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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드시 Jul 16. 2024

내가 좋아하는 일을 아직도 모르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냥 살아보겠습니다.

깊은 우울과 무기력증에서 헤매다가 다시 글을 씁니다.

무기력증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모르는 것이 아닌데 무기력함 속에 묻혀 지냈습니다. 아이들이 생활할 최소한의 움직임과 에너지만 소비하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나를 무기력으로 몰고 간 것은 책이었고 나를 무기력에서 벗어나게 만든 건 재미있게도 드라마 예고편이었습니다.


최소한의 에너지로 살아가고 있는 나에게 자기 계발서는 지금도 충분히 무거운 내 삶의 무게에 그 무게만큼을 더했습니다.

빠른 속도로 몰아붙이며 일정한 아웃풋을 내도록 유도하는 책을 읽었습니다. 많은 자기 계발서는 하나의 질문으로 귀결되더군요. 어떤 사명을 가지고 어떤 가치를 추구하며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아야 그 위에 단단한 토대를 쌓고 지속적인 아웃풋을 낼 수 있다고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진정으로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가치를 추구하며 무슨 사명으로 사는 사람인지 정의할 수 없는 내 자신과 그 간의 삶이 너무 허무하여 주저앉아버렸습니다.


그 이후로 지금까지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넷플릭스 보다 자고 유튜브 보다 자고 오기 1-2시간 전에 일어나 치우고 간식준비하고 하면서 한 2달을 보낸 것 같네요. 자기 계발서에서 가져야 한다는 루틴을 이것저것 따라 하다가 모래 위에 쌓은 성처럼 허물어져 내린 기분이랄까요? 아이들이 아니었다면 나는 아마 아직도 누워 지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다 요즘 새로 시작하는 드라마의 예고를 보게 됩니다.

늦게 일을 마치고 들어온 여주인공은 잠들어 있는 딸아이의 방에서 이런 방백을 합니다.

“그래 내 아이가 편안하게 살 수 있다면, 그것으로 내 삶의 가치는 충분하지 않겠어?” - 정확하지는 않음

여기서 작은 깨달음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래 삶의 이유와 가치가 그렇게 거창할 필요는 없다. 태어난 이유도 모르고 살다 가는 인간인데 내 아이 내 가족을 지켜 낸 삶이야말로 그것으로도 내 삶은 충분히 가치가 있겠다.


내 선택에 의해 태어난 아이들이 편안하고 안락하게 살 수 있도록 인프라를 제공하고 행복한 기운을 전달하는 친절한 엄마-지금은 그렇지 못하다는-라면 삶의 가치와 이유는 충분한 거죠. 그 아이들을 바르게 키워 제대로 독립시켜 건강한 사회인을 만들어 내는 일이야 말로 이 세상의 어떤 가치보다 가치 있는 일이지 싶습니다.

제가 행복을 너무 멀리서 찾으려 했었나 봅니다. 파랑새는 바로 제 곁에 있는 것을요.


이렇게 마음을 먹다 보니 나를 대하는 나의 태도가 달라지게 되더군요.

나의 루틴이 아닌 타인의 루틴에서 벗어나기 위해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일에서 벗어나기 위해 루틴과 할 일을 간소하게 정리했습니다.


영어공부의 압박 투자공부 준비 중인 사업도 내려놓고 그저 읽고 쓰고 걷기만 하며 당분간 살아보겠습니다.

엄마가 숨을 쉬어야 아이도 숨을 쉬겠죠. 돈을 벌어야 한다는 마음의 부담도 갑자기 미친 듯이 제 뒤통수를 후려 치지만 맞으며 견뎌봐야죠.

일단은 살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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