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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토로 May 19. 2021

예민

샘플 3-37

- 대표와의 대화_1


대표가 업무 때문에 잠깐 사무실에 들리는 날이 있었다. 공교롭게도 그 날은 사무실에 나만 있었다. 나만 있다는 것을 안 대표는 나에게 대화를 요청했다. 샘플3이 본인이 그만두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면서 말이다.

샘플3은 내가 공간 분리 요청을 한 뒤로 여기저기 여러 사람에게 자신이 어떻게 하면 좋은지에 대해서 이야기한 것 같았다. 사무실에는 그만두겠다고 말해놓고, 밖에서는 그만두지 않을 명분을 찾고 있었다.


대표는 자리에 앉자마자 샘플3에게 대충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다. 그는 큰 문제도 아닌데 샘플3과 화해를 하고 계속 같이 일하라고 이야기했다. 화해? 용서가 아니라 화해라고 했다. 나는 그의 사직을 말릴 생각이 없었다. 자신이 그만두고 말고 하는 것에 대해서 내가 결정할 이유도 없었다.

그려면서 샘플3도 아팠던 모양이고, 힘들었던 모양이라면서 그의 아픔을 나에게 말했다. 지금 당장 내가 죽을 것 같은데 가해자의 아픔을 왜 내가 이해해야 하는 것이고 왜 내가 알아야 할까? 이 말을 하는 이유는 내게 죄책감을 가지라고 말하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샘플3은 자신이 잘못했다고 하면서도 대표에게 자신이 더 이상 사무국을 통제할 수 없기 때문에 그만두는 것이 맞다고 이야기했다고 한다. 통제... 통제라... 이러는 와중에도 통제할 수 없기 때문에 그만둬야 한다는 그를, 용서를 구하지 않는 그를, 나는 용서조차 할 생각이 없었다. 그건 그가 자초한 일이다. 

사실 대표의 반응은 예상했다. '별 것 아닌 일'로 치부받을 것 말이다. 제일 걱정했지만 걱정하지 말라고 위로받은 그것이었다.


대표는 내가 자신의 말에 동의하지 않자 이렇게 말했다. 


"샘플3이 잘못했다고는 했는데, 니가 예민했던 건 아니니?"


평소에 그가 바른 이미지였기 때문에 그가 잘못을 시인했음에도 믿기 어렵다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내 앞에서 내뱉었다.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왔다. 


그러면서 자신은 내가 리더가 되는 것에 대해 불안감을 내비쳤다. 그건 사실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용을 들어보니 생각했던 것과는 달랐다. 샘플3이 나를 '인맥 없는 사람'으로 평가했기 때문에 그가 늘 해오던 정치질을 내가 하지 못할 것이라고 판단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와 다른 인맥을 가지고 있었고, 그와는 다르게 활동하고 있었다. 열심히 이야기했지만 대표의 귀에는 들리지 않은 모양이었다.

끝까지 나를 '사람과의 관계를 맺지 못하는 사람'으로 평가했다. 술자리에 가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결국 술자리에 가지 않는 이유가 샘플3 때문이었다고, 기억해 보시라 시기가 언제쯤인지까지 이야기했다. 하지만 이 역시 대표의 귀에는 들리지 않은 모양이었다.

면전에 대고 자신은 불안한데 샘플3이 나의 능력을 높게 산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가 자신의 이미지를 좋은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서 나를 팔고 있는 것은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


그래. 예상하고 있었다. 그런데 나는 왜 이렇게 실망했을까? 다른 조직에서 나왔던 '덮어 두자'던 말이 여기서는 없을 줄 알았던 것일까? 조금이라도 기대하지 말았어야 했다.


그래, 이해한다. 나도 잡음 없이 자연스럽게 해결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수많은 방법을 제시하고 시도했는데 다 안된 거고 최후로 제시한 공간 분리를 요청했던 것이다. 이러다간 몸과 마음이 다 망가져서 죽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내가 살아야만 했다. 그런 공간 분리 요청이었다. 그때 참담한 마음으로 함께 내밀었던 것이 상담확인서였다.

그런데 샘플3은 그것을 대표에게 보여줬다. 나에게 동의받지 않은 일이었다. 외부로 확장시키지 않고 내부적으로 해결하려고 했던 내 노력은 물거품이 되었고, 나의 개인정보는 나의 동의가 없이 누군가에게 보였다. 그걸 보여만 주고 회수했어야 했던 것일까?


대표와 대화하는 내내 나의 마음은 또 요동쳤다. '도망가' '왜 내가' '여기는 희망이 없어' '나는 잘못이 없어'... 대표는 내가 소문낼까 봐 전전긍긍하고 있었고, 나는 그 모든 것이 그의 입에서 시작된 것이라고 상기시켜줬다. 그리고 다른 조직의 사례를 빌어 입 다물라고 시켰던 임원의 문제를 꼬집었고, 필요하면 공론화를 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했다. 이 말을 꺼냈으니 나는 '위험인물'로 각인되었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대화가 시작될지 몰라서 대표와의 대화를 녹음하지 못한 것은 내 실수가 될 수도 있다. 이런 생각까지 해야 하니 마음은 한없이 복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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