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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토로 May 24. 2021

공식적으로

샘플 3-39

행사 준비가 되지 않은 것은 모두 나의 탓이 되었고, 회의가 시작되었다.

다른 준비는 다 되었으나 예산이 준비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틀 뒤 다시 회의를 진행하기로 했다. 그리고 샘플3은 드디어 공식적으로 그만두겠다고 알렸다. 하지만 여전히 언제까지 일하겠다고는 말하지 않았다. '그만 두기는 할 건데...' 같았다. 그리고 상위 조직으로 옮기겠다고 이야기했다. 우리와는 한 번도 나누지 않은 이야기였다.

이어서 대표의 말은 더 가관이었다. 샘플3이 나를 위해서 나에게 자리를 넘겨주기 위해서 떠나는 것이며 현재 조직이 재정적으로 어려운 상황인데 샘플3이 총대를 매고 떠나 주면서 어려움을 탈피할 수 있다는 것이다. 대표는 그를 영웅으로 만들었다. 다 폭로하자는 것이 아니더라도 왜 가해자를 영웅으로 만들고 있는 것인지 분노가 치밀었다.

나와 계속 마주쳐야 하는 자리로 이동하는 것이라면 적어도 양해를 구하던지 사과를 했어야 한다. 하지만 그런 과정은 전혀 없었다. 그냥 그만둘 거고 자신은 자리를 마련해 두었다는 것뿐이었다. 나는 또 샘플3을 마주쳐야 하며, 잘못하면 그는 또 나의 상사가 될 상황에 처한 것이다.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니 그가 왜 그만두게 되었는지 말하고 싶었다. 나중에 이야기하니 동료의 마음도 같은 마음이었다고 했다. 사실 그가 무슨 잘못을 했는지 그동안 사무실에 어떤 짓을 저질렀는지 말하자면 끝도 없었지만 그냥 자연스럽게 그만두는 방식이 좋을 거라는 것에는 동의했었다. 그런데 이런 방법은 아니었다. 여전히 사과는 이뤄지지 않았고, 미안해하지도 않았고, 2차 가해 빈번하게 상황을 마무리해서는 안 되었다. 내가 그만둬야 하는 상황이 아닐까 생각했다. 이건 아니었다.


회의가 끝났다.

대표가 술자리에 참석하라고 했다. 내가 술자리에 왜 참석하지 않는지, 특히 샘플3이 있는 술자리에 가지 않는 이유를 그렇게 많이 설명했음에도 대표는 나에게 술자리를 오라고 했다. 거절했다. 사업 핑계를 대며 안 오면 안 될 것처럼 명령했다. 코로나 때문에 마스크도 벗지 않을 것이며 술도 음식도 먹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하고 사무실을 정리한 뒤 술자리에 참여했다.

식당에 들어서는 순간 헛구역질이 나왔다. 나를 포함해 4명이었는데, 내 자리는 샘플3 옆이었다. 모든 상황을 알고 있는 대표도, 당사자인 샘플3도 아무도 그 상황에 대해 문제 인식을 하고 있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것이 아니었다. 자리를 보고 경악한 나는 비어있는 옆 테이블의 대표 옆에 가서 앉았다. 샘플3의 옆자리에 앉을 생각도 없었고, 음식을 먹지 않겠다고 이미 이야기를 했기 때문에 거기 않을 필요도 없었다. 내가 자신들이 마련해 놓은 자리에 앉지 않자 대표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랬다. 그건 일부러 만들어놓은 자리였다. 그렇게 억지로 하면 뭔가 해결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었다. 감수성이 떨어진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으로 설명하기에는 그들의 행동은 폭력적이었다.

꼭 해야 한다던 사업 얘기는 택도 없는 이야기였다. 절대 안 될 사업이라는 것을 알면서 샘플3은 그들의 이야기에 동의해줬다. 나는 청소부가 아닌데, 샘플3은 계속해서 그 입으로 쓰레기를 투척하고 있었다.


자리가 끝나갈 즈음, 대표는 내 눈을 보며, 인상을 썼다. 어른들 특유의 '내 말을 들어!' 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잡음 없이 소통할 수 있게 가자."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할 가치를 못 느꼈다. 대표는 직접적으로 말하지만 않았지 내게 계속해서 입 다물라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나는 그동안 계속 입을 다물고 있었다. 그런데 계속 입을 다물라고 하고 있으니 이것은 입을 다물지 말라는 신호인가 싶기도 했다. 잡은은 대체 누가 만들고 있으며, 소통은 대체 누가 안 하고 있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아니, 알고 있지만 탓을 당하고 있는 노릇이었다.


자리가 파했다. 집으로 가는 버스에 탔다. 같이 버스에 탔던 다른 임원이 대표에게 잘 탔다고 전화해 달라고 부탁했다. "버스 잘 탔습니다. 네, 같이 탔습니다."라고 말하자마자 대표가 말했다.


"토로야! 마음을 넓게 갖자! 넓게!"

"..."

총을 맞은 것 같았다. 잠깐의 시간 동안 나는 대체 입 다물라는 소리를 몇 번이나 들은 것인지 모르겠다. 대표의 2차 가해를 언제까지 참아야 하는지도 갈음할 수 없었다.


"대표님, 저 마음 넓어요."


이렇게 말하고 전화를 끊어버렸다. 더 이상 하면 욕을 뱉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조직에 기대했던 나의 잘못이 크다는 것을 또 깨달아 버렸다. 왜 다를 거라고 생각했을까?

그만두는 게 맞지 않을까 했던 마음이 '그만둬야겠다'로 바뀌어 버렸다. 샘플3과 거리를 둔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이 조직은 썩을 대로 썩어 있었다. 샘플3이 없더라도 더 이상 대표와 일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그들은 해결할 생각이 없었다. 다만 조용히 문제가 있었던 사실을 묻어버리고 싶을 뿐이었다. 어쩜 모든 가해자들과 한치의 오차도 없이 행동하는지...


그래, 내가 그만둬야겠다. 그렇게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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