 상대가 ‘왜 그런 말을 했을까’ 하는 사소한 말에도 상처받기 쉽다. 왜냐하면 그 관계에 바라는 진정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런데 상대는 다를 수 있다. 누군가는 관계에 효용을, 또 누군가는 거리를, 또 어떤 이는 무심함을 기대한다. 이럴 때 우리는 실망한다. 그러나 이것이 바로 인간관계의 현실이다. 완전히 같은 시선으로 만나는 것은 생각보다 더 드문 일이다.
2. 깊은 관계에 대한 갈증과 피로의 공존
진심을 나누고 싶은 마음과 동시에, 상대의 기대나 감정까지 떠안게 되는 무거움이 공존한다. 그래서 우리는 깊은 관계를 원하면서도, 또 피하게 된다. ‘가까워지면 피곤해질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동시에 자리잡는다. 그 균형은 늘 어렵다.
3. 일방적인 감정투자에 대한 회의감
언제든 연락할 수 있는 친구 3명이면 족하다고 말하지만, 그 3명이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외로움과 상처가 있었던가. 순수한 관계를 원할수록, 그만큼 관계에 거는 기대도 크고, 그에 따른 실망도 깊다. 진심은 주었지만 돌아오지 않을 때, 우리는 스스로를 의심하게 된다.
그럼에도 나는 믿는다.
사람은 사람으로 인해 구원받는 존재라는 것을.
그 믿음은 어쩌면 인간 본성에 새겨진 어떤 오래된 감각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는 이제 안다.
진정한 우정은 ‘완벽하게 맞는 사람을 찾는 것’이 아니라, 다름을 견디고 이해하며, 서서히 신뢰를 쌓아가는 과정이라는 것을.
즉, 우정은 발견이 아니라 창조다.
1. 감정의 물꼬를 트는 용기
어떤 말로, 어떤 타이밍에, 누구에게 마음을 열 것인지. 은퇴 후의 우정은 기다림이 아니라 먼저 다가가는 용기에서 시작된다. 진심은, 때로는 서툴러도 그 자체로 울림이 있다.
2. 역할 없는 만남의 기회 만들기
기능적 관계가 아닌, 목적 없는 ‘그냥 만남’이 필요하다. 걷기 모임, 글쓰기 모임, 혹은 한 달에 한 번의 비정기적인 대화. 루틴 없이 만나는 사람이야말로 우정의 씨앗이 되기 쉽다.
3. 적당한 거리와 기대 조절
친밀함은 곧 부담이 될 수 있다. 자주 연락하되, 강요하지 않고. 기다릴 줄 알되, 실망하지 않고. 상대가 나처럼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전제는 관계의 성숙을 이끈다.
4. 공유되는 ‘가치’ 중심의 관계 찾기
은퇴 후에는 직업이나 지역보다, 가치가 통하는 사람이 중요하다. 삶을 바라보는 관점, 건강한 루틴, 진실한 나눔에 대한 열망. 비슷한 가치를 지닌 사람은 낯설어도 금방 친구가 된다.
5. 떠날 수 있는 사람은 보내고, 머무는 사람은 곁에 두기.
모든 인연이 오래가는 건 아니다. 떠나는 사람을 붙잡기보다는, 남아주는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마음. 그것이 진정한 우정을 가능케 하는 여유다.
은퇴 후에 꾸준히 연락하며 부담 없이 만날 수 있는 친구 3명.
어쩌면 그것은 가장 현실적이면서도, 인생에서 가장 귀한 소망일지 모른다.
그 3명을 ‘찾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당신 스스로가 누군가에게 그런 친구가 되는 것이다.
당신이 먼저 누군가에게 따뜻한 말을 건네고, 먼저 기억하고, 먼저 기다린다면
그 우정은 분명히 조금씩, 그러나 확실히 자라날 것이다.
그리고 결국, 우리는 외롭지 않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