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방에 누워본다. 가끔 비어있는 아이방에 들어와 책상에 앉아보고 침대에 누워도 본다. 아이가 요즘 사용하는 펜을 들어 돌려보고 책상에 엎드려 보기도 한다. 베개의 냄새도 맡아보고 침대 사이사이 숨어있는 양말도 끄집에 낸다. 아이 방에 누워있으면 마치 아이가 된 것처럼 생각하게 된다. 아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그 것은 묘한 떨림이 있다. 몇 달전 안방에서 나왔다. 남편은 부부의 방에 홀로 남겨졌다. 낯선 부부의 침대에 누워 홀로 남겨졌을 남편을 생각해본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나의 어려움에 대한 남편의 '모르는 척'이 서운했다. 그래서, 밤에 일을 편안하게 하고 싶은 마음을 보태어 나만의 방으로 도망쳤다. 그렇게 사소한 일들이 관계의 단절로 이어져 오랜 상처를 만들었다. 모두가 잠들어 있는 도시의 축축하고 어스름한 새벽, 커다란 거실 창 너머 구름사이로 달이 숨어버렸다.
비어있는 달 2020
언제나 그렇듯
꼭꼭 숨어버린 달을 기억해요
오랜시간 눈을 맞고 있었어요
그리고,꼭꼭 숨어버린 나를 기억해요
몸안의 오장육부를 살펴 보면 상생과 상극이 있다고 한다 . 시작하게 하고 성하게 하는 것이 '상생'이라면 '상극'은 서로를 제어함으로 오장을 유지한다고 한다. 하나의 장기가 기운을 과하게 쓰면 상극의 장기가 그것을 조절한다는 것이다. 간담이 기운을 써서 넘치면 비위가 그것을 제어한다는 것으로 무엇이든 '발산'을 하면 '수렴'을 거치는 시간이 이어진다는 것이다 . 상극하지 못하면 지키지 못하는 것처럼 남녀간, 부모자식간, 친구간으로 연결되는 모든 관계에는 어떤 상생과 상극이 존재할까?
갈등이 이어지자 나와 남편의 다른 점들만 찾고 있었다. 먹는 것도 보는 것도 생각하는 것도 모두 너무 달라 어떻게 결혼하게 됬을까? 그 이유를 생각해본적도 있다. 공통점보다는 무한대로 찾아지는 차이점은 결국 '포기'라는 것을 하게 만들었다. 다름을 서로 인정하고 조율하려는 소통의 과정을 겪는다면 사랑은 더욱 공고해 질 것이다. 하지만,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을 포기한다면 불같았던 사랑도 숨어버린 달처럼 기억하지 않으면 볼 수 없는 존재가 되기도 한다. 시간이 가도 길들여 지지 않고 늘 당혹스럽게 만드는 상황을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 지 하루는 알고 하루는 모르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내가 벌린 일들에 대한 남편의 태도를 보면서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생각했다. 나라면 그처럼 할 수 있었을까? 아마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고마웠다.
"일억오천을 날리고 천오백억짜리 남편을 얻었네" 라고 농담을 할 만큼 마음이 가벼워졌다. 아이들의 표정도 밝아지고 서로 마음을 표현하는 것도 자연스러워졌다. 일년가까이 무거웠던 집안의 기류가 빠르게 변화하고 있었다. 몸이 순환하지 않으면 아프게 되는 것처럼 관계가 막히면 역시 많은 것을 불편하게 한다. 몸 속의 기류가 나쁘면 호흡이 가빠진다. 차를 마시면서 숨을 고르면 거칠었던 호흡이 고요해진다. 사람을 아프게 하는 이유들을 생각해본다. 무엇이든지 함부로 쓰면 고갈되고 무조건 아끼면 결핍된다는 몸안의 풍경을 놓치지 말고 모든 발란스를 맞춰가야겠다는 생각을 든다. 우리는 숨을 들여 마시고 내쉬면서 외부와 소통한다. 숨을 쉬는 것이 살아있음을 증명하듯 외부와 소통하면서 내가 살고 있다라는 것을 느끼고 싶었던 마음이 끊임없이 나를 고백하게 만드는 것 같다 . 그림을 그리는 것처럼 글을 쓰는 것도 살아있다는 것이다.
물질이 해결되면 불안이 해결될까? 나의 삶을 이해하고 나를 둘러싼 관계맺음에 대한 흐름을 이해한다면 좀 더 편안해질까? 오늘도 잘 흘러가고 있다. 내일도 흐름이 막히지 않도록 균형을 맞춰갈 것이다. 물질은 나를 편안하게 해준다. 하지만 물질이 사라져도 나를 편하게 해주는 것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돈은 사라졌지만 삶은 계속되었고 나도 변화하고 있다.
비어있는 달 2020눈을 질끈 감고 상상해보자. 그것은 부드러운 양탄자 위에 앉아 새로운 마술을 보는 것만큼 기분좋은 일이며 마술의 기술을 들켜버린 마술사의 슬픈표정을 읽어내는 것만큼 미안한 일이기도 하다.
-나도 예쁜 그림 그리고 싶다 중에서 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