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돈가스를 일 년에 딱 한 번만 먹는다. 어릴 때 충주 이모집에 가면 크리스마스 요리로 만들어 줬는데 그 습관 때문인지 성인이 되고 난 후에도 일 년에 딱 한 번씩만 생각이 난다.
초등학교에 다닐 무렵부터 방학이 되면 여동생 둘을 데리고 충주 이모 집에 놀러 갔다. 강남 고속버스 터미널에서 충주행 버스표 두 장을 끊고 좌석 두 개에 엉덩이 세 개를 끼우고 앉으면 등받이가 모자라서 가운데 앉은 나는 내릴 때까지 등을 기대지 못했다. 그 자리에 앉아 옆 좌석에 앉은 어른들이 핫도그며 핫바를 먹을 때 눈이 마주치지 않으려고 앞 좌석 등받이에 머리를 기대고 있다 보면 깜박 잠이 들어서 핫도그에 설탕과 케첩을 발라 먹는 꿈을 꾸기도 했다. 엄마는 항상 차비만 딱 맞춰서 줬기 때문에 휴게소에서 파는 간식을 사 먹어 본 적이 없었다. 그래도 이모집에 가면 핫도그보다 더 맛있는 걸 잔뜩 먹을 수 있으니 괜찮았다. 터미널에서 이모 집까지는 택시를 탔다. 지금 생각해보면 기본요금 거리라 셋이 버스를 타는 요금이나 택시비가 비슷하게 나왔을 것 같다. 당시 짜장면 가격과 택시 기본요금이 똑같았는데 대략 600원 정도였던 것 같다.
이모집에 도착하면 사자 손잡이가 달린 파란색 철재 대문을 밀고 들어가 영구와 땡칠이 비디오를 먼저 틀었다. 당시 아이가 없던 이모는 우리 세 자매가 올 때마다 군대에서 첫 휴가를 나온 외아들처럼 반기며 매 끼니 정성스러운 음식을 만들어 줬다. 또 이모부와 함께 냇가에 데리고 가서 함께 다슬기를 캐고 시내 극장에 가서 ‘영심이’나 ‘우뢰매’ 같은 영화를 보기도 했다. 이모는 우리가 늘 빨간 머리 앤처럼 꿈꿀 수 있게 해 줬고 바쁜 엄마와 할 수 없었던 꿈들을 하나씩 이룰 수 있게 해 줬다.
그리고 한 해도 빠짐없이 크리스마스가 되면 늘 돈가스를 만들어줬다. 그 무렵 돈가스는 부잣집 친구들만 먹을 수 있는 고급 음식이라 혼자 일하는 엄마에게 돈가스를 사달라고 하기가 너무 미안했는데, 무엇이든 척척 만드는 이모는 석유곤로에 냉동 돈가스를 튀기고 달콤한 케첩을 잔뜩 올려서 크리스마스 파티상을 뚝딱뚝딱 차려줬다. 나에게 그 냉동 돈가스는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돈가스다.
며칠 전 돈가스를 먹으러 갔다. 신도시에 새로 오픈한 오너 셰프 식당인데 인테리어도 깨끗하고 무엇보다 음식이 정갈하고 맛있어서 단 번에 반했다. 오후 5시가 넘어 먹는 첫 끼라 마음이 급했는데도 최대한 느린 호흡으로 돈가스를 기다렸다. 일 년에 한 번 먹는 음식인 만큼 사진도 두어 장 찍어뒀다. 도톰한 로스가스에 소금만 찍어 크게 베어 물었는데 순간 고소하고 오일 리 한 향이 퍼지면서 크리스마스 파티상을 차려 주던 이모의 미소가 떠올랐다.
이모가 췌장암에 걸렸다고 했을 때 나는 우울증에 걸린 내 몸 하나 추스르기 힘들다는 핑계로 차일피일 이모와의 만남을 피했다. 죽어가는 이모를 마주 할 자신이 없었고, 이모가 죽어간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이모가 죽은 날, 장례식장에 가는 길에 서울 빵을 잔뜩 사들고 가서는 다과회를 하듯 정신없이 웃고 떠들었다. 그런 내가 밉지도 않은지 이모는 돌아가신 뒤에도 일 년에 일 년에 한 번씩 돈가스를 먹을 때마다 이모와의 추억을 선물을 준다.
이모가 내게 유산으로 물려준 것은 돈이 없어도 나눌 수 있는 사랑이었고, 내가 선택하면 어디서나 호탕하게 웃을 수 있는 당당함이었다. 가난한 이모는 척박함 속에서도 사랑의 꽃을 피운 것이다.
고마워 이모.. 돈가스 잘 먹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