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외적인 이유나 내적인 문제가 생길 때 치유의 힘을 필요로 한다. 누군가에겐 가족이, 사랑이, 물질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삶의 중심은 개인의 선택이기에 어떤 무엇이 되더라도 존중받아야 한다. 오늘은 미약하나 그래도 ‘의미 있는 존재’라고 스스로 토닥이지 않으면 오늘은 많이 외로울 것 같은 그 순간, 나만의 비법 수프라도 만들어 살아갈 궁리를 하는 것이다.
행동이 느린 나는 잔잔한 수면 위를 걷는 것처럼 천천히 몸을 움직인다. 빠르게 움직이지 않고 생각에 잠기는 것이 때론 옆에 있는 사람들을 속 터지게 만들기도 하지만 잔잔한 움직임은 주변을 세심하게 관찰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그리고 그들에게 필요한 것을 생각하는 마음의 자리, 한 귀퉁이 내어줄 수 있는 여유도 있다. 세상이 끝나버린 것 같은 와중에 노트북을 붙잡고 글을 쓰고 있다는 것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무엇이 나를 강하게 끌어당기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쏟아내기 시작했다.
계획을 세우고 쓰는 것도 아니었다. 생각의 흐름을 따라 나를 보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내 마음이 보이는 것도 아니었다. 나의 움직임, 내가 했던 말들, 관계 속에서의 나의 행동을 보기 시작하니 사라진 기억들이 하나둘씩 떠오르고 있었다. 사라진 기억은 현재의 심리적 기반 위에 드러나는 것이어서 기억 그대로 읽혀질 수도 있지만 어떤 방어기제에 의해 왜곡될 수도 있다. 그것도 나의 심리를 반영한 것이니 나에게 일어나는 방어기제를 발견한다는 것도 의미 있는 지점이었다.
힘이 드는 데 왜 글을 쓰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다. 잠시 머뭇거리게 하는 질문이나 이제는 좀 더 확실해지는 느낌이다. 글을 쓰게 되면 내가 어떤 길을 가고 있는지 살펴보게 된다. 어리석게 놓쳐버린 것도 많았다. 그것이 돈이 될 수도 있고 기회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놓치지 않으려고 했던 것이 분명 있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 가“ 존재에 관한 근원적 질문에 늘 답을 하면서 살았던 것 같다. 빛을 향해가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기에 가장 편하고 자유로운 것이 글쓰기였다. 마음의 면역력의 경계에 서서 우리는 불가피하게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이 있다. 이런 선택을 할 수 있다는 것도 어쩌면 행운이다.
이유 없이 일어나는 일은 없기에 순간순간 일어나는 일들을 유연하게 대처하는 기술이 생기게 되는 것도 분명 치유의 과정에서 생기는 보너스이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의미 있게 살려고 노력하는 것은 대단한 것이 아니라 그냥 '불안한 내 영혼에 작은 양식'을 주는 것이다. 그리 비싼 재료를 넣지 않아도 복잡한 요리의 과정을 거치지 않아도 내가 좋아하는 맛과 향이면 그것만으로도 최고의 식단 이다.
정성스럽게 음식을 만들어 함께 먹으며 이야기보따리를 풀고 함께 울고 웃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정성을 다해 단식을 안내하며 몸의 시간을 돌리는 일을 하고 있다. 동시에 치유의 그림과 글로 마음의 세포를 바꾸는 일을 하는 나의 삶의 변화를 단 몇 줄의 글로 정의하기에는 아직도 마음속 구멍이 많다. 하지만 몸과 마음을 알아가는 과정을 코칭하며 존재의 이유를 의미 있게 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