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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돈 Dec 04. 2019

할아버지에게 드리는 고별사

장례식 때 낭독했던 고별사를 여기에 기록으로 남겨둡니다.

할아버지에 대한 고별사를 부탁받으니, 문득 어린 시절의 기억이 먼저 떠오릅니다. 할아버지는 제가 기억해낼 수 있는 가장 오랜 시절의 기억부터 저와 함께하셨고, 때문에 제 유년의 풍경은 할아버지의 흔적으로 드문드문 채워져 있습니다. 이제 저는 제가 지켜본 할아버지의 삶을 돌이켜 봄으로써 가족들과 할아버지를 추억하고자 합니다.


OO 아파트에서 살던 다섯 살 무렵, 저는 호기심에 단추를 한쪽 콧구멍으로 밀어 넣었다가 다른 쪽 콧구멍을 틀어막고 콧김을 불어 단추를 밀어내는 장난을 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실수로 단추가 콧구멍 안으로 넘어가 버렸고, 큰일이 난 줄 알았던 저는 집에 유일하게 계셨던 다급하게 할아버지를 찾았습니다.


“할아버지! 나 단추 콧구멍으로 집어넣었다가 단추가 콧구멍으로 들어가 버렸어. 어떡해! 엉엉...”


제 말을 들은 할아버지는 침착하게 제 등을 때려서 단추를 토해내게 했고, 저는 단추가 나왔음에도 놀란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대역죄인이 된 마냥 엉엉 울었습니다. 할아버지는 그런 나를 진정시키며 큰 잘못이 아니라고, 제 울음이 잦아들 때까지 계속해서 달래셨던 기억이 납니다.


새삼 잊고 있었는데, 어린 시절을 돌이켜 보니 할아버지와 저는 서로 장난도 치고 짓궂은 말을 할 정도로 친하게 지냈습니다. 물론 잔소리도 많이 들었고 혼나기도 많이 혼났지만, 할아버지는 저를 직접 혼내시기보다는 할머니와 다투고 나서 속상해하고 있는 저의 마음을 달래주는 중간자의 역할에 항상 충실하셨습니다. 그리고 손재주가 서툴렀던 저에게 할아버지는 배선이면 배선, 경첩이면 경첩. 집안의 고장 난 곳이라면 뭐든 고칠 줄 아는 만능 엔지니어였습니다. 중학생 시절에는 학교까지 오토바이를 태워 주시다가 휘청거리며 같이 넘어지기도 하고, 고등학생 시절까지도 새벽에 일어나 할아버지와 함께 목욕탕을 다녀왔던 기억이 납니다. 제가 군대를 전역하고 잠시 쉬고 있던 시절에도 집에서 놀고만 있으면 뭐 하냐며 밭에 나가 밭일을 하시던 할아버지. 저에게 있어 할아버지는 쇠하지 않는 기력의 상징이었고, 영원히 돌아가시지 않을 것 같던 젊음의 상징이었습니다.


그랬던 할아버지가 병원에 입원을 하셨습니다. 늘 생동감 있게 부지런히 움직이며 사시던 할아버지가 병실에 누워 정적으로 계시기 시작하면서 제가 할아버지와 쌓아 오던 추억의 시계는 어느덧 멈춰버린 듯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여전히 할아버지가 가지고 계셨던 삶의 의지를 의심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항상 기침을 하며 숨 가쁘게 호흡하셨던 당신의 모습에 익숙해져 있던 탓도 있었지만, 몸이 괜찮냐고 여쭐 때마다 ‘아냐, 괜찮다고, 괜찮아.’라고 씩씩하게 대답하시던 할아버지였기에 저는 할아버지의 쇠약함을 잘 느끼지 못했는지도 모릅니다. 언제나 삶에 대한 끈기를 가지고 계셨고, ‘갈 길이 바쁘지만 네 증손자를 보기 전까지는 내가 어떻게 떠나느냐’며 늘 저를 보채시던 할아버지. ‘내가 결혼 안 하면 증손자 기다리느라 백 살은 채우시겠네. 기왕 오래 사신 거 백 살까지는 사셔야죠.’라고 짓궂은 농을 하며 병문안을 나서는 저를 위해 보행보조기를 끌고 엘리베이터 앞까지 나와 손을 흔드시던 모습. 그 순간만큼은 마음이 약해져 눈시울이 아릿해지곤 했지만, 금세 제 갈 길을 가며 너무 쉽게 당신을 잊고 지낸 나날들. 뒤늦게야 건강하셨던 당신의 예전 모습을 오랫동안 잊고 지냈다는 사실에 통탄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할아버지. 이제 육성으로는 대답하실 수 없는 그리운 목소리지만 할아버지를 나직이 불러봅니다. 저의 할아버지로서, 아버지와 삼촌, 고모들의 아버지로서 긴 세월 헌신하며 묵묵하게 풍파의 세월을 인내하신 할아버지. 이제 아픔과 괴로움을 내려놓으시고 먼저 천국으로 떠나신 할머니와 재회하여 행복한 영원을 누리시길 기원합니다. 저희는 할아버지의 유지를 받들어 저희에게 물려주신 삶을 열심히 살아가겠습니다. 사랑합니다. 그리고 잊지 않겠습니다.


할아버지의 자랑인 장손 안상현이 가족을 대표하여 이 글을 바칩니다.

전화를 하면 귀가 어두워져 제가 하는 말을 잘 못 알아들으시면서도 늘 '전화해줘서 고맙다, 고마워'라고 다정하게 말씀하시던 할아버지.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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