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플 3-42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내로남불. 언젠가부터 사자성어처럼 쓰이기 시작했다.
샘플3은 내로남불이 심한 사람이었다. '내가 하는 것은 모두 맞아'라는 식의 대화와 행동을 자주 했고, 그런 행동은 어떤 면에서는 자기애가 과해 보이기도 했다. 일과 관련해서 그런 행동들이 종종 있었지만 늘 수습할 수 있는 범위에 있었기에 조심하라고만 이야기했었다. 사무실 내에서야 구성원들이 대충 이해해주고 넘어가 주고 있지만 밖에서는 아주 무례하고, 아주 무능력한 사람으로 보일 수 있기 때문이었다.
사건이 일어나고 난 뒤에도 샘플3은 그런 행동을 일삼았다. 일상적인 내로남불은 언제나처럼 그러려니 했다. 하지만 사건과 관련한 내로남불은 내 속을 문드러지게 했다.
하나, 다른 조직의 사건.
다른 조직에서 부당 해고와 성희롱과 성추행의 문제가 발생했다. 내부에서 이야기를 밖으로 내지 못하게 해서 피해자들이 도움을 요청한 적이 있었다. 조직 내에서는 말할 수 없는 상황이라 광역 단위에서 이에 대해 도움을 줄 만한 것이 있지는 않을까 싶어서 광역 단위에 관여하고 있는 샘플3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나 역시 비슷한 일을 겪은 뒤다 보니 너무 도와주고 싶었다. 그런데 그 도움을 요청해야 하는 중심에 샘플3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말을 하면서도 샘플3이 자신이 한 짓이 있으니 안 도와주겠다고 하는 것은 아닐까 걱정을 했다. 그리고 어떻게 반응할지도 궁금했다. 나의 이야기를 다 듣고 난 샘플3은 이렇게 말했다.
"걔 그만둬야겠네."
샘플3은 자신의 잘못은 기억이 나지도 않는지 다른 조직의 가해자는 그만둬야 한다며 바로 이야기했다. 머릿속으로 '뭐지?'가 백 개, 천 개, 만 개가 떠올랐다. 그냥 모르는 척하는 것일까? 아니면 자신이 했던 일을 잊은 것일까? 아니면 자신은 잘못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의문이 가득했다.
그리고 결국 그 일에 강력하게 대응할 것처럼 말하던 샘플3은 아무 행동도 하지 않았고, 답답했던 나는 그들을 돕기 위해 다른 방식을 택했다. 그 방법을 통해 나름 정리가 되었다.
둘, 잠수.
다른 조직의 리더가 잠수를 탔다. 같이 일하고 있는 것도 있었고, 이래저래 연락이 되어야 하는 사람이었는데 전화도 안 받고 문자도 안 받았다. 그리고 그 지역의 다른 사람들에게 이래저래 조직의 뒷담화를 하고 다녔다. (에휴, 뒷담해도 되는데 들려오지라도 않게 하지)
우리 사무실에 그 조직의 교육에 쓰이는 책자가 한가득이라 가져가시라 하려고 연락드렸지만 역시 받지 않았다. 그래서 샘플3에게 혹시 그 사람과 연락이 되느냐고 물었더니 안된다고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왜 연락을 안 받고 안 하는 건지 명확하게 모르고 있었던 때라 샘플3에게 또 물었다.
"혹시 무슨 일 있는 건 아니래요? 이렇게 까지 연락이 안 되니까 이상하네요."
"뭐, 미투만 아니면 돼."
나의 질문에 샘플3은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저래 답했다. 내가 잘못들은 것인 줄 알았다. 그 사람은 그런 문제로 잠수를 탄 것이 아니었음에도 미투라는 단어가 나온 것에 한 번 놀랐고, 내 질문에 전혀 답이 되지 않았던 것에 또 놀랐다. 그러나 의문이었던 샘플3의 생각이 정리되는 것 같았다. 그는 자신의 잘못은 전혀 잘못이라고 인식하고 있지 않는 것이었다.
심지어 그 당시 한창 지자체장의 성추행 문제가 이야기되고 있어서 동료는 샘플3이 그 사건에 대해 어떻게 말할지 궁금하다고 이야기하기도 했었다. 그는 어떤 공식자리에서도 그 말을 꺼내지는 않았지만 "어휴, 쯧쯧." 하는 감탄사를 내면서 뉴스를 보는 일이 잦은 것으로 그 사건을 바라보는 샘플3의 시각을 알 수 있었다. 분명 그가 동일시하고 공감하고 있는 쪽은 피해자 쪽이었다. 어째서일까?
셋, 실망.
내가 일적으로 괜찮게 생각하는 활동가가 있었다. 그 활동가는 이전에 샘플3과 함께 일한 적이 있었다.
샘플3은 그 활동가의 능력은 인정하면서도 그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자신이랑 잘 맞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술자리에서 샘플3은 그 활동가를 너무 믿지 말라고 했다. 좋은 사람이 아니고 그간 있었던 얘기를 알면 실망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성과 관련된 것'이라고 못박았다.
어떠한 자세한 이야기를 한 것은 아니기에 편견을 갖지는 않았다. 그 말을 들었을 땐 사건 전이기도 했고, 그 활동가와 접점이 많지 않았던 시기이기에 더 그랬다. 오히려 샘플3이 내게 그런 얘기를 해 준 것은 조심하라고 해 준 얘기겠거니 했다.
그리고 일이 이렇게 되고 나니 과거에 내게 남의 이야기를 내게 했던 샘플3은 그때의 대화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궁금해졌다. 내게 얘기했던 것 자체를 잊었을 수도 있다. 혹시 기억한다면 창피하기는 할까?
그런데 그가 나중에 나와 같은 활동가를 앞에 두고 자신과는 관계없다는 듯 그런 얘기를 할 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하니 소름이 돋았다.
되짚어보니 저 말을 했던 날은 샘플3이 자신의 과거 불륜행각을 내게 이야기했던 날이기도 했다. 그는 사건 이전부터 성과 관련된 도덕적인 관념뿐만 아니라 그냥 도덕성도 떨어지는 사람이었음을 직작에 눈치챘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