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으로 향하는 글쓰기

by 고요
사람에게는 다양한 욕망이 존재한다. 그것은 물질이 될 수도 있고 건강, 사랑, 성에 대한 비물질적인 욕망도 있다. 무엇인가 향하는 글은 드러내고 보여지는 것이라 결과가 중요해지게 된다. 욕망을 드러내는 글쓰기라는 것은 밖으로 향하는 글쓰기이다. 글쓰기의 매력은 움직이고 변화한다는 것이다. 의도하지 않았던 마음의 변화를 인식하게 된다는 것이다.


아토피는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가려운 것이어서 아이는 깊은 잠을 이루지 못했다. 아픈 아이의 고통은 부모라도 대신해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겪어보지 못한 사람은 모른다고 하는 가려움으로 아이는 밤새 울었고 몸이 가려워서 정신없이 긁었다. 손 싸개를 씌웠다가 아이가 벗기게 되어 모든 옷의 소매를 꿰매주었다. 가려운데 긁지도 못하게 옆에서 지켜봐야 하는 엄마와 태어나서 참는 것부터 배워야 하는 아이와 지내는 시간은 하루하루가 ‘전쟁터’였었다. 하루는 깜박 졸다가 이불이 축축해지는 것 같아서 잠에서 깼다. 아가의 오줌이 새어 나온 줄 알았다. 기저귀를 갈아주려고 불을 켜자마자 소스라치게 놀랐다. 아이의 다리는 물곤 이불까지 피로 물들어 있었다. 아기는 나를 보고 까르르 웃었다. 꿰매주었던 소매 틈 사이로 손가락이 나와 손톱으로 가려운 다리를 긁었던 것이었다. 그날 밤 나는 피투성이가 된 아이를 안고 짐승처럼 울었다.



사람을 가장 무섭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알 수 없는 병, 치료제도 방법도 몰랐던 아토피에 대한 불안감은 마음 한 켠에 두려움과 공포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을 인정하기까지 꽤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픈 내 새끼. 여느 어미처럼 세상 행복하고 귀하게 키우려던 계획은 생후 한 달 만에 여지없이 무너졌다. 이제는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는 이십여 년의 시간을 보내며 아이와 함께 크고 있다. 그리고, 많은 시행착오 끝에 알게 되었다. 아토피는 결국 아이의 몸과 친구처럼 지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시절 아이들의 이야기를 기록하지 못했다. 육아의 고단함도 있었지만 기억하고 싶지 않은 현실을 애써 글로 쓰고 싶지 않았다. 오랜 시간이 흘렀고 그림을 다시 그릴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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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맑음> 전시를 시작으로 <어느 날, 오아시스> <오아시스 너에게> 그리고, <설레는 몸>까지 일련의 전시를 준비하면서 아이들의 아픈 기억을 잊었다. 잊어야 살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지워버린 아픈 기억과 달리 시골 생활의 즐거움과 자연의 아름다움만을 기억해서 그림을 그렸다. 봉인된 기억을 꺼내기까지 시간이 필요했고 기억은 선택이 가능한 일이었다. 그림만 그렸던 다른 전시와 달리 글에 집중해서 준비했던 전시가 <설레는 몸>이었다. 10여 년간 가족과 일상에 관한 이야기를 그림으로 그렸던 나에게 아이들이란 익숙하지만 힘든 주제였다. 기억을 지우고 아름답게 그렸던 그림과 달리 글로 쓰는 <설레는 몸>은 지웠던 기억을 찾아내고 있었다. 그림은 여전히 아름다운 자연과 일상 속에 있었기에 아마 글로 쓰지 않았다면 찾아지기 힘들었을 것이다. 죄책감이라는 이름으로 지워버린 기억이었다. 신혼생활도 없이 고단한 육아로 부부가 덜어낸 결혼의 꿈도 컸다.

바라는 마음이 크다는 것은 욕망을 향해가고 있다는 것이다. 원하는 것이 많으니 무게가 점점 무거워질 것이다. 결국, 밖으로 향하는 글쓰기는 사회속에서의 나를 정의하기에 관계에 대한 근원적 물음에 답을 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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