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마실래?

by 러브로라


나에게 커피는 ‘여여함’이다.

아침에 일어나서 커피를 갈고 내리는 행위는 온전한 몰입의 경험이 되고, 커피를 마시는 시간은 전쟁을 멈추는 크리스마스 휴전처럼 평화롭다. 가족과 다툼이 있었을 때 ‘커피 마실래?’라고 말하는 건 ‘아까는 미안했어.’라는 말의 대신이고 그때 ‘응, 한 잔 줘’하는 동의는 자기도 미안했다는 화해의 제스처가 된다



대학을 졸업하고 운이 좋게 기획사 오디션에 합격했다. 집 앞 노래방에서 녹음한 셀린디온의 ‘My heart will go on’을 오디션 곡으로 제출했는데 운이 좋게도 단 번에 합격한 것이다. 나는 어느 가수의 노래처럼 ‘이제는 고생 끝 행복이다’며 뛸 듯이 기뻐했다. 하지만 오디션에 합격해도 나의 세상은 변하지 않았다. 매일 아침 회사에 출근하는 사람처럼 기획사에 갔지만 마땅한 월급을 받을 수가 없었고 결국 교통비라도 벌기 위해 커피숍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당시 카페마다 헤이즐넛 커피와 빨간색 비닐로 포장된 로투스 쿠키가 유행이었다. 나는 설탕을 한 스푼 녹인 커피에 로투스를 찍어 먹는 것을 좋아했다. 쿠키를 먹기 위해 커피를 시킨 셈이다.


그러다 아르바이트를 하던 카페 사장님의 권유로 블랙커피를 마셔봤는데, 걱정했던 쓴맛이 아니라 조금 진한 보리차 맛이었고 오히려 설탕이 없으니 피니시가 깔끔해서 내 취향에 잘 맞았다. 그렇게 배운 커피가 지금은 유일한 디저트가 되었고 자연스럽게 장비도 늘어갔다. 2만 원짜리 기본 세트로 시작해서 동 주전자로 업그레이드하고 전동 그라인더를 들이고 스페셜티를 사서 로스팅까지 하다 보니 지금은 작은 카페를 차려도 될 만큼의 장비가 모인 것이다.



지난주에 핸드드립 원데이 강의를 들었다. 커피를 좋아하면서도 배우는 건 생각해 보지 못했는데 막상 알고 먹으니 신맛 쓴맛 단맛이 보다 입체적으로 느껴졌고, 무엇보다 이론으로 풀이한 내용을 듣다 보니 핸드드립 추출법이 글쓰기와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먼저 커피를 내릴 때 뜸을 잘 들여야 입자에 수분이 균일하게 스며들고 가스가 원활하게 배출되는데, 나도 글을 쓸 때 반드시 뜸 들이는 과정을 갖는다. 하이쿠 시 정도의 짧은 글을 드리퍼에 담고 며칠 뜸을 들이면 수분이 충분히 흡수되어 글의 알갱이가 팽창된다. 이렇게 알갱이가 팽창하면 결점두를 고르기도 수월하고 뿌리를 단단하게 내린 알갱이는 나무로 키울 수 있다.


핸드드립의 방식은 바리스타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평균값의 공식이 있다. 우선 원두 20g을 90도 온도 200ml의 물에 내린다. 커피는 추출할 때 신맛, 단맛, 떫은 맛, 쓴맛의 순서로 추출되기 때문에 너무 빨리 내리면 신맛이 도드라지고 너무 천천히 내리면 쓴맛과 함께 텁텁한 맛이 추출된다.


글을 쓰는 것도 나만의 평균 값의 공식을 따라 매일 같은 시간에 같은 분량을 쓰는데, 이유는 글을 씀과 동시에 쓰는 근육을 키우기 위함이다. 그리고 글도 커피처럼 신맛, 단맛, 떫은맛, 쓴맛의 밸런스가 둥글게 춤을 추듯 어우러져야 맛있다.


특히 나는 추출이 끝난 뒤에 물을 섞어 마일드하게 마시는 걸 좋아하는데 마찬가지로 글쓰기 역시 다 쓰고 나서 반드시 퇴고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퇴고 없는 글은 포토샵 없는 프로필이자, 거울을 보지 않고 나가는 데이트와 같다. 글을 다 쓰면 글이라는 집에서 잠시 나와 뇌를 정화하고 호흡을 고른 뒤, 돌에 정을 치듯 다듬고 다듬고 다듬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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