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으로 깊이 들어갈수록 고요한 내면으로 걸어 들어가는 듯 적막했다. 신비로운 붉은 토양과 비자나무의 신성함에 압도되어 바람 한줄기만 지나가도 마음을 들킬 것 같아 숨을 멈췄다가 내쉬었다.
조조는 표정의 변화도, 보폭의 흔들림도 없이 묵묵히 길을 인도했다. 그런 그녀가 내게는 마치 숲을 관장하는 정령처럼 보였다.
“너는 왜 이렇게 자유로워?”
“몇 년 전에 죽음의 고비를 넘기고 2년을 덤으로 살았어. 죽음의 시점에서 바라보니 사는 게 대단할 게 없더라. 노동과 섹스와 잠, 그리고 하루 세끼가 있을 뿐. 이왕 덤으로 사는 거 남은 날들은 날것 그대로의 나로 살고 싶었어. 너는 어때? 지금 자유로워?”
“나는 얼마 전에 영화 '루시'를 보고, 인간이 인간의 뇌에 10%만 사용한다는 모건 프리먼 대사를 보며 처음으로 자유에 대해 생각했어.
사실 불안장애제를 복용하기 시작하면서 내 한계라고 생각했던 영역 외의 특별한 영역이 있다는 걸 느낄 무렵이었거든. 왜 약을 먹으면 불안함이 사라질까.. 행여 약을 먹지 않아도 그 영역을 활성화시킬 수 있는 것은 아닌가?
그때, 선명한 무언가를 느끼며 초자아에 관한 고민이 시작됐어. 아마도, 나 혼자서도 얼마든지 이겨낼 수 있다는 희망을 찾고 싶었던 것 같아. 나도 지금의 너처럼 자유로울 수 있다는 희망.”
“일이 엉망이 됐을 때, 어떻게 했길래 이렇게 됐지? 를 이렇게 됐는데 어떻게 하지?로 바꿔봐.
삶의 질문은 순서만 바꿔도 감정의 불순물이 빠지고, 감정이 빠진 문제는 본질만 남게 돼.
또, 어떤 선택도 ‘최악의 상황’을 미리 인정하고 받아들이면 두려움이라는 먹구름이 걷히게 되고.”
조조를 알기 전의 내가 누군가의 우주를 삼켜 본 일이 있었나? 누군가의 뒷모습을 좇아가다 목적 없는 행성에 닿아 본 일이 있었나. 조조는 나 혼자서는 절대 벗을 수 없던 색안경을 하나씩 벗겨주면서 날것의 몸으로 있는 그대로의 자유를 보여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