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장래희망은 몇 개 없었다. 한의사, 소설가, 음악가, 지리학자, 천문학자, 그리고 환경과 관련된 일을 하는 것이었다.
꿈은 확고했다. 내가 이름 붙인 도서관을 운영하는 것 하나였다.
물리와 수리 덕분에 천문학자의 꿈을 접고(아 물론 영어도) 환경과 관련된 학과들을 골라 원서를 넣었다.
두 개의 학교에 합격해서 하나를 골라야 하는 상황이 왔을 때 나의 기준은 '도서관의 크기'였다. 학교 다니는 내내 도서관의 책을 다 읽을 수도 없었을 텐데 말이다. 그렇게 학교를 골랐다. 나중에 알고 보니 서고 보유량은 고르지 않은 학교가 더 많았다.
고른 학과는 생각보다 환경에 가깝지 않았다. 나무를 잘 키워서 잘 잘라서 파는 것을 가르치는 곳이었다. 이름에 깜박 속았다. 그래서 환경과 관련된 다른 학과의 수업을 신청해서 들었다. 성적은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대학은 내가 배우고 싶은 학문을 배우는 곳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뭔가 공허함이 계속 채워지지 않았다. 결국 그리워하던 악기를 다시 잡았다. 교내의 윈드오케스트라에 들어갔다. 재미있었다. 누군가와 합을 맞추고 그 소리가 어우러지는 것이 좋았다.
그렇게 부족한 것이 채워질 줄 알았는데 그러지 못했다. 뭘 하는 것이 좋을까 어떻게 해야 후회 없이 대학을 졸업할 수 있을까 고민하여 결정한 것은 복수전공이었다. 글을 쓰는 것을 배워보고 싶었다. 하지만 학교에는 문예창작과가 없었다.
결국 내가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지 다시 돌아보기 시작했다. 글을 쓰는 것과 읽는 것은 당연히 좋았고, 영상을 보는 것을 그것을 평하는 것도 좋아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복수전공을 하기 위한 서류를 두 개의 학과에 넣었다. 영상문화학과와 스토리텔링학과였다. 포트폴리오를 만들기 위해 미술학원에 다녔다. 그리고 두 곳에 모두 합격했다.
고민이 되었다. 영상을 보는 것은 확실히 좋아한다. 그런데 영상을 만들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하니 막막했다. 둘 다 배우면 얼마나 좋을까 했지만 그럴 수 없는 현실에 결국 여러 종류의 글을 쓰는 것을 배울 수 있는 스토리텔링학과를 선택했다.
너무 재미있었다. 본래 학과의 성적보다 복수전공 수업의 성적이 더 잘 나온 것은 당연했다. 좋은 걸 어떻게 해. 사실 정신없이 다녀서 느낌이라 지금은 많이 잊었지만 수많은 과제들이 신났던 기억은 생생하다.
복수전공을 한 덕택에 유명 다이어리의 스토리 작가가 되기도 했어 글로 돈을 벌 수 있다는 것도 배웠다.
글을 쓰는 것은 늘 흥미로웠다. 마음이 기쁠 때도 슬플 때도 외로울 때도 글을 썼다. 마음이 복잡할 때 꺼내 드는 것은 언제나 일기장이었다. 그렇게 나에게 글을 쓰는 일은 가까이에 있었다. 그런데 직업을 가지면서 글을 쓰는 일에서 멀어져만 갔다. 글을 많이 써야 하는 직업인데 그러지 못했다.
접하는 글들은 늘 딱딱했다. 그들이 보기에 내 글은 물렁거려서 쓸모가 없었고, 내 글은 예전의 모습을 잃고 그들의 글처럼 딱딱해졌다. 하지만 사용되지는 않았다. 그러다 보니 글을 쓰는 일이 재미가 없어지기 시작했다. 결국 책보다 영상을 보는 일이 더 많아졌고, 글이라고는 영화를 보고 평을 조금 적어두는 것이 전부였다.
몇 년을 제대로 글과 마주하지 않은 상태로 지냈다. 책도 사기는 했지만 모두 읽지는 않았다. 그러다가 라디오를 하게 되었고 2주에 한 번씩 라디오 원고를 쓰면서 느꼈다. 재밌다. 정말 재밌다. 글을 다시 쓰고 싶다.
이렇게 계속하다가는 글을 한 줄도 쓰지 못하는 사람이 될 것 같았다. 그것 만큼은 상상하고 싶지 않았다. 결국 늦었지만 내 글을 찾고 싶어서 브런치 작가를 신청하고 글을 쓰는 강의를 들었다. 늘 글을 쓸 수 있도록 내게 채찍을 들었다.
채찍을 들으니 뭔가 쓰기 시작했다. 시작은 영상 리뷰로 했다. 가볍게 쓰고 싶었지만 직업병이 가득해서 그러지 못했다. 그리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만났던 사람(들)과 있었던 일들을 그때의 감정과 함께 기록하고 있다. 간혹 쉬어가며 일상도 기록한다.
하지만 아직도 내 글을 찾지 못했다. 그 옛날 나는 어떻게 유연하게 글을 썼던 것인지 과거의 내게 묻고 싶을 정도였다. 지금 나의 글들은 내 글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아니, 어쩌면 새로운 글을 쓰는 방식을 찾아가는 과정일지도 모르겠다. 이 알 것도 모를 것도 같은 기록들이 찾아가는 여정에 큰 도움이 되기는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