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창조성 강사 라라 Dec 25. 2019

05 단점은 자기수용의 열쇠

극복이 아닌 이해

내가 갖고 태어난 이 성향이 나에게 가장 적합하다는 걸 받아들이는 것

 자존감에 대한 사전적 정의는 이러하다.  

 자존감이 낮았던 나는 당연히 내가 갖고 태어난 성향이 대단히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뭐하나 제대로 해내는 것 없이 계획만 잔뜩 세우고 실천하지 못하는 내가 한심했다. 예민하다는 말을 듣는 건 정말 싫은데, 예민함을 숨길 방법이 없었다. 잘 흥분하고 감정적이어서 '오버 좀 하지 말라'는 말을 듣는 게 정말 수치스러웠다. 하지만 쉬지 않고 롤러코스터를 타는 감정 변화는 고삐 풀린 말처럼 대책 없이 날뛰었다.


  하기로 했으면 해내고 싶었다. 흔들림 없이 단단한 사람이고 싶었다. 제발 흥분하지 않고 이성적으로 차분히 말하고 싶었다. 무던하게 모난 데 없이 사람들과 편하게 어울리는 사람이고 싶었다. 내가 갖고 태어난 성향은 암만 봐도 나에게 전혀 적합하지 않았고, 사회생활이 불가능한 불량품처럼 느껴졌다. 이렇게 단점 투성이인 내가 나도 싫으니, 누구도 나를 좋아할 리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가 나를 사랑하면서 점차 안정감이 생기고 나니, 뜯어고쳐야 할 나의 단점들에 대한 다른 사실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단점이라 생각했던 것 중 일부는 나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이었다.

 게으르고 의지가 부족하다고 생각했던 건 세상 부지런한 엄마가 나의 기준이었기 때문이었다. 나의 체력은 엄마처럼 쉬지 않고 일할 수 없는데도,  과도한 계획을 세우고 버겁게 진행하려 애썼다. 하지만 체력이 달리니 일이 밀리고, 제 때 일을 해내지 못하는 나를 ‘게으르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다른 사람과 대화할 때 내 하소연만 늘어놓았던 건, 미처 알아주지 않고 억눌러온 감정들이 너무 많이 쌓여있어서 였다. 어떤 감정을 얼마나 억누르고 있는지도 모르면서 ‘자기 힘든 얘기만 늘어놓는 이기적인 사람’이라 나를 탓했던 것이다.  


 엄마의 기준대로 움직이려 했던 나를 이해하고 ‘나만의 성실함’의 기준을 새로 만들면서, 쌓인 감정들을 알아주고 공감해 주면서, 내가 고치려 노력했던 단점 아닌 단점들은 저절로 사라졌다.  


 단점이라 생각했던 것 중 일부는 뒤집으니 모두 장점이었다.

 격정적인 감정에서 허우적대는 내가 주변사람들에겐 불안한 존재로 보였겠지만, 폭넓은 감정의 스펙트럼 덕에 누구보다 깊은 공감의 말을 건넬 수 있었다. 단체생활이 불가능한 예민한 감각은 작곡할 때 빛을 발하는 재능이었다.


  단점과 장점은 동전의 양면처럼 한 세트, 만약 단점을 없앤다면 그로 인해 누리고 있는 장점도 함께 사라지는 것이다. 나의 예민한 감각과 격변하는 감정이 불편하다고 해서, 작곡할 수 있는 능력을 버릴 수는 없 않은가.

 나는 단점으로 인해 불편한 일을  겪을 때마다 그 단점과 세트로 누리는 장점들을 떠올렸다. 장점이 귀하고 좋을수록, 그 반대면의 단점으로 인한 불편은 기꺼이 감수할만한 가치가 있었다. 


단점은 고쳐야 할 점이 아니라, 더 많은 보살핌이 필요한 부분이었다.  

   아무 노력도 하지 않아도 저절로 되는 부분이 장점이다. 거저 주어진 복이니 장점은 마음껏 누리고 쓰면 된다. 반대로 아무리 노력해도 잘 안 되는 부분이 단점이다. 저절로 되지 않으니 보다 세심한 배려와 보살핌이 필요하다.


 나는 시간 개념이 매우 희박하다. 지각하지 않고 제시간에 가려면 남들보다 몇 배 더 긴장해야 한다. 

  지각은 내 인생의 골칫거리였다. 지각으로 대학입시를 못 보기까지 하고도, 정신 못차리고 계속 지각하는 나는 구제불능이라 생각했다. 그럼에도 지각으로 인한 문제는 계속되었고, 지각이 트라우마가 될 지경이었다.

 런데 '시간을 맞추는 건 남들에겐 별 것 아니어도 나에게 굉장히 어려운 일'이라는 걸 이해하고, '잘 못하는 일이니 더 많이 신경 써서 돌봐주자'라고 생각을 바꾸고나니, 지각으로 인해 더이상 자책하지 않게 되었다. 자책을 멈추니 지각으로 인문제들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나의 단점을 들키지 않으려 애쓰고, 단점을 고치려 노력했던 모든 시간은 고통이었다. 나의 자연스러운 모습을 보일 수 없으니, 몸과 마음이 늘 한껏 긴장하고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될 수도 없고, 될 필요가 없다는 걸 알고 나니, 몸도 마음도 긴장을 내려놓고 점점 편안해졌다.

  당연하게 생각했던 장점들도 보다 적극적으로 누리기 시작했다. 아무 노력도 안 하고도 말을 잘할 수 있다니! 이렇게 목소리가 좋다니! 웃는 얼굴이 예쁘다니! 이 복 받은 존재 같으니라고! 멋져! 멋져!! 멋져!!!


  단점은 잘못된 것도 아니고, 고쳐야 할 것도 아니었다. 단점이 나쁜 것도, 장점이 좋은 것도 아니었다. 단점과 장점은 그저 나를 이루고 있는 여러 모습들일 뿐이었다. 나는 이제 나를 구성하는 모든 특성을 정말로 '있는 그대로' 수용할 수 있게 되었다.


   나로서 완벽했다. 아무것도 바꾸지 않아도 되고, 무언가 더 갖추지 않아도 되는 완벽한 존재.  나의 단점 그 완벽함의 일부였다.





 나는 정말로 내가 좋아졌다.

내가 그토록 바꾸려 하고, 바꾸지 못해 스스로를 저주했던 나의 모든 모습들이 진심으로 사랑스러워졌다. 내가 가진 모든 것들을 축하하고, 나에게 거저 주어진 것들을 찬양했다. 나는 부족한 사람이 아니었다. 나는 이미 가진 게 너무 많았고, 그 모든 것은 처음부터 내 안에 있었다. 내가 변한 게 아니라, 원래 갖고 있었던 것들을 이제야 볼 수 있는 시야가 열린 것이다. 상황이 변한게 없는데도 내 삶은 점점 축제로 바뀌어갔다. 상담과 치유모임이 시작된 지 단 4개월 만 변화였다. 


 아무리 막막하게 얽힌 문제라도 한 번에 하나씩 차근차근 해결하기 시작하면, 결국 얽힌 실타래를 풀 수 있음을 경험한 것은 기대하지 못했던 큰 선물이었다. 처음 상담을 시작할 때의 절망과 회의감은 ‘하면 결국 된다’는 자신감으로 바뀌, 그 자신감은 이후 상담사가 되었을 때 과거의 나와 같이 절망에 빠진 내담자에게 ‘반드시 좋아질 수 있다’고 용기를 불어넣는 힘이 되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우리는 누구나 반드시 자신이 원하는 삶으로 옮겨갈 수 있다. 죽음에서 삶으로, 절망에서 행복으로, 나를 미워하는 것에서 나를 사랑하는 것으로.



" 만일 신이 내가 숱이 많은 검은 머리카락의 수줍은 소녀가 되길 원하셨다면, 아마 그렇게 만드셨을 것이다. 하지만 그분은 그러지 않으셨다. 그렇다면 내가 어떻게 만들어졌고, 그 안에서 어떻게 완전히 구현되었는지 받아들이는 편이 더 유용할 것이다. "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중에서


매거진의 이전글 04 나를 사랑하기 훈련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