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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소연 May 21. 2019

복근이 드러날 때, 신도 같이 나타난다.

[일상에서 낚아 올린 통찰]  04.

다이어트는 나의 취미 중 하나다. 트래킹이나 드라이브, 수학 문제 풀기처럼 나는 다이어트를 좋아하고 즐긴다. 처음부터 살빼기가 쉬웠던 것은 아니다.


스물한 살 때부터 시작한 담배는,  매일 밤을 꼬박 새며 글을 쓸 때 유일한 친구가 되어주었다. 재떨이에 수북이 쌓인 꽁초는 내 불면의 밤의 증거였고, 나는 새벽마다 뻣뻣해지는 뒷목을 움켜잡은 채 잠에 들었다.


드디어 입봉을 하고 정식 작가가 된 후에도 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30대 중반이 되고 보니, 더 이상 몸이 버티지 못했다. 이대로 담배를 피우다 죽을 수도 있겠다는 위기감이 든 순간, 금연에 돌입했다.


처음엔 열흘, 두 번째는 한 달, 그리고 세 번째 도전 만에 금연에 성공했다. 담배를 끊은 후 1년 동안, 나는 사탕과 과자와 초콜릿을 입에 달고 살았다. 입은 계속해서 담배대신 대체물을 집요하게 요구했다.


그 결과, 1년 만에 딱 12kg이 불어났고, 난 인간돼지가 됐다. 여기에 지속적으로 이어지는 술자리와 불규칙한 식생활, 그리고 숨쉬기밖에 하지 않는 생활이 4년 더 이어졌고, 5kg이 추가. 그때 정확히 내 몸무게는 74kg에 육박했다.     


어느 날, 거울 앞에서 “누구냐, 넌.” 했던 것 같다. 인생 뭐 별거 있어, 먹고 싶은 거 먹고, 자고 싶을 때 자고, 편하게 사는 거지, 라는 내 삶의 철학도, 거울 속의 낯선 여자를 내 존재로 받아들이기에는 무리였다.     


그때부터 트래킹을 시작했다. 내 생에 첫 운동이다. 등산을 좋아하는 언니에게 늘, “산에 왜 올라가? 내려올 건데?” 라고 했던 나였다. 그런 내가 일주일에 한번씩 5-6시간의 트래킹을 쫒아 다녔고, 매일 1시간 넘게 한강 고수부지를 걷기 시작했다.     


그리고 중요한 식단 조절.

나는 정확하게 밥 양을 절반으로 줄였다. 반찬은 마음대로, 밥은 반만! 간식은 금물! 술은 일주일에 한번만!

   

매일 이것을 꾸준히 하면, 일주일에 500g이 빠지고, 한 달이면 2kg이 줄어든다.  배가 크게 고프지도 않고, 몸에 무리가 오지도 않는다. 일상생활이 힘들지 않은 채, 자연스럽게 몸의 지방들이 사라진다.


그렇게 1년 2개월 만에 불어났던 17kg을 뺐다. 다시 옛날 옷들을 입을 수 있었고, 다시 담배를 핀 것도 이때였다.     


살을 빼면 인생에 곧장 변화가 찾아온다. 바로 남자가 생긴다. 간만에 연애를 시작하니 설레고 행복하다.  그런데 연애의 맹점은 둘이 만나 먹고 마시는 것이 주라는 것. 하지만 연애 호르몬은 다이어트 따위는 망각시키고 만다.     


그렇게 연애 5년 만에, 나는 다시 거울 속에서 낯선 여자를 만났다. 그 남자도 내가 낯설어졌는지 떠났다. 정확하게는 합의이별이었지만.     


두 번째 다이어트는 첫 번째보다 수월했다. 방법을 아니까.  나는 몸처럼 정직한 녀석을 본 적이 없다. 딱, 내가 하는 만큼 정확하게 라인을 드러낸다. 역시 1년 만에 원래 몸무게를 회복했다.     


하지만 관성의 법칙은 삶 속에 비집고 들어오기 마련. 술과 사람을 어찌나 좋아하는지, 부어라 먹고 마시는 생활이 지속됐다.


그 절정이 작년이었다. 인생 처음으로 작가 레시던시라는 공간에 가게 됐다.  문화예술인 지원 사업으로, 문인과 화가, 영상 작가들에게 집필실과 식사를 제공해주었다.     


세상에, 뭐 이런 멋진 데가 다 있어?

경치 좋은 곳에 마련된 개별 집필실에서 글을 쓰고 같이 산책을 하다가, 밤만 되면 와인이며 맥주며 막걸리며 소주를 들고 휴게실로 모인다.


유명한 소설가부터 나처럼 무명의 작가까지 다 모여서, 인생을 나누고, 작품 얘기를 하고, 낄낄대며 웃다가, 노래도 부른다.  6개월 동안, 그야말로 천국 같은 시간을 보내다 왔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 거울 앞에 섰을 때…

“너 또 왔구나? 간만이다.”

내 인사에, 이제는 낯설지도 않은 여자가 웃고 있었다.     


세 번째 다이어트다.

하지만 이번에는 목표가 달랐다. 단순한 체중감량이 아니라, 건강 자체에 중점을 두었다. 마흔 아홉의 나이는 향후 반평생을 준비할 시기였다. 노화는 빠르게 나를 잠식할 것이고, 지금 준비하지 않으면 건강을 담보할 수 없다는 자각이 있었다.    

  

내 경우는 살이 찌면 대사증후군이라는 악랄한 친구가 따라 온다. 고혈당, 복부비만, 고콜레스테롤, 이상지질혈증 같은 것들이 내 몸에 똬리를 친다.


내 허락도 없이, 라고 쓰다가 지웠다. 내가 먹고 마시고 운동을 하지 않는 그 자체가, 그 녀석들에게는 허락이었다. 병은, 내가 허락했을 때만, 그렇게 찾아온다.     


가장 먼저 PT를 끊었다. 내 인생의 버킷리스트 중 하나. 그것을 실행할 적합한 타이밍, 지금이었다. 비용이 꽤 들긴 했지만, 개인 트레이너와의 운동은 즐겁고 유익했다.


“목표가 뭐에요? 다이어트? 건강?”


트레이너의 질문에 나는 배시시 웃으며 대답했다.


“복근 만들기요. 꿈이에요.”


“복근은 만드는 게 아니에요. 원래 거기 있어요. 지방만 제거되면 복근이 드러나요.”     


뭐라고?

진심으로 나는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수많은 연예인들의 복근 사진을 보면서, 나는 피나는 노력으로 그것을 만드는 것이라 믿고 있었다. 하지만 트레이너는 나의 무지를 한 번에 깨뜨렸다.


“봐요. 복근이 6조각으로 나눠져 있는 거 보이죠?”


트레이너가 보여준 인체 근육사진 속에는, 정말로 식스팩이 존재했다. 누구나, 겉모습이 인간돼지라도, 그 뱃속에는 멋진 식스팩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오, 마이, 갓!

대체 나는 어떻게 살아온 걸까? 지금까지 이 이쁜 식스팩을 지방덩어리로 감추어 둔 채, 꺼내 볼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니.    

 

그 순간 위대한 통찰 하나가 나를 강타했다.

신도 그럴 것이다. 원래 우리 안에 존재한다.

그것이 인간의식으로 가려져 있을 뿐…….

지방을 제거하듯, 우리의 에고를 치워버렸을 때 드러나리라는 것을.     


그 후, 5개월의 PT를 거쳐 지금까지 수영과 요가를 하고 있다. 이토록 꾸준하게 운동을 하는 것은 트래킹 이후 처음이다.


그리고 올해 초, 건강검진에서 내 육체는 완벽하게 정상으로 돌아왔다. 당뇨에 가까울 정도의 혈당은 정상치로 근접했고, 중성지방과 총콜레스테롤은 낮은 치를 보였고, 몸에 좋다는 HDL 콜레스테롤은 인생 최고치로 올랐고, 위와 대장은 깨끗했다.  


몸은 정직해서, 정말 우리가 돌 본 만큼 그대로 자신을 보여준다.


나는 여전히 세 번째 다이어트 중이다. 거울 속의 낯선 여자는 희미해지고 있다. 내 배는 6조각은 아니지만, 두 개의 세로 줄이 나타나고 있다.  웨이트 트레이너가 말해줬다. 여자는 식스팩보다, 십일자 복근이나 내 천자 복근이 아름답다고.     


원래 거기 있던 그것. 내 무절제한 생활로 인해 숨겨져 있던 그것. 나는 이 새벽의 허기를 기뻐한다. 순간의 인내는 내가 원래 가지고 있던 그것을 드러내는 과정이다.     


그와 함께, 나는 매일의 삶 속에서 내 인간의식을, 지방과 함께 덜어내는 즐거운 과정을 밟고 있다. 원래 거기 있던 그와 반갑게 조우하기 위해. 꼭꼭 숨어 있는 신을 만나기 위해.   

 

신은 우리의 복근처럼, 기다리고 있는지 모른다.

빨리 알아채주기를,

자신이 그곳에서 눈 빠지게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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