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의 마지막을 결정할 수 있을까

나의 마지막을 설계하는 기술

by 라온재

태어남은 수동이지만, 죽음은 능동일 수 있는가


사람은 언제 태어나는가. 대체로 어느 시점인지 예측은 가능하지만, 그 결정권은 전적으로 본인에게 없다. 부모의 선택, 우연의 결합, 혹은 어떤 생물학적 인과관계의 결과로, 인간은 가장 수동적인 상태에서 이 세상에 오게 된다. 나의 의지와는 아무런 관계없이, 나는 존재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죽음은 조금 다르다. 물론, 죽음 역시 예측 불가능한 영역이 많다. 사고나 급성 질병처럼 예고 없이 찾아오는 죽음은 언제나 존재한다. 하지만,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는 어느 정도는 ‘어떻게’, ‘언제’ 죽을지를 관리할 수 있는 조건들을 갖추고 살아가고 있다.


그렇다면 묻고 싶다.

죽음, 그것은 나의 선택이 될 수 있을까?


수명을 스스로 연장할 수 있는가


많은 연구는 인간의 수명이 단순히 유전적 요인에만 의존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식습관, 운동, 수면, 스트레스 관리, 그리고 사회적 관계 등은 모두 수명의 결정에 영향을 미친다. 현대의학과 예방의학의 발전은 심장질환, 당뇨, 암 등 주요 사망 원인을 관리 가능하게 만들었고, 일부 국가는 90세 이상의 인구가 전체 인구의 1%를 넘어서기도 한다.


즉, 인간은 주어진 수명을 ‘관리함으로써’ 실질적으로 연장할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관리란 단지 병원을 다니고 약을 먹는 수준을 넘어서, 자신의 라이프스타일을 설계하고, 건강을 유지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가는 삶의 태도를 말한다.


그렇다면 어떤 요소들이 ‘삶의 마지막’을 내가 주도할 수 있게 만들까?


1. 경제적 안정성: 존엄한 죽음의 기반


죽음을 선택하거나 유예하는 데 있어 가장 현실적인 조건은 경제적 안정성이다. 병이 났을 때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고, 긴 회복기간 동안 생계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조건. 이는 단순히 의료비를 감당하는 능력을 넘어서, 건강을 사전적으로 유지하고 예방할 수 있는 자율성을 의미한다.


노년의 의료 시스템, 주거 환경, 생활비 구조는 곧 삶의 질과 수명의 기반이 된다. 우리는 자본주의 세계에서 ‘살 수 있는 만큼 산다’는 냉혹한 현실을 외면할 수 없다. 경제적 여유는 삶의 마지막을 통제할 수 있는 ‘기본 조건’이다.


2. 물리적 건강과 자율성: 움직일 수 있는 자유


죽음을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는 경우의 대부분은 ‘움직일 수 없는 상태’에서 비롯된다. 누군가의 도움이 없이는 일어날 수 없고, 스스로 식사도 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생존은 더 이상 삶이 아니라 생명 연장의 기술에 불과해진다.


자신의 몸을 스스로 돌볼 수 있는 수준의 건강—걷고, 씻고, 밥을 먹고, 말을 나눌 수 있는 능력—은 인간이 죽음에 대해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필수 조건이다. 이는 단순한 근육량이나 체중 문제가 아니라, 존엄한 자율성을 지킬 수 있는 힘이다.


3. 정신적 명료함: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의식


노년에 이르러 가장 두려운 것은 어쩌면 신체의 고장이 아니라 정신의 붕괴일지도 모른다. 인지기능이 흐려지면 우리는 나 자신이 누구인지, 지금이 어떤 시간인지조차 구분하기 어려워진다. 나의 죽음을 나답게 마무리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는 정신적 명료함이다.


이를 위해서는 단지 기억력을 유지하는 것을 넘어서, 사유하는 능력과 인간관계, 감정의 통합력을 유지해야 한다. 명상, 책읽기, 글쓰기, 대화와 같은 정신적 운동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4. 죽음에 대한 철학적 준비


마지막으로, 우리는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죽음을 억지로 유예하는 것이 아니라, 그 마지막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지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훈련이 필요하다. 이는 종교일 수도 있고, 철학일 수도 있으며, 일상의 단순한 성찰일 수도 있다.


죽음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죽음을 ‘내가 맞이할 시간’으로 받아들이는 태도는 우리가 마지막까지 삶의 주인이 될 수 있는 방법이다.


삶의 마지막, 그 결정권을 나에게로


내가 언제 태어났는지는 결정할 수 없지만, 내가 어떻게 그리고 어느 정도까지 살아갈지는 분명히 결정할 수 있다. 죽음을 완전히 통제할 수는 없지만, 죽음에 이르는 방식과 삶의 마무리를 주도할 수는 있다.

그것은 경제적 안정, 건강한 육체, 또렷한 정신, 그리고 삶을 바라보는 철학적 태도가 함께할 때 가능한 일이다.


지금 이 순간, 나의 하루가 모여 내 삶의 마지막을 향해 가고 있다면, 그 하루하루를 주도적으로 살아가는 일은 곧 죽음을 준비하는 가장 성숙한 방식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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