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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토로 Mar 23. 2021

경험

샘플 1-5

새로운 활동가는 활달한 사람이었다. 결혼도 한 사람이었고, 일 경험도 있는 사람이었다.

나와는 금세 친해져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나눌 정도가 되었다. 


그녀의 채용이 확정되던 날 샘플1은 너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이니 알아서 잘하라고 말했다. '고생 좀 해봐라'라는 식의 말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업무가 너무 많아서 새로운 사람이 일을 덜어가는 것도, 동성의 활동가가 들어오는 것도 정말 기대로 하고 있던 터라 그 말을 공격으로 받지는 않았다. 하지만 분명 공격이었다.

사실 지원자 중에는 나보다 나이가 어린 사람이 있었다. 내 기준 편하기야 그 사람이 편하겠으나 나에게는 채용의 권한도, 심사의 권한도 없었기에 왈가왈부하지 않았다. 그리고 권한이 있던 그는 단칼에 그 사람은 아니라고 말했다. 경험이 부족하다는 이유였다. 처음부터 가르치기 힘들고 사회경험이 없는 사람은 뽑는 게 아니라고 했다. 그는 그  말을 나를 보며 했다. 즉, 나를 겨냥한 말이었다.


나는 그곳의 일을 인턴으로 시작했다. 내가 그곳에서 일하고 싶어서 직접 연락해 학교에서 비용이 지원되는 인턴을 해도 되겠냐고 문의해서 성사된 일이었고, 사람을 뽑으려고 했던 그곳과 그곳에서 일하고 싶었던 나의 상황이 잘 맞아떨어져서 성사된 채용이었다. 여름 방학 인턴이 끝나고 마지막 학기에는 일주일에 2회에서 3회 사무실에서 업무를 봤고 종강이 되자마자 매일 출근하기 시작했다.


자랑일지 모르지만 일 습득이 빠른 편이다. 특히 시키는 일에 대해서는 더욱 그렇다. 학교 연구실에서도 2년 반 정도 있었기 때문에 행정적인 업무나 서류를 만드는 것에도 자신이 있었다. 알바도 참 많이 오래 했기에 누군가를 응대하는 것도 자신 있었다. 

다른 건 어째도 상관없으나 그곳에 기대하는 것이 있었다. 일반 회사가 아니기 때문에 자유로운 의사소통과 자유로운 의견 나눔이 가능할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그건 다 내 착각이었다. 내가 원하는 건 어느 곳이든 용납되는 것이 아니었고, 꼰대는 어디에도 있었다. 그리고 그곳도 예외는 아니었다. '저는 꼭 모든 것을 자유롭게 이야기할 겁니다!'라고 말한 것도 아니었음에도 말이다.


샘플1이 나에게 입버릇처럼 했던 말이 있었다. 

"일반 회사를 다녀보지 않아서 그래."  "그러니까 사람은 경험이 있는 사람을 뽑아야 한다니까."

그렇다고 그가 일반 회사를 오래 다녔냐 하면 그렇지 않다. 처음 내가 그곳의 문을 두드렸을 때 요즘 같은 때에 이쪽 분야에 관심이 있어서 먼저 손을 내미는 사람이 어딨냐는 칭찬에 동조해 주던 것도 그다. 그런데 약간의 시간이 지나고부터 그는 계속 저 말을 했다. 그것도 면전에 대고 말이다.

혹시 잘못한 게 있는 건 아닐까 눈치를 보게 됐고, 주눅이 들었다. 그러다 보니 자신감이 떨어졌고, 하고 있는 일에 대해 스스로가 신뢰를 하지 못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이러다간 안 되겠다고 생각하여 이전보다 더 꼼꼼하게 일을 진행했고, 그러면서 융통성은 좀 잃었던 것 같다. 특히 교육을 진행하며 누구는 해주고 누구는 안 해주고는 절대 없고, 출석도 완전 깐깐하게 보게 됐다. 사람들의 불만이 쌓여갔다(사실 아직까지 자격증 과정인데 봐주지 않아서 불만이 있었던 것은 이해가 안 간다). 내가 꼼꼼하게 변한 것도 있지만 '봐주지 말라'라고 말했던 그는 교육생들 앞에서는 나를 융통성 없는 사람이라며 나무랐다. 그리고 뒤에서는 다시 한번 봐주지 말라고 했다. 악역은 나의 몫이었다.


누군가에게 미움받기 싫어하는 마음은 누구나 같다. 그게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든 아니든 그것은 상관없다. 그런데 누군가가 다른 누군가를 미워하게 만들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는 것이 아닌가.

일한 지 몇 년이 지나 경력이 쌓인 뒤에도 그곳 외의 사회 경험이 없던(알바는 사회경험이 아니라고 했다) 나는 계속해서 저 이야기를 들어야 했다. 대체 일반 회사는 대체 어떤 곳이기에 바이블처럼 되뇌어져야 했던 것일까? 샘플1은 아마 내가 그만두는 순간에도 "그거 봐, 내 말이 맞지?"라고 했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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