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사(科學史) 분야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사람들의 본성에 관해서 매우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티베트의 지도자인 달라이 라마가 미국을 방문했을 때, 과학사 교수 한분이 이렇게 질문했다고 합니다.
"역사적으로 우리의 과학이 진실을 깊이 탐사하면 할수록 자비(compassion) 같은 개념은 더욱 부적절해지더군요"
이런 질문은, 다른 나라의 지배를 오랫동안 받아 온 나라의 지도자인 달라이 라마의 너그러운 마음이 가식적인 것은 아닌가 하는 것을 지적하고 싶었기 때문에 하지 않았나 하고 나는 생각이 됩니다.
이 질문에 대해서 달라이 라마는
"내가 인간 본성이 기본적으로 자비롭다고 말하는 것은, 나의 경험적 관찰에 근거합니다."
참 놀라운 답변이었습니다. 그렇게 핍박을 받은 민족을 대표하는 사람으로서의 답변이 말이죠.
그리고 다른 기회였다고 생각합니다만,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해 달라고 부탁을 했다고 하는군요.
인간이 본성은 선한가 악한가?
예로부터 인간의 본성이 선하다느니 악하다느니 하는 논쟁을 끊이지 않고 이어져오고 있습니다.
과연 어느 것이 답일까요?
우리 아이가 초등학교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학교에서 돌아오는 골목에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노란 병아리들이 고무대야에서 삐약거리고 있었습니다. 얼마나 귀여운지 눈이 갔는데요, 딸이 사달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두 마리를 사 가지고 집으로 왔습니다.
좁쌀을 주고 물도 주면서 며칠을 키웠습니다.
나도 어렸을 때 키운 기억이 있고, 커서 알까지 낳는 암탉이 되기까지 컸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딸과 나는 집에 돌아오면 병아리 보는 즐거움이 컸지요.
그런데 일주일이 안되어서 두 마리 모두 힘이 없어지더니 그만 세상을 떠났습니다.
딸의 마음도 그렇지만 나도 매우 안타까웠습니다. 세상에 나와서 며칠도 살지 못하고 간 병아리들이 왜 그렇게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는지요.
공원의 조용한 곳을 찾아서 그곳에 묻어 주고 표식해 두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딸이 훌쩍거리면서 "불쌍해, 불쌍해"를 계속 말하더군요.
몇 년 전에는, 산책로를 걷고 있는데, 까치 두 마리가 요란하게 울고 있었습니다. 둥지에서 말이죠.
그래서 무슨 일인가 봤더니, 새끼 까치가 둥지에서 떨어져서 기어가고 있었습니다.
내가 새끼에게 다가가면 어미들은 더욱 요란하게 울면서 내 주위까지 내려왔습니다.
스스로의 힘으로는 날아오를 없는 새끼 때문에 보호하기 위해서였을 겁니다.
어떻게 해 줄 수 없어서 마음이 많이 아팠습니다.
그 후로 어떻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가끔 생각이 납니다.
인간의 본성은 자비롭습니다
하버드대학교의 성인발달연구의 책임자로서 긴 세월 동안 행복에 관한 연구를 해 오고 있던 조지 베일런트 교수는 사람의 마음은 본디 자비롭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연민의 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죠.
사랑이라는 것은 같이 하고 싶다는 마음이지만, 연민이라는 것은 슬픔을 같이 느끼는 마음이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마음은 포유류의 뇌의 변연계가 가지고 있는 본성이라고 합니다.
연민은 고통을 같이 느끼는 마음
누군가가 어려운 일을 겪고 있는 모습을 보면 가슴이 아려 오는 것이 우리들의 마음이죠.
인터넷 검색창을 띄우면 자주 두 가지의 광고가 떠오르고 있습니다.
하나는 너무도 가난해서 생리대조차 준비를 하지 못하는 안타까운 이야기라든가, 스스로의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아이들의 이야기입니다.
다른 한 편에서는 건강에 좋은 식품이라든가 편리한 도구를 오늘에 한해서 최저가로 판매한다는 광고입니다.
만약에 안타까운 소식에 대한 알림이 없었다면 아마도 내 눈은 초특가로 판매하는 광고에 갔을 겁니다.
그러나, 두 가지 광고가 떴을 때, 계속 눈이 가고 마음에 남는 것은 안타까운 사연입니다.
서울대학교에서는 수년 전부터 천 원의 식사를 재학생들에게 제공해 줄 수 있도록, 동창들에게 후원을 부탁해 왔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이루어져서 식사 걱정 없이 공부를 하는 후배들의 모습을 자주 알려주고 있습니다. 소식을 들을 때 마음이 훈훈해집니다.
연민의 마음은, 다른 사람의 아픔을 자기의 아픔처럼 느끼면서 위로를 받는 마음이라고 합니다.
이 마음은 뇌 속의 거울뉴런이라는 것의 작용 때문이라고 합니다. 모방하는 뉴런이라고 해서 거울뉴런이란 이름이 붙었다고 합니다.
거울뉴런은 공감하는 작용을 합니다. 다른 사람의 아픔에 공감하는 것이죠.
그래서 fMRI의 연구에 의하면, 사람이 공감하는 마음이 있을 때, 뇌의 그 부위가 환해진다고 합니다.
사람에게는 연민을 느끼는 뇌의 부위가 있기 때문에 자비로운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이죠.
그런데 그런 뇌가 있으면서도 이 세상에는 수도 없이 악한 일들이 왜 일어나고 있을까요?
내 생각에는 우리들에게는 본성적으로 이기심이 있고, 그 이기심이 작동할 동안에는 공감의 능력보다는 자기중심적인 마음이 앞서기 때문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더욱이 상대방이 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말이나 행동을 했을 때는 철저하게 자신을 보호하는 마음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것이죠. 그래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자비로운 본성이 가려져버리는 것이죠.
그런데 한번 이런 생각을 해 보시면 어떨까요.
자신을 마음 아프게 했던 사람에게 갑자기 불행이 닥쳤다고 말이죠.
그런 소식을 들었을 때, 마음이 어떨까요?
혹시 세상을 떠나가기라도 했다면 자신의 마음에 남는 그 아픔은 지워지지 않을 겁니다.
그때 서로 화해를 했더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 때문에 말이죠.
세상이 아무리 자기중심적인 사람들로 가득 찼다고 하더라도
자기 속에 있는 그 본성은 없어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유전자에 새겨진 것이기 때문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