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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왜 아름다울까?

by 오성진

어느 택시 기사분과의 대화


코로나가 시작되면서 택시기사와 대화를 나누는 일이 확 줄어버렸지요?

그전까지는 택시 기사분들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하곤 했습니다.

그러나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에 대한 두려움은 그분들의 입을 다물게 했지요.


공짜는 정말 좋아요


사람은 공짜를 좋아하지요? 거저 주겠다는데 싫어할 사람은 없을 것 같네요.

물질이 되었든 서비스가 되었든 거저 주겠다는 것에는 마음이 흔들리는 것이 인정입니다.

그런데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나요? 아무리 돈이 많은 사람이라도 아무 이유 없이 거저 나눠 주겠어요? 반드시 목적이 있지요. 수십억을 뿌리더라도 나중에 수백억, 수 조를 거두어들일 생각을 하니, 몇십억 정도는 껌값이지요.

그런데 사람의 마음이 참 재미있습니다. 그게 미끼인 줄 알면서도, 공짜의 유혹에는 그냥 넘어가고 마니까요.

그런데, 아마도 "나는 공짜만 먹고 빠질 거거든"이라고 생각하고는 덥석 물고 마는데, 몇 차례 받다 보면, 거기에 익숙해져 버리고 맙니다. 그러고 나서는 벗어날 수 없게 되는 거지요.


어느 기사분의 상술


택시를 탔는데요, 기사분이 아주 독특했어요. 아주 건강한 분이셨는데, 갑자기 "셋째시죠?"라고 물어보는 겁니다. "아닌데요"라고 대답했더니, "분명히 셋째세요. 위에 한 사람이 있었는데 유산을 했든지 하셨을 거예요. 어머니께 여쭤 보세요"

그러면서, 내 관상 이야기를 하더군요. 그럴듯하게 이야기하니 나도 껌뻑했습니다.


다소 틀리더라도, "그런가? 내가 생각하지 못한 성격이 나에게 있었나 보네" 이런 식으로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그리고 나의 장단점을 이야기해 주더라고요.. 내 환경도요.

은근히 관심이 가더군요.

혹시 나에 관해서 내가 모르는 것이 있을까? 하는 생각에, 기회가 있으면 이 기사를 한번 만나서 물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런 내 마음을 읽었는지, 내리려는데 명함을 하나 주더군요.

"생각나시면 전화 주세요"


택시에서 내리고 다른 일들로 마음이 빼앗겼다가, 잠시 짬이 나서 그 기사를 떠올렸습니다.

그리고, "내가 지금까지 스스로 깨우치면서 노력하고 살았지, 언제 운세 같은 것 본 적이 없지 않나. 관상 보는 것이 미신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굳이 남에게 평가를 받아서 그것을 내 생활에 적용할 필요까지는 없지"라는 생각으로 약간 있던 미련을 털어 버렸습니다.


미래를 미리 알 수 있다면


미리 안다는 것만큼 재미없는 일은 없어요.

포커가 재미난 이유는, 상대방의 카드를 볼 수가 없어서, 온갖 머리를 굴려서 추측해 보는 데 있지 않나요? 자기가 추측했던 것이 맞아떨어지면, 그 기분이 기가 막히고, 내기에서 이기는 맛도 크지요.

그런데, 따 논 당상이 되면 무슨 호기심이 생길까요? 전혀 호기심 같은 것은 생기지도 않을 겁니다.

그래서 게임은 어려울수록 더 하고 싶어지는 것이죠.

모험은 위험할수록 더 하고 싶은 것이고요.

사랑은 정복하기 힘든 상대일수록 더 빠져들고,

돈은 더 많이 벌면 벌 수록 더 벌고 싶어지는 것이죠.

학문도 성취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더 빠져서, 그것 때문에 부인들이 짐을 싸는 일들이 심심치 않게 일어납니다.


삶이 아름다운 이유


사람의 삶이 영원하기를 바라지만, 정말로 영원히 살게 된다면, 지금처럼 열심히 살 사람은 하나도 없을 겁니다. 부지런하게 일할 이유도 없어질 겁니다. 하고 싶은 일이 있더라도, 내일 해도 되고 1년 후에 해도 되고 10년 100년 1000년 후에 해도 되기 때문에, 뭘 서두르겠어요?


실제로 내 경험을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병역의무로 부산에 1년간 근무했었는데요, 해운대 해수욕장과 동래온천은 매우 유명한 곳이지요? 휴가철에는 사람들이 일부러 비용과 시간을 들여서 찾아오곤 합니다.

그런데, 부산에 있던 1년 동안 해수욕장에는 한 번도 가보질 않았습니다. 내일 내일 하다가 일 년이 지나버리고 말았지요. 가까운 곳에 있으니,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갈 수 있는 거리였으니까요.


갈 생각을 안 하고 지냈다는 것이 지금 생각해도 신기할 정도입니다.


수년 후에 일부러 시간을 내어 가족을 태우고 부산으로 갔습니다. 해운대에서 하루를 머물며 회도 먹고 브런치도 하면서 즐겁게 지내다 왔는데, 그때서야 "가까운 곳에 있을 때 자주 좀 왔더라면......" 하는 생각을 하면서 웃었습니다.


지금 함께 하는 사람들


오래전에는 창문에 햇빛이 비치면 그때서야 눈을 비비면서 일어나는 것이 일상이었지요.

하지만 요새는 아침 해가 떠오르기 전에 일어나지 않으면 난리가 날 겁니다.

일어나기 싫어하는 아이들을 깨우랴, 남편의 출근준비를 도와주는 일들로 엄마의 하루는 시작이 됩니다. 정신이 없을 겁니다.

없을 것이라고 내가 생각하는 이유는, 그런 생활이 없어진 지 좀 시간이 되어서 그렇습니다.


분주하게 하루를 살다 보니, 나에게 소중하게 느껴지는 것은 '나'였습니다.

하고 싶은 일은 줄을 서 있는데, 누린 시간이 거의 없다고 느껴졌기 때문에 언제나 내 시간을 갖고 싶다는 생각이 가득했지요.

그런 나를 바라보는 아내는 내가 함께하지 못하는 시간 때문에 많이 아쉬웠을 겁니다.


주말에는 개인 약속은 절대로 하지 않고 가족과 함께 보냈기 때문에, 그것으로 내 역할은 충분하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괜찮은 아버지고 괜찮은 남편이라고 생각을 했지요.

지금도 바쁘기는 마찬가지이지만, 시간에 대한 생각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같이 할 수 있다는 것의 소중함을 더 생각하게 되는 것이죠.


늘 누리고 있는 것에 대한 생각을 못하고 보내기 쉬운 것이 사람인 것 같습니다.

누리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을 하는 것이죠.


이런 아쉬움은 시간이 지난 후에야 알게 되는 것이라서

그 아쉬움 때문에 삶이 아름답게 더 느껴지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미래를 알 수 없다는 것, 그리고, 아쉬워하게 될 거라는 것.

그것이 있기 때문에 삶은 아름다운 것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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