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닝을 보고

by lapin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버닝은 지금 한국의 사회구조 속 청춘의 모습을 현실적으로 그린다

정확하게는 한국의 사회구조를 보며 느끼는 청춘의 감정을 표현한다

없다는걸 잊어야만 살아갈수있는 지금 사회의 청춘이 느끼는 상실감과 그 구조의 상층부를 바라보며 느끼는 박탈감과 분노를 말이다

영화는 그러한 감정들을 상징적으로 풀어내고 있는데 크게는 고양이, 비닐하우스 그리고 남산에서 반사되는 햇빛이겠다

영화의 초반 해미의 집을 찾아온 종수에게 해미는 집안에 햇빛이 들어오는 시간은 남산에 반사된 햇빛이 들어오는 시간만 햇빛이 들어온다고 이야기한다

이것은 지금 사회구조에서 경제발전의 과실이 하층민으로 직접 오는것이 아니라 남산이라는 높은 위치에서 먼저 받고 나머지 반사된 양만이 하층민에게 간다고 상징한다

비슷한 의미로 해미의 고양이가 있겠다

종수는 해미가 여행가 있는 사이 해미의 고양이에게 먹이를 주기위해 계속해서 해미의 집을 찾는다

하지만 해미의 고양이는 영화 러닝타임 내내 모습을 보여주지 않다가 후반부 모습을 드러내게된다

모습을 드러내는 장소가 벤의 집이라는건을 생각해보면 지금의 우리는 보이지 않는 것을 위해 노력하고 그 노력의 성과를 볼수있는 것은 상층민인 벤인 것으로 볼수있다

비닐하우스는 사실상 종수와 해미를 상징한다

사용하지 않는 비닐하우스를 불태운다고 벤은 말한다

여기서 사용하지 않는다는것은 지금 일자리가 부족한 상황을 뜻하고 상층민은 그런 비닐하우스를 다시 쓸수있도록 도와주는것이 아니라 불태우는 점은 지금 사회에서 청춘을 도와주기 보단 자신들의 개인적인 쾌락에 이용당하고 있다고 생각이 든다


결국 이 영화의 주된 감정은 분노 일것이다

기성세대에대한 분노

사회 구조에 대한 분노에 대해 말이다

자신의 꿈이 아닌 사회 구조에 의해서 자신의 청춘이 불타버린 종수의 모습을 통해 어쩌면 이창동 감독은 지금 현재 청춘의 상태가 리틀 헝거라 보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종수가 벤을 살해하고 불태우는 장면까지 보게되면 지금 리틀 헝거의 상태인 청춘이 그레이트 헝거가 되어가고 있고 사회가 변화해야 그레이트 헝거가 되지 않는다고 이창동 감독은 경고하는거 아닐까한다


★★★★☆ 자신의 꿈이 아닌 구조에 의해서 불타버린 청춘을 애도하며

지금의 청춘은 리틀 헝거에서 그레이트 헝거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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