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다우트는 메릴 스트립과 필립 세이무어 호프먼의 연기 대결만으로도 흥미롭게 볼수있다
연기적인 측면에서 보면 서로 펜싱하는듯이 깊게 찌르 연기를 하는거 같지만 사실 개인적으로는 메릴 스트립과 필립 세이무어 호프먼 모두 수렴하는 연기를 하는것으로 보인다
자신이 가진 신분의 위치와 자신이 생각하는 주장등이 함부로 분출할수 없는 상황을 만드는데 그 상황안에서의 메릴 스트립과 필립 세이무어 호프먼의 테크닉은 훌륭하다라는 표현을 넘어 경기롭기까지하다
다우트는 캐릭터간의 구조도 흥미롭게 볼수있다
사실 영화를 다 보고 나면 이 영화의 캐릭터 구조가 믿음과 의심에 관한 이야기를 크게 뒷받침해주고 있는것으로 볼수있다
구조적으로 봤을때 알로이시스 수녀는 보수를 상징하고 플린 신부는 진보를 상징한다고 볼때 제임스 수녀는 중립은 아니지만 아직 진영을 정하지 못한 위치에 있다고 볼수있을거 같다
알로이시스 수녀 입장에서는 학교안에서의 사람간의 구도에서 조금이라도 가까워지거나 멀어지는것을 경계하며 모든 사람은 제 위치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반대로 플린 신부는 모든 사람들에게 다가가고 변화해가는 시대에 맞춰 사람이든 사물이든 모든 것을 포용하는 인물처럼 묘사된다
그 부분에서 변화를 감지한 알로이시스 수녀는 플린 신부를 의심하기 시작한다
여기서 중요한것은 알로이시스 수녀는 자신이 믿고 있는 신념을 위해 의심을 하기 시작한다는 것인데 앞서 말했다 싶이 알로이시스 수녀는 구조, 구도에 대한 변화에 무척 민감하게 그리고 거부감을 들어내는 인물이다
그런 변화가 되어가는 상황에서 자신이 생각하는 구조에 문제가 발생하는것이라 믿어버리고 그 문제가 발생했다는 상황을 믿기위해서 의심을 시작하는 것이다
반대로 플린 신부는
길지만 깨끗한 손톱과 설탕이 많이 들어간 차를 마신다는 점에서 그는 기존 체제에 대해 맞서서 자신의 주장을 이야기할수 있고 변화하는 시대를 유연하게 받아들일수 있는 인물이다
그렇기에 플린 신부는 보수적인 학교의 모습을 시대에 맞춰 변화 시키려하고 변화를 포용하려는 인물인 것이다
그 사이에서 제임스 수녀의 위치를 생각해 볼수 있을것이다
분명 제임스 수녀는 알로이시스 수녀가 운영하는 보수적인 학교에 적응하면서 플린 교수의 주장에도 동의한다
그런면에서 생각해보면 제임스 수녀는 알로이시스 수녀와 플린 신부와 같이 적어도 확실히 진형이 정해진 인물이 아니라고 보여진다
여기서 제임스 수녀가 중립도 아니라고 느껴지는 이유는 제임스 수녀는 플린 교수와 도널드에 대한 일을 목격하면서 사실그대로 알로이시스 수녀에게 보고하는 장면에서 찾을수 있을것이다
여기서 확실하게 제임스 수녀와 알로이시스 수녀가 다른 점이 묘사가 되는데 바로 의심을 확신하는가 하는 점이다
알로이시스 수녀는 변화가 생기는 즉시 의심과 함께 확신을 하게되고 그 확신은 어느 무엇보다도 단단하게 마음에 자리잡게 된다
반대로 제임스 수녀는 의심을 하지만 플린 신부의 해명에 바로 의심을 거둔다
이렇게 표현된 인물 구도에서 믿음과 의심에 대한 이야기를 영화는 말한다
영화의 초반 플린 신부의 강론에서 의심은 믿음을 더욱 강하게 한다는 말이 나온다
이는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문장이기도 하면서 과연 믿음은 의심이 없이 가능한가 하는 생각까지도 해볼수있게 한다
그것이 사실관계와 관계없이 의심의 크기가 점점 팽창하면서 말이다
결국 이 영화를 다보고 나면 의심하기위해 믿음을 행하고 믿음을 행하기 위해 의심을 한다는 생각까지도 들게 하면서 신념을 믿기 위해 자신의 신념에 반하는 의심을 해야하는 모순을 이 영화는 무척 서슬퍼렇게 표현한다
★★★★☆ 믿음을 위해 의심하고
의심하기 위해 믿음을 선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