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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토로 Apr 26. 2021

고양이와 친해지기

대실패

아침부터 분주했다. 얼굴 본지 몇 시간 만에 나에게 짖지 않게 된 곰(이라 불리지만 개)의 훈련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아직 태어난 지 1년도 안 되었지만 거대해져서 '앉아' 정도는 가르칠 필요가 있었다. 냉장고를 정리하다가 나온 포를 간식으로 하여 가르쳐볼 요량이었다.

하지만 나가는 중에 고양이에게 발목을 붙잡혔다. 엄마가 부엌에서 소리만 내면 창문 앞으로 와서 야옹 야오옹 뭔가를 달라고 시위하는 녀석들이었다. 친하지도 않은 내게 간식을 달라며 야옹거렸다. 하지만 사람 손은 절대 타지 않았다. 한 마리 빼고.

지금 집에서 살고 있는(혹은 잠깐 들리는) 고양이는 다섯 마리다. 그중에 유일하게 사람 손을 타는 녀석은 말도 많고, 식구들한테 애교도 부릴 줄 안다. 커다랗고 못생겼고, 가장 나이가 많지만 막네라고 불리는 고양이다. 크기가 커서 큰막네다.

큰막네

간식을 주려고 보니 누가 잡아온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어디선가 새를 잡아와서 이미 마당에 전시해 둔 상황이었다. 아마 큰막네는 느릿느릿해서 범인이 아닐 것이다.

간식을 살짝 내밀어 보니 큰막네가 다가와서 덥썩 입으로 물었다. 그동안은 목덜미를 만지는 것을 허락해 주었다. 오예.

다 먹고 야오옹 하길래 하나 더 주고 한 번 더 만질 수 있는 기회를 하사 받았다. 오예.


작은노랑이와 큰노랑이

그리고는 태어나서 한 번도 만나보지 못했던 녀석들과 친해져 보려고 노력했다. 사실 기대도 하지 않았는데 어어? 한 마리가 다가오기 시작했다. 이름도 없이 통으로 노랑이라 불리는 아이들 중 사진의 왼쪽 아이였다. 오른쪽 아이보다 조금 크기가 작으니 작은노랑이다. 

다가와서는 덥쑥 받아먹었다. 원래는 손으로 탁탁 쳐서 가지고 가는 것이 특기라고 들었는데 입으로 얌전히 받아가길래 내적으로 기쁨의 춤을 췄다.

하지만 그 기쁨도 잠시... 솜방망이인 줄 알았으나 무기를 숨기고 있던 손에 탁탁 얻어맞았다. 다행히 날을 크게 세우지는 않아서 얻어맞는 정도로만 끝이 났다. 그리고는 과신하고 말았다. 발길질을 하면 주지 말고, 입으로만 받아가면 줘서 그렇게 하면 안 되는 것을 가르쳐야겠다고 말이다.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고양이를 너무 믿었고, 스스로를 너무 과대평가했다. 아니 고양님을 가르쳐보겠다고 시도한 것부터가 잘못되었던 것이다.

제대로 한 방 얻어맞고 영광의 상처를 얻었다. 살짝 긁힌 줄 알았는데 주르르륵 피가 나기 시작했다. 이렇게 하면 안 된다며 고양님에게 상처를 보여주었더니 또 때리시려고 해서 그만뒀다.

"제가 죄송합니다..."

(하지만 인간은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고 오후에 츄르를 가지고 친해지려는 시도를 하다가 또 얻어맞고 또 피를 봤다. 다시 한번 "제가 죄송합니다...")

 

사실 다른 애들하고도 더 친해지고 싶었지만 근처에 오지도 않으니 어쩔 도리가 없었다. 특히 엄마고양이(큰막네보다는 어리다)와는 이전의 교류가 있었지만 한 동안 안 봤다고 또 모르는 척하시니 그 역시 내가 어떻게 거스를 수 있을까?

고양이들과 친해지기는 하늘에 별따기보다 어렵다. 이럴 땐 인간친화 소프트웨어가 패치된 고양이들이 부럽기도 하다. 하지만 어쩐담 이것도 고양이고 그것도 고양이인 걸. 그래도 고양님들을 곁에서 볼 수 있는 게 어딜까 싶다.

고양이한테 얻어맞고, 곰 훈련은 실패했다. 이로써 내가 드루이드가 아닌 것이 증명되었다. '이것만으로 큰 성과가 아니던가!'라며 스스로 위안을 해 본다. 그래도 조금 달라진 건 나를 쳐다도 보지 않던 고양이들이 그 이후에는 주변에서 알짱거리며 야옹야옹하고, 나의 기척에 도망한다는 것이다. 대실패이지만 어떤 면으로는 대성공이다.


영광의 상처를 주신 작은노랑이와 매서운 녀석
손에 상처 내고 일광욕하면서 주무시는 작은노랑님
큰 막네 빼고 가족사진, 왼쪽부터 작은노랑이-고등어-큰노랑이-엄마고양이




우리집 고양이의 역사는 동생이 실습하러 나간 곳에서 수로에 버려지고 간 '도토리'를 구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고양이라면 질색하던 부모님은 도토리가 집에 온 후 남들은 손주 자랑을 하실 때 고양이를 자랑하게 되셨고, 그러면서도 고양이는 싫다고 말씀하시는 츤데레가 되셨다. 지금 남은 아이들 중 큰막네와 엄마고양이(구 막네)만 도토리의 자식이고, 나머지는 엄마고양이의 자식이다.

여러모로 도토리는 참 신기한 고양이었다. 자신의 새끼가 돌보지 않는 새끼를 데려다가 키우며 공동육아를 했고, 이웃집의 새끼 고양이를 물고 와서 키우기도 했다. 어쩔 수 없이 그 아이 이름은 '업둥이'였다.

지금은 도토리의 많은 자식들이 다 독립했는지 없어져버렸다. 그리고 도토리도 행방이 묘연해졌다. 우리 가족들이은 겉으로는 도토리도 집을 나갔을 것이라고 말하지만 무지개다리를 건넜다고 모두 마음속으로 생각하고 있다. 목에 방울을 달고도 한 번 투정하지 않고, 멀리서 잘 놀다가도 "도톨아~"하면 멀리서도 소심하게 '얏옹'하며 들어오던 녀석이기 때문이다. 나는 몇 번 보지 않았지만 계속 같이 살던 가족들 속이야 오죽할까?

도토리가 보이지 않게 되자 부모님은 이전만큼 고양이에게 애정을 덜 주게 되었고, 그게 아마도 고양이들이 사람 손을 덜 타게 된 계기였을 것으로 보인다. 그만큼 도토리의 존재가 우리 가족과 고양이의 연결고리였던 것이다. 뭐, 그래도 밥도 주고 간식도 주고 모든 고양이를 '야눙이'라고 부르면서 눈인사를 해 주고 있으니 언젠가는 그 정성이 저들에게도 닿아 애교 한 번 부려주시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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