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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창조성 강사 라라 Dec 20. 2019

02 나 자신의 부모가 되어주기

내면아이치유상담


처음으로 어린 나를 돌보다

 

 나의 공감능력은 언제나 넘치다 못해 과했다. 모든 상황과 존재에 깊이 공감하고 최선을 다해 돕고 싶어 했고, 도울 수 없을 땐 미안함을 넘어서 죄책감까지 느끼곤 했다. 그런 나의 우주 최강 공감능력이 전혀 발휘되지 않는 존재를 처음 만나게 되었다.

바로 나 자신이었다.


 어린 시절 상처 받은 나를 만나 치유하는 내면아이 상담은 도무지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았다. 놀림받고, 당황하고, 두렵고, 슬펐던 과거의 상황을 떠올릴 때, 나는 과거의 나에게 전혀 공감하지 못했다. 왜 그렇게 멍청한 선택을 해서 그런 상황을 만들었는지, 왜 제대로 말도 못해서 무시당하고 바보처럼 울기만 하는지, 왜 그렇게 못나고 또 못났는지.... 공감은커녕 과거의 나에게 너무너무 화가 났다.

‘그때 그런 선택을 안했으면, 지금 이런 상처도 없잖아...’

‘그때 좀 더 똑똑하게 굴었다면 지금 이런 일을 겪지 않아도 되잖아.....’

 떠오르는 장면마다 그런 상황에 놓인 내가 한심하고 밉기만 했다. 안쓰럽긴커녕 다 너 때문에 내가 이렇게 된 거라고 마구 화를 내고 싶었다.


 어느날 상담 선생님이 ‘지금 떠오른 여섯 살의 그 아이가 조카라고 생각해보라’고 하셨다. 당시 나에겐 여섯 살 조카가 있었다. 무엇을 해도 예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사랑스러운 조카였다. 그런 조카를 떠올리니 갑자기 상황이 전혀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아수라장이 된 집에서 싸우고 있는 부모님을 보며 벌벌 떨고있는 여섯 살의 나 대신, 조카가 그곳에 서있다고 상상하자마자 가슴이 무너져 내렸다. 그 조그맣고 어린 존재가 혼자서 떨며 울고 있었다. 너무 무서워서 소리도 내지 못한 채 온몸이 얼어붙어버린 그 작은 존재를 당장 달려가서 안아주고 싶었다. 지난 상담까지는 어린 나를 전혀 돕고 싶지 않았는데, 조카를 떠올리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상담 선생님의 안내에 따라 상상 속에서 그 아이를 꼭 안고 구출해서 따뜻하고 편안한 곳에 가서 진정시키고 달래주었다. 그리고 깨끗하게 씻기고 폭신한 곳에서 편안하게 재웠다. 다시는 그런 상황에서 혼자 울게 내버려 두지 않겠노라고, 그렇게 혼자 두어서 미안하다는 말을 처음으로 어린 나에게 해주었다. 드디어 내면의 어린 나를 돌보는 방법을 깨달은 날이었다.


 그 날을 계기로 나 자신을 사랑한다는 게 어떤 건지 조금씩 깨닫기 시작했다. 그동안 내가 사람들을 배려하고, 친절하게 건넨 말을 똑같이 나 자신에게 하면 된다는 것. 남들이 잘못했을 때 위로하고 응원했던 것처럼, 내가 무언가 잘못했을 때도 야단치지 않고 위로하고 응원해주는 것. 남들에게 하지 못할 아픈 말은 나 자신에게도 하지 않는 것... 조카를 떠올렸을 때처럼, 그저 나를 타인으로 생각하니 모든 게 쉬워졌다. 타인에게는 그토록 친절하면서 나에게는 어쩌면 그렇게 잔인했을까.


  그날부터 6살, 17살, 25살.... 수많은 과거의 상처 입은 나를 만나 그때 표현하지 못했던 감정들을 공감해주고 위로해주었다. 처음에는 과거의 상황에서 내가 느낀 감정이 무엇인지조차 알지 못했다.

‘너 지금 수치스럽고 억울하구나....’

‘너 지금 엄청 화났는데, 너무 무서워서 말을 못 하는 거구나...’

‘그런 말을 들어서 진짜 속상하고 마음 아겠다....’

 상담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어린 나의 감정을 대신 말해주면서 ‘아... 이런 상황은 이런 감정이었던 거구나...’ 처음으로 감정을 인식하는 법을 배워갔다. 정확히 나의 감정을 알아주는 말을 들으면 저절로 어린아이처럼 고개가 끄덕여지면서 눈물이 쏟아졌다. 그렇게 가만가만 내 마음을 알아주고 토닥여주고, 그때 내가 누리지 못했던 것들을 누리게 해 주고, 그때 하지 못했던 말들을 하게 해 주면서, 풀리지 않을 것 같았던 가슴속 응어리들이 조금씩 풀려가기 시작했다.




시작된 변화

 그렇게 과거의 나를 돌보자 현재의 내가 변하기 시작했다.

 부모님이 싸우실 때 공포에 떨던 나를 보살펴주니, 큰 소리가 나면 가슴이 터질 것 같이 불안했던 증상이 사라졌다. 가난으로 원하는 공부를 할 수 없었던 좌절감을 있는 그대로 안아주자, 돈 많은 사람에 대한 이유 없는 분노가 줄어들었다. 왕따를 당하며 느꼈던 두려움과 공포, 수치심과 분노를 안아주자 사람들이 나를 싫어할 거라는 두려움이 사라졌다. 누구든 나를 싫어할 수 있고, 싫어해도 된다는 걸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면서, 그토록 불편하게 목매던 ‘타인의 시선’에서도 자유로워졌다.

  아무리 바꾸려 노력해도 반복던 행동 뒤에는 한결같이 알아주길 기다리는 감정들이 있었다. 그런 감정들을 무시하고 바꾸려고 노력만 하니 바뀌지 않았고, 바뀌지 않는 나를 또 책하며 미워하는 악순환을 반복했던 것이다. 하지만 과거의 감정들을 수용하고 안아주니, 현재의 나는 저절로 편안해 지면서 자연스레 바뀌기 시작했다.


 현재의 나만 바뀐 게 아니라 과거도 바뀌었다. 상상으로나마 어린 내가 원했던 모든 걸 채워주고 행복해하는 모습을 볼수록, 온통 슬프고 우울했던 회색빛 과거가 점점 핑크빛으로 변해갔다. 늘 나쁘고 우울한 일만 있었다고 생각했었는데, 같은 우울한 상황에서도 빛나고 씩씩하게 최선을 다했던 기특한 나의 모습도 볼 수 있게 되었다.


  과거의 나를 현재의 내가 위로해주고, 미래의 내가 현재의 나를 응원하는 과정을 반복하며 나는 점점 외부의 공급 없이 온전히 ‘사랑받고 있다’는 충만함을 느끼게 되었다. 더 이상 타인의 사랑을 바라지 않게 되자 정말 무한한 자유가 찾아왔다. 외부의 부정적인 평가가 있어도 크게 흔들리지 않게 되었고, 흔들린다 하더라도 혼자 나 자신을 이해하고, 공감해주고, 위로해주면서 금세 회복해갈 수 있었다. 사랑받고 싶은 맹목적 욕구에 30여 년을 시달려온 나에게, 사랑받고 싶은 마음이 사라진 자유로운 삶은 진정 혁명이었다!





나의 부모가 되어주기

  우리는 누구나 무한한 사랑을 베풀고 보살펴주는 존재가 필요하다. 하지만 현실의 부모님은 어떤 이유든 우리가 원했던 만큼의 사랑과 돌봄을 주지는 못한다. 사랑과 관심에 굶주려  언제나 사랑받고 인정받으려 애쓰고, 원하는 사랑을 주지 않는 부모님을 원망도 해보지만, 결국 결핍된 사랑을 온전히 채우는 방법은 단 하나이다. 내가 나의 부모가 되어주는 것.

 부모가 되어 내가 듣고 싶었던 말을 해주고, 내가 차마 다 말하지 못했던 마음을 이해해주는 것. 어떠한 상황에서도 믿어주고, 사랑으로 응원해 주는 것. 좋은 음식을 공급하고, 좋은 잠자리에서 편안하게 쉬게 하는 것. 원하는 게 무엇지 세심히 들어주고 최선을 다해 도와주는 것. 행복할 수 있도록 돕는 것. 안정감을 주는 것...

 종종 상담을 하며 내가 나의 부모가 되어주는게 억울하다고, 그냥 다른 사람이 나를 사랑해주면 안 되냐는 하소연을 듣는다. 물론 타인의 사랑으로도 삶이 변하고 치유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내가 나의 부모가 되어 나를 사랑하고 보살피는 건 선택의 여부가 아니라 모든 인생의 필수 요소이다. 나에게 어떤 위로가 필요한지, 어떤 순간 무엇이 가장 필요한지 설명하지 않아도 정확히 아는 사람은 나 자신뿐이다. 그러니 가장 정확히 채워줄 수 있는 사람도 나 자신 뿐이다.

 내가 나의 부모가 되어 아낌없이 베풀고 보살펴줄 때, 외부에서 오는 사랑 인정이 필요 없어진 삶에는 큰 중심이 생긴다. 그 중심으로부터 드디어 나의 삶이 시작된다. 우리는 누구나 살아가는 모든 순간 사랑이 필요하고, 사랑이 충족될 때만 모든 것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부모는 당신에게 생명을 주었지만, 또 다른 탄생이 기다리고 있다. 그것은 내가 나에게 생명을 주는 것이다. 당신 자신이 그러한 탄생의 부모가 되어야 한다. ’
 - 오쇼 라즈니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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