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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토로 May 13. 2021

말을 잘 듣는 사람

샘플 3-36

이전에 샘플3은 내가 쓴 글을 통과시켜주지 않았다. 이유는 글의 내용이 본인의 알고 있는 것과 다르기 때문이었다. 사실 확인을 다 했다고 그렇게 이야기했음에도 '그래도 나는 믿지 않아'라는 소리를 해댔다. 보도자료를 내야 했는데 한주를 미루고 미루더니 결국 한 주를 넘겼고, 그 다음 주에 또 물어보니 못마땅하다는 표현을 하면서 동의했다.

샘플3의 걱정과 다르게 그 보도자료는 성공적이었다. 기사로도 쓰이고 인터뷰도 꽤 했다. 심지어 그 내용으로 그도 인터뷰를 했다. 그러면서 한다는 소리는 "이게 되네?"였다. 화가 나는 부분이었지만 이후로 나는 이 일을 거론하지 않았다. 결과로 다 보여줬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가 또 글을 쓸 상황이 생기니 이 이야기가 튀어나왔다. 샘플3이 먼저 이야기를 꺼냈다.

"그때 니가 우기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통과시켜줬는데, 이번에는 그러고 싶지 않아서."라고 말이다.

결정권자라는 사람이 '어쩔 수 없이'라는 단어를 썼다. 그래서 물었다. 그렇게 맘에 들지 않았다면 왜 조직의 이름으로 나간 것이냐고 말이다. 심지어 운영위원회 방에도 해당 내용을 공유하고 피드백을 받았다. 과정을 따지자면 내가 우겨서 그냥 내보낸 것이 아니었다. 공유를 하고 그런 과정들을 다 거쳤고, 그 부분에 대해 본인이 '동의'하지 않았을 뿐 문제가 되는 부분은 없었다. 또 되물었다. 뭔가 문제였는지를. 모른다고 했다.


결국 결론은 이번에 쓰는 글 역시 본인의 마음에 안들 예정이라 얼굴 보고 며칠을 대화하면서 글을 써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 사안에 대해서 그동안 대화를 안 한 것도 아니었다. 얼굴을 보고 대화를 하더라도 나의 언어로 글을 쓰기 때문에 당연히 마음에 안 들 수 있기에 지금의 방식도 다르지 않다. 내가 쓰는 글은 '너의 것'이기 때문에 건들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던 샘플3은 대체 어디로 간 걸까?


이 대화에서 가장 이상한 점은 이것이었다.

샘플3이 앞서 말한 모든 말들은 내가 쓴 글을 보고 해야 했다는 것. 글을 봐야 논의하고 결정해야 하는 문구를 이야기할 수 있고, 내용이 많다면 그걸 수정할 수 있을 것이다. 시의가 시의니만큼 길게 보고 있는 것이니 우선 빼고 가야 할 것도 있고, 추가해야 할 부분도 생기게 될 것이다. 톡으로 논의하기에 내용이 많다면 휴가에 다녀와서 혹은 중간에 전화로라도 이야기를 할 수 있다. 톡이나 전화로 하는 부분이 의미 전달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하면 정말 휴가가 끝나고 이야기하자고 할 수 있는 거였다.

이 모든 이야기는 내가 여러 문제를 제쳐두고 의지를 가지고 쓰겠다고 한 그 글을 보고 할 수 있는 말이었다. 그런데 그는 지레짐작으로 나의 글을 '별로'라고 결정해 둔 셈이었다. 그 문제제기를 하자 아니라고 했다. 그럼 무슨 의미냐고 하니 지금까지 했던 말을 도돌이표 했다. 그렇게 한참을 말하더니 휴가라서 미안해서 그렇다고 했다. 웃기고 있네. 장난으로 던졌고, 내가 받았고, 받고 나니 하고 싶은 말이 많아 진거겠지.


샘플3이 말했다. 내가 그가 말하는 걸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이제 없을 어이가 남아 있지 않을 정도였다. 그렇다면 지금껏 내가 포기하고 안 한 것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이야기해주겠다고 했다. 안 듣겠다고 하길래 그렇다면 내가 샘플3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고 내 맘대로 한 것들이 무엇이 있느냐고 물었다. 기억이 안 난단다.

비난과 힐난을 하고 싶거든 예시를 하나라도 가지고 와라, 그래야 내가 변명을 하든 아니라고 우기기를 하든 할 것 아이냐 했더니 기억이 안 나고, 그래서 미안하다면서 비아냥 거렸다. 비아냥 거리지 말라고 했더니 비아냥 거린 거 티 났냐고 말하는 샘플3이 유치할 정도였다.


샘플3은 새벽에 다시 전화를 하자고 했다. 아니 내가 왜? 아니면 다음날 아침에 다시 하자고 했다. 아니 내가 왜?

그랬더니 이번에는 나를 호래자식으로 만들었다. 샘플3이 아픈 아버지의 병원에 왔는데, 이틀 동안 얼굴도 못 봤는데 나 때문에 못 들어가고 있다고 했다. 아버지를 보러 간 병원 앞에서 이런 전화를 건 것은 샘플3이었다. 전화를 걸면서 그런 고민은 없었나 보다. 끝까지 나 때문에 못 들어간다고 했다.

아니, 언성이 높아지기 전에 혹은 전화를 시작하면서 병원에 와서 그 앞에서 잠깐 전화한다는 말을 하지도 못하면서 무슨 파트너라고 말하는 것인지.

사실 샘플3의 개인적인 일로 업무의 지장이 있다. 하지만 직접 말을 하지 않아서 우리는 짐작만 하고 있었다. 자세한 내용을 공유하진 않더라도 대충의 상황을 공유해야 일은 나누든 돕든 할 텐데 그 조차도 되지 않고 있었다. 같이 일한다는 느낌이 전혀 없었다. 


나한테 어떤 일을 시키고 싶은 것인지, 아님 같이 일하고 싶은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각자 따로 일하자는 것인지를 물었다. 그랬더니 '혼자 일하기 싫어서' 내게 그렇게 말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나의 주장은 '억지'이고 본인이 쓰는 '억지'는 주장이라고 말했다. 매일 팩트팩트 그러면서 정장 본인은 팩트를 확인하지 않고, 그 팩트를 지적하면 "아닌데? 내 말이 맞는데?"를 시전하는 샘플3이었다. 웃긴다.


샘플3은 그저 말 잘 듣는 직원이 필요한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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