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속에 비치는 달
윤종신의 노래에는 포효하는 남자가 산다. 그 남자와 마주치면 어쩐지 딱해서 아랫목에 넣어 둔 따뜻한 밥 한 그릇 내어주고 싶어 지는데 특히 ‘오래전 그날’ 속 남자가 그렇다.
담담한 회상으로 시작되는 남자의 독백을 들으며 나는 그와 함께 기억 속의 길을 걷는다. 좋은 그림에서 음악소리가 들리듯 그의 노랫말은 분명 한 폭 풍경화로 그려지는 구체적 아름다움이 있다. 분주한 하굣길 홍콩배우들의 사진이 굴비처럼 엮여 있는 문구점 거리를 지나고 오렌지색 천막을 친 떡볶이 집을 지나며 서로의 꿈 이야기를 하고, 지키지 못할 약속들을 했다.
그때, 우리는 왜 헤어졌을까?
지키지 못한 약속에 대한 미안함 때문인지 야속한 마음 때문인지 후렴부에 들어서며 남자는 짐승처럼 포효한다. 그 내용을 언뜻 보면 사랑하는 사람의 행복을 축복하는 의미로 보이지만, 그 거친 울음 속에 감춘 진짜 마음은 ‘절대적인 그리움’이었다. 솔직함은 가장 훌륭한 처세술이라는 말처럼 날것의 포효는 언어적 한계를 넘어 감정을 직관적으로 전달하는 훌륭한 도구가 된다. 그리고 그렇게 감정까지 전달된 한 곡의 노래는 핵심 기억으로 남아 내 삶에 농밀하게 베어드는 것이다.
몇 해 전, <오래전 그날>의 외전으로 <1월부터 6월까지>가 발매되었다. 낮은 중저음으로 읊조리는 남자의 독백을 들으며 꼬깃하게 구겨진 어느 겨울의 장면을 꺼내 본다. 독하게 추웠던 그 겨울 나는 왜 횡단보도 앞에 멈춰 서 있었을까? 인트로 몇 마디만으로 왈칵 울음이 쏟아질 것 같은 이 노래는 실제로 2절 도입부에 <오래전 그날> 멜로디를 삽입해 후속 편으로 쓰이고자 하는 작가의 의도를 짐작할 수 있었다. 화자는 그날 우리에게 어떤 사건들이 있었는지를 보다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제야 이런 말들을 구구절절 늘어놓는 이유는 아마도 그때는 왜 우리가 헤어졌는지 말을 해줘도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리라. 말을 해야 아는 것은 말을 해줘도 알 수 없으니 말이다.
<오래전 그날>이 남자의 추억에 대한 포효였다면 이 노래는 성숙해진 남자가 여자의 기억을 섬세하게 달랜다. 그래서일까. 이 노래를 듣다 보면 지난 20여 년의 세월이 주마등처럼 지나가며 그간 애태웠던 상처들이 봄눈처럼 녹아내리는데, 특히 마지막 클라이맥스 ‘지하상가의 덮밥집’을 회상하는 장면에서 억누른 감정이 폭발하면서, 그동안 <오래전 그날>을 들으며 나와 함께 아프고 감내했을 사람들과 부둥켜안고 울고 싶은 마음이 된다.
‘많이 아팠지? 고생 많았어’
요즘 <함월지>에서 잊고 있었던 추억 속의 노래를 자주 듣는다. 과거의 노래를 듣는다는 건 추억과 함께 상처를 마주할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는데, <함월지> 속에서 과거의 노래를 들을 땐 양수를 가득 채운 자궁 속에 있는 듯한 안전함을 느낀다. 아마도 같은 시절을 공유한 것을 넘어 하나의 꿈을 공유하기 때문이리라. 같은 마음을 노래하며 하나의 정서로 연결된 에테르가 있기 때문이리라. 그 안전한 인도를 따라갈 때 나는 스스로 ‘배움의 자세’가 된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스승이 아닐까.
우리, 날것 그대로 사랑하고, 날것 그대로 노래하자. 저 달을 담은 호수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