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둘리고 마는 인생게임

티브이가 바보상자인 이유

by 오성진

이침식사를 하면서 오늘의 일과를 생각하고 있는데 아내가 티브이를 켰습니다.

티브이는 내 등 쪽에 있으니까 화면이 보이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아내는 나를 방해하지 않으려고 아주 작은 볼륨으로 맞추어 놓았습니다.

하지만 소리는 선명하게 들립니다. 조용한 아침 시간일 뿐만 아니라, 방송내용이 나에게까지 스며들도록 프로그램화되어 있기 때문이죠.

세계를 여행하는 프로그램이라서 안 가본 곳을 볼 수 있다는 즐거움이 있습니다.

하지만 나에게는 여행보다는 오늘 해야 할 일이 더 관심이 갑니다.


그런데 오늘은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가던 생각에 마음이 머뭅니다.

정보라는 이름으로 제공되는 프로그램이지만, 내가 선택한 적이 없었다는 것이죠.


스마트폰으로 영상을 보는 사람들

거실에서 티브이를 보는 사람들

이 사람들 중에 자기가 선택한 정보를 보고 있는 사람은 얼마가 될까요?

무심코 스위치를 올리자 처음 보는 경치에 붙잡혀서 계속 시청을 하는 사람들

카톡을 열었다가 자극적인 제목에 보게 된 쇼츠영상,

재미에 푹 빠집니다.

그러다가 이어지는 다른 영상에 다시 붙잡히죠.


바쁜 한 해를 보내고 이제 휴식의 시간에 들어갑니다.

아마도 만족스러운 시간을 보냈다고 생각되기보다는 아쉬운 것이 많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내 경우는 올해만큼 만족스러운 해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한 해를 돌아보는 마음이 뿌듯합니다

그 이유는 올해의 시간을 내 주도적으로 살았기 때문입니다.


계획하지 않은 일을 한 경우가 많지 않습니다.

때때로는 뉴스 앱이 자동으로 떠서 그것에 빠져 들어간 시간이 있기는 하지만,

긴 시간 머물지 않고 내가 하고자 했던 일로 바로 돌아오는 빈도가 점점 늘어났습니다..



방송사의 프로그램은 고도로 전문성을 가진 사람들에 의하서 제작되는 콘텐츠죠.

시청률이 낮으면 제작자는 그 일을 계속할 수 없기 때문에 자기가 할 수 있는 죄선을 다해서 제작을 합니다. 시청률이 낮은 콘텐츠에 광고를 의뢰하는 스폰서는 없기 때문이죠.


그래서 방송을 보는 순간 이미 제작자의 의도대로 몰입을 하게 되어 자기의 의도는 조금도 반영되지 않은 채 시간이 흘러가버리고 맙니다.


어렸을 때 시장에 가시던 어머니의 손에는 구입할 식료품의 메모가 적혀 있었습니다. 시장에 가면 아무래도 사고 싶은 것이 눈에 많이 띌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예산을 초과해서 지출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었지요. 그런데 덤으로 얻어지는 것은, 아이쇼핑 시간이 현저하게 적기 때문에, 시장에서 보내는 시간이 아주 짧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짐으로 오셔서는 집안일을 하시고, 저녁에는 가족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셨지요.


물론 경제적으로 여유로워진 후로는 그 메모는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시장가시는 일은 거의 없어졌지요. 백화점이나 대형 마트로 가셨으니까요. 그리고 그곳에 머무시는 시간이 매우 길어졌습니다.


그때는 별로 생각을 하지 않았는데, 요새 마케팅 전략을 좀 알아가다 보니, 대형화된 마트일수록 마케팅 전략이 치밀합니다. 눈이 가면 사고 싶게 만들어 놓거든요. 당장 필요하지도 않은 것이지만 갖고 싶게 배치가 되어 있어서 사지 않으면 아까운 시간을 내서 쇼핑 온 것이 헛된 것이 될까봐 사는 경우가 늘었습니다.


호울세일(WHOLE SALE) 마트가 들어오기 시작했던 1990년대 초반. 그곳에서 물건을 잔뜩 사는 재미가 컸습니다. 그때 큰 묶음으로 샀던 문방부가 내 설합에는 아직도 잔뜩 남아 있어서, 지난 수십 년간 필기도구를 사러 마트에 가는 일이 거의 없었을 정도입니다.


오래전에 선종하신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께서 남기신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티브이 보지 마세요. 바보상자입니다"

추기경님께서는 우리들에게 마지막으로 귀한 말씀들을 남기셨습니다만,

이 말씀에 그리 마음이 가지 않았습니다

시대가 변했는데 추기경님은 1960년대의 이야기를 하고 계시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그분의 깊은 생각이 이 글을 쓰면서 마음에 스며들어 옵니다.


치밀한 마케팅 전략으로 만들어진 콘텐츠를 하루 종일 보여주는 티브이에,

자신의 의도와 관계없이 빨려 들어가 버리고 마는 것을 말씀하고 계신 것이죠.

그렇게 몇 시간이고 지나고 나면, 머릿속은 멍해집니다.

그 말씀이구나. 바보상자라는 것이.


사람이 다른 동물과 다른 것은 "생각"을 할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입니다.

생각이라는 것은 그냥 머릿속에 떠올리는 능력이 아닙니다.

머릿속에 떠올리는 것은 느낌이지요.


생각이라는 것은 그 느낌을 깊이 음미하면서 올바른 판단을 내리는 것이잖아요?

그것을 해 내는 것은 우리 뇌에 있는 전전두엽 피질입니다.

이마 바로 안쪽이죠.


전전두엽 피질은 청소년 시절부터 본격적으로 발육하기 시작해서, 20대 중반에 가면 거의 완성이 됩니다.

판단하는 능력이 그 나이에 완성이 되는 것이죠.


그런데 티브이에 빼앗긴 정신 때문에 전전두엽 피질은 제대로 발육할 기회를 갖지 못하고 굳어져버리는 것이죠. 그러면 욕망의 중추인 시상하부의 많은 뇌세포로부터 나오는 욕망이 절제되지 못하고(주 1) 그대로 발휘되어 버리고 맙니다.

절제하지 못하는 '바보'가 되어 버리는 것이죠.

추기경님께서는 그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자신의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마케팅이 요구하는 착한 구매자, 단순한 생각의 구매자로 살아가게 되는 것이죠.


바보상자라는 표현보다는 바보로 만드는 상자가 더 맞을 것 같습니다.

사람을 바보로 만드는 상자인 것이죠.


요새 반려동물들도 티브이를 보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내 생각에는 반려동물도 티브이 시청이 많아지면 감정 조절이 어려워지지 않을까 생각이 되네요^^


(주 1) 뇌과학이 인생에 필요한 순간, 김대수 지음, 브라이트 발행, 2021. "소유욕은 무죄인가 유죄인가? p181~1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