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플 3-38
조직의 가장 큰 행사가 3월에 예정되었다. 코로나 때문에 대면으로 진행되지 않기 때문에 서류를 준비하는 것과 새로운 임원을 구성하는 것이 정말 중요했다. 하지만 샘플3은 손을 놓고 있었다.
이후에 들려온 얘기로는 샘플3이 자신은 그만 둘 사람이고 이제 내가 조직을 이끌어야 하기 때문에 큰 행사를 준비하는 것은 너무 당연하므로 그걸 잘하라고 손을 놨다고 것이다. 나의 자립심을 위해서라는 거지 같은 이야기를 했다.
내가 공간 분리를 요청한 그 다음 날부터 샘플3은 내부 업무를 진행하지 않았다. 행사 준비도 마찬가지였다. 그렇다고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고 다닌 것처럼 나를 배려해서 나에게 일을 일임한 것이 아니었다. 그냥 '나는 그만둘 사람이니까'라고 막무가내로 들이밀었다.
심지어 회의를 통해서 예산과 관련된 부분은 결산도 샘플3이 진행하고 있기에 회계를 인수인계해주지 않으면 진행할 수 없음을 이야기했다. 샘플3은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상식적으로 회계 인수인계가 되지 않은 상황에서 예산을 꾸릴 수는 없었다.
너무 답답했다. 일은 되어야 할 것이 아닌가. 사실 일을 하고 싶지 않은 사람은 나다. 하지만 책임감 없는 사람은 되고 싶지 않아서 묵묵히 일을 해 왔던 것이다. 그런데 30년 가까이 일을 했다는 샘플3이 이런 식이니 미칠 노릇이었다.
심지어 그만둔다는 말은 던지고 3개월 동안 인수인계도 하나도 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특히 샘플3이 회계를 담당하고 있었기 때문에 인수인계는 꼭 이뤄졌어야 했다. 전국적으로 중요한 부분이기도 했다. 한 곳이 무너지면 다른 곳도 와르르 무너질 수 있기 때문이다. 언제나 돈 관련된 건 대충일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행사 전, 마지막 회의 날짜가 다가왔다. 샘플3이 공식 회의에서 던져놓기만 하고 전혀, 아무것도 하지 않은 새로운 임원 구성은 이래저래 간신히 맞췄다. 임원들에게는 "제가 통화해보겠습니다."라도 했던 샘플3이었다.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조련사가 받는 꼴이었다.
그리고 예산은 결국 세워지지 않았다. 대표는 내 탓을 했다. 샘플3이 나에게 일을 맡겼다고 했기 때문이다. 나는 샘플3에게 말했던 그대로 대표에게 말했다.
"회계를 인수인계해 주셔야 예산을 세울 수 있습니다. 다른 업무 역시 인수인계해주셔야 사업계획도 제대로 세울 수 있습니다. 하나도 되지 않은 상황에서 어떻게 진행할 수 있어요. 더구나 행보를 어떻게 하시는지 정확히 말을 해 주셔야 예산을 세울 수 있습니다. 언제까지 일하시는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예산을 세워요. 그게 제일 큰데."
그래도 탓은 내게 돌아왔다. 내가 자존심 부리고 샘플3에게 의견을 묻지 않아서 그리고 대화를 하지 않아서 이 지경이 되었다는 것이다. 결국 내 탓이었다. 그만둔다고 툭 던져놓고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심지어 3개월 동안 인수인계를 하나도 하지 않은 샘플3은 잘못한 것이 없었다. 그는 나를 위해 손을 놨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