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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소연 Aug 13. 2019

형님, 저 춤 안춥니다.

[space story]  09.  캬바레

1960년대, 충무로 영화판에서 꽤 이름을 날리고 있던 J 감독은 춤꾼으로 소문난 사람이었다.


베레모를 삐딱하게 눌러쓴 그가 카바레에 떳다 하면, 수많은 여인네들의 가슴이 벌렁벌렁 대는 소리에 그렇잖아도 끈끈한 카바레가 일순 소용돌이에 휩싸였다.


음침한 조명에 한복을 차려입은 여인네들은 그저 J 감독의 품에 안겨 스텝을 밟는 것을 소망으로 카바레에 몰려들곤 했다. 옴팍한 여인네의 허리에 오른팔을 감은 채, J 감독은 찍고 돌리고 가끔 당겨가며 여인네들을 몸살 나게 만들었다.


그의 춤 솜씨는 그 일대 전문 춤꾼들조차 혀를 내두를 정도였으니, 카바레의 여인네들에게 그의 인기가 어느 정도였을 지는 짐작 할만 하다.


사실 카바레라는 곳이 묘한 곳이었다. 오스트리아의 유대계 작가인 S. 츠바이크는 그의 저서 중에서 “언제 댄스를 하단 말이야! 자꾸만 되풀이하여 피를 긁어 올리고 서로 몸을 비비대며 음탕한 짓을 하고 마지막에는 몸의 살까지 태우는 것이 예사란 말야.” 라고 말하기도 했듯이, 서로의 몸을 밀착한 채 춤을 추다 보면, 아무리 낯선 상대라 할지라도 묘한 기분이 드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니겠는가.


J 감독도 남자였기에 가끔은 은밀한 즐거움을 뿌리치지 못했다. 마음에 드는 여인네를 만나면 그는 일단 환상적인 돌리기와 찍기로 여인네를 환상적인 춤의 세계로 이끌었다. 그 다음은 부드러운 키스로 이어진다. 여인네가 키스를 허락하면 그것은 엉덩이를 만져도 좋다는 허락이었다. 엉덩이를 만지고 나서도 가만히 있다면, 다음 단계로 가슴을 만져도 좋다는 무언의 허락이었던 셈이다.


해서, 카바레 구석 어두운 곳에서는 여인의 한복 치맛자락 속에 파묻혀 헉헉대는 춤꾼들을 간혹 볼 수 있었는데, 그래도 J 감독은 나름대로의 쇼셜 포지션(social position) 때문에 나름대로 절제를 하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의 사무실에 미모의 20대 초반 여성이 찾아왔다.


“춤을 배우고 싶어요.”


당연히 그는 코웃음을 치며 그녀를 물리쳤다. 영화 촬영하랴, 춤추러 다니랴 그가 완전 초짜에게 춤을 가르칠 만한 시간과 여유가 있을 리가 없었다.


그러나 그 다음날 그는 마음을 고쳐먹어야 했다. 왜냐하면 그녀로부터 커다란 책상이 하나 배달되었기 때문이었다. 무슨 책상인가 의아해 하던 그는 서랍을 열어 보고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책상 서랍마다에는 빳빳한 지폐 묶음들이 가득 들어 있었다.


그날부터 J 감독은 그녀의 춤 선생이 되었다. 그녀는 뛰어난 몸매를 가진데다가 선천적인 감각으로 훌륭한 제자가 되었다. 처음 돈을 보고 시작한 강습이었지만, J 감독도 나름대로 그녀와의 춤을 즐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매일매일 그의 책상에는 빳빳한 지폐가 꼬박꼬박 다시 채워졌으니, J 감독이 그녀의 춤 선생 짓을 그만둘 리가 만무했다.


그렇게 한달 보름이 지나자, 생판 아무 것도 모르고 시작한 그녀였지만 나름대로의 수준에 도달했다. 그녀는 자신의 실력을 한 번 평가해 보고 싶었는지, J 감독에게 한 가지 제의를 했다.


“실전에서 뛰고 싶어요.”


J 감독은 그녀를 데리고 자주 가던 카바레로 향했다. 한복을 차려 입은 채  J 감독만 기다리고 있던 여인네들은 그가 데리고 온 젊은 미모의 여성에게 질투의 시선을 보냈다. J 감독은 으쓱해지는 어깨의 힘을 빼며 유연하게 그녀의 허리를 감고 카바레를 돌았다. 여기저기서 질투와 선망의 함성들이 터져 나왔다.


사무실 마룻바닥이 아니라, 알록달록한 조명 아래서의 그녀는 너무나 매혹적이었다. 붉은 입술은 바로 그의 코앞에서 달싹였으며, 젊디젊은 생기가 온 몸에서 넘쳐나는 듯했다. 막 불혹을 넘긴 그는 이대로 그녀의 매력에 폭 빠져 버릴 것 같은 위험을 느꼈다. 그녀의 땀 냄새가 막 그의 코  끝에 스쳤다고 느낀 순간, 그는 어깨를 휘어잡는 억센 남자의 손길을 느꼈다.


“형님, 잠깐 좀 같이 나가실까요.”


그들은 그 당시 꽤 이름을 날리는 정치 깡패의 수족들이었다. 평소 영화판에서 안면이 있던 녀석들이라, J 감독은 눈을 내리깔며 입을 열었다.


“뭐야, 자식들아. 춤추고 있는 거 안 보여? 할말 있으면 끝날 때까지 기다려.”


“나가시는 게 좋을 겁니다, 형님.”


평소 때와는 달리 눈에 힘을 주는 그들의 눈빛이 심상치 않았다. J 감독은 그녀에게 잠시 기다리라고 한 뒤 그들을 따라 나갔다. 그들이 J 감독을 데리고 간 곳은 으슥한 골목 어귀였다. 그들이 J 감독을 거세게 벽으로 밀어붙였다.


“형님, 맞아 주셔야겠습니다.”


“왜… 왜?”


더듬거리는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너 댓 명의 주먹이 일시에 그의 안면을 강타했다. 그들은 그의 다른 곳엔 손을 안대고 오로지 얼굴에 상처를 내기 시작했다. J 감독은 이유도 모른 채 그저 맞아야 했다. 맞고 또 맞고, 얻어터지고, 얼굴 근육이 완전히 일그러지고 나서야 그들은 J 감독을 들쳐 업은 채 병원에 데려다 주었다.


“형님, 이해하십쇼. 보스가 형님 저승 보내라는 걸 그 동안의 정리를 봐서 봐드리는 겁니다. 그러게 왜 하고 많은 여자 중에 보스 세컨드를 건드립니까.”


다음 날, 그는 말로만 들었던 그 유명한 정치깡패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의 옆에 얌전히 서 있는 돈 다발의 그녀도 함께. 얼굴이 완전히 망가진 J 감독을 보고 나서, 정치깡패는 비웃음을 띄며 단 한마디만 했다.


“앞으론 춤추지 마, 살고 싶거든.”


그 후로 J 감독은 다시는 카바레에 가지 않았을 뿐 더러 춤의 춤 자만 나와도 경기를 일으켰다. 자유당 시절이 막을 내렸다고는 하지만, 그 때까지는 그 정치 깡패의 한 마디가 법이었던 것이다.


그 후 J 감독은 텔레비전에서 그 정치깡패가 붙잡혀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는 뉴스를 보았다. 양손이 줄로 묶인 채 삼베옷을 입은 정치 깡패를 보면서 그는 중얼거렸다.


“형님, 저 춤 안 춥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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