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다 보면 나눈다는 생각보다는 가르치고 싶다는 생각이 은연중에 커지는 것 같습니다.
내가 아는 것을 이미 알고 있는 사람들도 많고, 또, 모르는 사람이라고 해서 내가 말하고 있는 것을 말해 주어야 할 이유가 있을까? 정말로 도움이 될까? 내 마음이 순수한 것이 맞을까?
시간이 쌓여 갈수록 여러 가지의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갑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나도 다른 사람들의 글을 읽으면서 새로운 깨달음을 얻어 왔다는 것을 생각할 때, 글 쓰는 일이 의미 있는 일이라는 생각으로 돌아옵니다.
이 세상을 사는 지혜로서 새로운 것은 없다는 솔로몬의 고백처럼(주 1) 여러 글이 있지만 솔로몬의 말처럼 새로운 것은 없다는 생각을 합니다.
사실, 수천 년 전부터 삶에 관해서 많은 사람들이 탐구해 왔고, 그것들을 통해서 사람들을 자신의 삶을 성찰해 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크게 변한 것이 없습니다.
사람들은 왜 그렇게 변하지 못한 것일까요?
이 문제에 관해서 데이비드 호킨스 (주 2)는 그 해결책을 제시해 주고 있고, 또한 희망적인 이야기를 해 주고 있습니다.
인간이 다른 포유동물과 다른 것은 영혼이 있다는 것이죠. 영혼이 영원할 것인가 아닌가 하는 문제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그것이 있기 때문에 다른 포유동물과 다른 삶을 누리고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렇지만, 다른 포유동물들처럼 자기를 지키기 위해서 높은 서열을 유지하려고 한다든가, 다른 존재를 이용하려고 한다든가 하는 본성만으로 산다면, 이렇게 고된 삶을 살아야 할 이유가 있는가 하는 것이죠.
아무것도 모르고 꿈만 가득하던 유년-청소년 시절에는, 부모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삶에서 자기가 이루어 갈 것만을 생각하면서 성장해 왔기 때문에 삶은 꿈으로 가득 차 있는 것으로 보였겠지만, 막상 독립을 하고 나면, 생각과 다른 세계가 자기 앞에 펼쳐지면서 “아, 삶은 고해로구나” 하는 탄식을 자주 하게 됩니다.
그런데, 저돌적인 능력이 있거나, 기회가 좋아서 넘치는 삶을 살게 된 사람들은 그런 것을 모르고 마냥 그날그날을 누리려는 생각들을 하면서 삽니다.
그런데, 아무리 많은 것을 누리더라도, 그것이 “아, 나는 삶을 삶답게 살았어!”라고 편안한 마음으로 세상을 떠날 수 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영생?
어떤 사람은 영원히 살 기회가 주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기도 할 겁니다.
영원히 살게 된다면 어떨까요?
영원히 산다고 해서 필요한 것이 항상 채워질까요? 혹시 늘 채워지더라도 삶다운 삶을 살 수 있을까요?
삶다운 삶이라고 이야기를 했지만, 영원히 사는 것을 추구하는 사람에게 삶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대답하기가 쉽지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매운 어려운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어렵지 않은 이야기입니다.
생각을 별로 한 적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어려운 이야기가 될 수 있겠지만 말이죠.
행복 호르몬 도파민
삶을 성공적으로 사는 자기 계발 프로그램들이 많이 있습니다.
어떤 프로그램은 매우 희망을 가슴에 부어줍니다.
성공적으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성공스토리를 들려주면서 마음에 용기를 불러일으켜 줍니다.
아마도 거기에 따라서 자기 계발을 열심히 해 옴으로써 삶을 풍성하게 누리는 사람들도 있을 겁니다.
그렇다고 그 사람들이 삶을 만족스럽게 여길까요?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많을 것입니다.
왜냐면, 누리는 것으로는 사람이 만족을 못합니다.
행복호르몬이라고 부르는 도파민은, 행복함이 어느 수준에 도달하면, 그보다 높은 수준의 행복을 얻기를 희망하게 만듭니다(주 3)(주 4)
제가 중학교 때 배운 것으로는 한계 효용의 법칙이라는 것으로 배웠습니다.
맛있는 것을 먹고 나면, 다음에는 그 보다 더 맛있는 것이 와야만 만족할 수 있다는 것이죠.
우스운 예를 들어보죠. 단것 좋아하는 사람에게 도넛 한 개를 주었다면, 처음에는 아주 맛있게 먹을 겁니다. 그리고 한 개를 더 주면 고맙게 먹겠죠. 세 개째쯤 되면 맛있다는 생각을 하겠지만, 고맙다는 생각은 사라질 것 같습니다.
사람에 따라서 다르겠지만, 네 개째쯤 되면, 아마 한입 물어보고는 그냥 내려놓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계속 먹는 사람은 비만이 될 수밖에 없겠죠.
많이 향유한다고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다이아몬드 1캐럿 반지를 받으면 처음에는 가슴이 두근거리면서 행복한 마음이 되겠죠. 그러다가 어느 모임에서 큼지막한 다이아몬드 반지를 낀 사람이 옆에 앉으면, 갑자기 자신이 초라해졌다는 것을 느낄 겁니다.
그러나 어떻게 어떻게 해서 그 큰 반지를 손에 넣었다고 합시다. 그리고 뉴욕에 가서 카르티에 매장에 가 봤다면 어떻게 될까요?
뉴욕의 카르티에 매장에 가면,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선물 받았던 큼지막한 다이아몬드 반지가 있습니다. 그것을 본다면 어떨까요? 지금 끼고 있는 반지가 초라하게 느껴질 겁니다.
도파민이 우리 뇌에서 나오는 한은 이 정서는 절대로 사라지지 않을 겁니다.
그런데 누군가에게 공감하면 역시 도파민이 쏟아집니다. 그리고 행복해집니다.
누군가에게 선의를 베풀면 도파민이 쏟아집니다. 자기 자신은 베푼 것 밖에는 없습니다. 아무런 보상도 없는 데 행복해집니다. 이다음에 더 큰 베풂을 해야만 행복한 마음이 되지는 않습니다. 역시 행복해집니다.
삶의 의미란 무엇일까요?
의미란 무엇일까요?
GRIT(주 5)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안젤라 더크워스(Angella Duckworth)는 삶을 의욕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특징을 10년 이상 연구하면서 공통적인 점들을 찾아냈습니다. 어떤 사람들이 자신의 일을 즐겁게 해 나가는 가 하는 것을 찾아낸 것이죠.
GRIT라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나는 치과 경영을 하면서 부딪치는 어려움들이 있을 때마다 “언제까지 이것을 견디어내어야 하나 “ 하는 생각으로 무척 고통스러울 때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멈출 수가 없었기 때문에 방법을 찾아야 했습니다.
어려서부터 교회를 다녔기 때문에, 기도를 했지요. 나를 이 고통에서 언제 벗어나게 해 주실 것이냐고 늘 물었습니다.
그러나, 다들 예상하셨겠지만, 그런 기도가 이루어질 리가 없지요.
그 이유는, 내가 겪고 있는 문제를 내 힘으로 해결하려는 의지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마음으로는 최선을 다 하고 있다고 생각을 하면서 환경의 탓으로 돌렸습니다.
그런데 조금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성숙하게 되었죠,
“주세요!” 하는 기도에서 “감사합니다”하는 기도로 말입니다. 그러면 기특한 마음에 대한 보상이 오리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기도를 한다고 해서 역시 변하는 것은 없었습니다. 그래도 멈추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는 가운데 깨달음이 오더군요. 그것은 기도에는 문제가 없었는데, 마음에 문제가 있었던 것입니다.
나에게는 이미 그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지식도 있었고, 지혜도 있었고, 환경도 갖추어져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없었던 것은 내 앞의 상황에 대한 의미를 생각하는 마음이었지요. 의미였습니다.
지식과 지혜는 쌓아 왔으니까 당연히 있을 것이라고 생각을 하시리라고 봅니다만, 환경도 갖추어져 있다는 것을 궁금하게 생각하실 분들이 있을 것 같습니다.
그것은 나의 일터이고, 직원들이고, 또 같이 활동하고 있는 동료들입니다. 그리고 내가 해야 할 일들이죠. 이 정도면 나의 일 하는데 부족한 것이 없는 것이죠. 이것들을 내가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의 문제만 남은 것입니다. 결국 내가 어떤 마음으로 사는가 하는 것이었지요.
GRIT 과 나
내가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은, GRIT이라는 책을 읽으면서, 내가 모든 상황을 넘어올 수 있었던 것이 바로 나에게 GRIT 이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내가 힘들었던 것도 바로 넘어가려는 과정이 힘들었던 것이지, 내 꿈이 없었던 것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나에게는 늘 성취에 대한 욕구가 있었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 힘을 쏟아오면서 내가 원하는 만큼 이루어지지 않은 것에 대한 고통이었던 것이죠.
신앙이 내 마음에 의지가 된 것은 “감당할 수 없는 시험은 허락하지 않으신다”(주 6)는 말씀이었습니다. 내가 반드시 모든 과정을 넘어설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던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마음의 문제를 깨닫게 된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삶의 의미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만, 자신의 존재의 이유, 다시 어려운 말이 되어서 미안합니다만, 살아야 하는 이유를 알지 못한다면 어떤 것을 이루더라도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이죠. 힘을 키워서 많이 누리는 것이 삶이라면, 짐승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짐승도 힘이 센 놈에게는 절절매면서, 자기가 힘이 세지면 왕노릇을 하니까요.(주 7)
인간이 다른 포유류와 다른 것은 영혼이 있다는 점입니다. 영혼을 이상한 차원에서 생각하면 미신적인 것으로 나갈 수 있습니다만, 그것은 인간만에게 주어진 특별한 능력인 것이라서 그것에 대한 의미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물론 내가 영혼을 다 이해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있기 때문에 다른 포유류들과는 다른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습니다.
신앙적인 이야기를 말씀드렸습니다만, 그것의 선택은 각자에게 달려 있는 것이라서 그 이상의 것, 다시 말해서 선택을 하지 않는 문제에 대해서는 각자가 생각해 봐야 할 문제일 것입니다.
투지를 가지면 성취를 향해서 나아갈 수 있는 힘이 커진다고 합니다.
투지만 가지면 될까요? 만일 그렇다면 이미 많은 사람들이 많은 성취를 이루었을 텐데, 그렇지 못한 것이 현실이지요.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에 대한 의미를 깨달을 때 투지가 생깁니다.
하고 싶은 마음이 없는데 투지가 생길 리가 없지요.
어린이들은 멋져 보이는 것이 있으면 흉내를 내지요.
요새 쇼트 영상을 보면 아주 어린애들이 길거리에서 버스킹을 하는 영상이 매우 많습니다. 아주 작은 아이가 갑자기 바이올린을 꺼내어 길에서 연주를 시작하면 사람들의 눈이 휘둥그레지면서 모여들기 시작합니다.
어떤 아이는 힙합 댄스를 맨머리로 아스팔트 길에서 하기도 합니다. 참 놀랍습니다.
지하철 역에서 전차를 기다리고 있는데, 엄마와 같이 있던 한 소녀가 제 옆에서 갑자기 댄스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나로서는 좀 어색한 마음이었지만, 그 아이는 거침이 없더군요.
이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자기표현이 아니었나요? 성취였습니다.. 그렇지요?
그들이 하는 것은 그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것이었기 때문이죠. 그들에게는 의미가 있는 것이었기에 그렇게 열정적으로 한 것이죠.
길에서 두 젊은 남녀가 서로 껴안는 모습을 요새는 드물지 않게 봅니다. 그들에게는 주위 사람들은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둘 만의 시간으로 몰입이 되어 버리는 것이죠.
이러한 것은 누가 요구해서도 아니고 강요해서도 아닌, 스스로 선택한 것들이라서 각자에게 의미가 있기 때문에 거침없는 행동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우리의 삶에서 자신이 하고자 하는 것에 의미를 찾는다면 그것을 성취하기 위한 마음으로 빠져들게 되는 것이죠, 투지가 생기는 것입니다.
주 1) 구약성경 전도서 1장에는 솔로몬이 다음과 같이 고백하고 있는 글이 있습니다. “하늘아래 새로운 것이 없도다”
주 2) 의식혁명, 데이비드 호킨스, 한문화, 1998. 이 책에서 호킨스는 인간의 의식의 진화를 이야기하면서 더딘 진화를 아쉬워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최근에 와서 의식의 수준이 높아지고 있다는 증거를 보여 주면서 인류의 미래를 희망적으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주 3) 스트레스, 로버트 세폴스키. 사이언스 북스, 2008
주 4) 뇌과학이 인생에 필요한 순간, 김대수, 브라이트, 2021.
주 5) 그릿, 안젤라 더크워스, 비즈니스 북스, 2016
주 6) 신약성경 고린도전서 10장 13절의 말씀입니다.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은 허락하지 않으시고”
주 7) 스트레스, 로버트 세폴스키. 아이언스 북스, 2008. 이 책에서 새폴스키는 포유류에서 서열을 두고 투쟁하는 모습을 설명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