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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토로 Apr 05. 2021

훔쳐 듣기

샘플 3-14

샘플3과 소통이 되지 않는 시간이 점점 길어졌다. 일에 대한 공유는 당연히 없었다. 우리는 뭔가의 일이 벌어지고 나서야 그 말을 전달해 들을 수 있었다. 엄밀히 말하면 직접 듣지는 못했다.


그는 많은 업무를 전화로 했다. 들으면 안 될 일이라고 생각되는 건 강당으로 나가서 통화를 했고, 아닌 내용은 사무실 안에서 통화를 했다. 물론 추측이지만 말이다. 우리는 일에 대한 정보를 그의 전화를 들으면서 알게 되었다. 하지만 나는 이것을 '알고 있는 것'으로 취급하지 않았다. 훔쳐 듣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듣지 않으면 그만 아닌가 싶기도 했지만 듣지 않으면 일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알 수가 없으니 미쳐버릴 노릇이었다. 이어폰을 끼고 있다가도 그의 전화가 시작되면 이어폰을 빼거나 소리를 줄어야 했다.


그러던 어느 날의 회의였다. 서로의 일정과 업무를 공유하는 시간을 오랜만에 가졌다. 샘플3이 자신의 업무를 공유하는 와중에 이렇게 얘기했다.

"저 통화하는 거 들으셨죠?"


그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일부러 그랬다. 들었다고 하면 훔쳐들은 게 되고, 안 들었다고 하면 더 이상의 대화를 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들어버렸다. 참 더러운 방식이었고, 참 지저분한 대화법이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훔쳐 듣는 사람이 아니라고 하며 필요한 얘기라면 다시 설명해달라고 했다. 그리고 할 얘기가 있으면 직접 하라고, 그런 식의 전달은 대체 무슨 방식이냐고 했다. 샘플3은 번거롭게 한다며 짜증을 냈다. 


나와 동료는 순식간에 샘플3의 전화를 훔쳐 듣는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그날의 회의 이후 그의 오히려 우리와는 하지 않는 대화를 전화를 통해 남들과 하는 일이 더 많아졌고, 우리는 그의 전화에 귀를 기울이지 않으려고 노력했지만 일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들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지속되었다.


대체 사람이 얼마나 관심을 받고 싶으면 이렇게까지 하는 건지 싶고,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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