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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다름 Nov 20. 2020

6. 휴직 후 소소한 변화

  휴직 전에도 다이어리를 썼지만 지난 우울증의 결과로 종이만 덕지덕지 붙어있다. 이 종이로 말할 것 같으면 핸드폰에 매일 아침 출근하며 기록한 우울증 일기이다. 이 기록을 보고 병원에 가서 그간 증상에 대해 설명할 수 있었고, 힘들었다가 나아지는 나의 모습을 관찰할 수 있었다. 우울증이 심했던 동안 다이어리가 텅 비어있는 게 마음이 아파서 이 기록을 프린트해 덕지덕지 붙여놓았는데, 이게 또 그 나름의 매력이 있다.     

 

 휴직 후 나의 다이어리는 그 후의 내 삶처럼 색색의 형광펜이 가득가득 칠해져 있다. 그동안 하지 못했던 것들, 작지만 행복을 느낀 것들에 형광펜을 쳐놓았는데, 멀리서 펼쳐 놓고 보면 빨간 머리 앤이 말한 대사가 떠오른다. “행복은 매일매일 있어”. 휴직을 하고 나서 우울증도 많이 회복이 되었다. 사실 휴직 후 쉬기만 해서 우울증이 확실히 회복된 건지 잠시 웅크리고 다시 힘을 퍼뜨릴 준비를 하고 있는 건진 모르겠다. 다만 지금까지 나의 일상은 행복하다.      

 

 휴직 후 나의 일상은 소중해졌다. 그전에는 하루하루의 행복을 모르고 살았다. 회사에 가서 또래 동료들을 만나면 늘 물었다. “주사님, 요즘 삶의 낙이 뭐예요? 직장생활의 낙이 뭐예요?” 그러면 다양한 대답이 돌아왔다.     


“왜 직장에서 그런 걸 찾아? 그런 건 회사 밖에 있어”

“점심시간에 분위기 좋은 카페에서 커피 한 잔 마시는 게 낙이야”

“전세대출 갚는 것도 낙이라 할 수 있을까?”     


  많은 답을 들어도 나에겐 불충분하기만 했다. 책을 보면 하루하루 일상의 소중함을 느끼라는데, 나는 도저히 찾아보려야 찾아볼 수가 없는 거였다. ‘그래, 점심시간 커피타임 나도 좋아해. 근데 그걸로는 아니잖아. 차라리 나도 빚을 져볼까? 이참에 차를 사볼까? 빚지지 않고는 이곳을 계속 다니긴 힘들 것 같아’ 이런 고민만 수없이 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휴직을 하고 나니 행복은 도처에 널려있었다. 아침에 일어나 잠시 게임을 한다던가, 아침과 점심을 원하는 시간에 여유롭게 먹는다던가, 글감이 떠오를 때 노트북을 켜고 글을 쓸 수 있다던가, 언제든 책을 들고 동네 카페로 향할 수 있는 것. 나에겐 이런 소소한 것들이 행복이었다.     


  사실 휴직을 하지 않아도 일상에서 행복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나는 아니었다. 그만큼 직업에서 느끼는 불만족과 스트레스가 컸다고 생각한다.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나도 하지 못하는 삶은 얼마나 괴로운가. 자유를 위해 책임을 지며 산다고 생각했는데, 진정 자유가 없던 내 삶은 얼마나 불행했던가. 그런 것들을 최근 느끼고 있다.      


  휴직 후 고민거리도 당연히 있다. 나의 미래에 대해, 앞으로의 삶의 방식에 대해 많은 고민이 든다. 또, 우울증 환자는 행복할 때 이런 생각도 든다. ‘지금 행복하니까 그만 죽으면 어떨까, 이렇게 행복할 때 죽고 싶은데’ 그래도 너무 걱정은 마시라. 아직은 해보고 싶은 게 조금 많아서 그런 생각도 금방 접게 되는 게 나의 소소한 변화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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