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보다 먼저 우리 집에 자리 잡은 건 세 마리의 고양이들이었다. 결혼 전부터 키우던 고양이였으니, 집에 머문 시간으로만 봐서는 이 고양이들이 집주인에 제일 걸맞을 것 같다. 2020년 겨울에 첫째가, 두 달쯤 뒤에 둘째가, 그리고 석 달쯤 뒤에 막내가 이 집에 들어와 함께 살고 있다. 고양이들의 합사 과정은 꽤 살벌했는데, 체격 차이가 났던 막내는 며칠 동안 언니들에게 협박과 모욕을 당해야 했다. 언니들은 걸핏하면 막내가 격리된 케이지로 찾아와 하악하악 욕을 하며 위협을 가했다. 하지만 여섯 곱절이 넘는 체급 차에도 불구하고 야수의 심장을 가진 막내는 결코 긍지를 잃지 않았다. 갖은 핍박에도 그녀는 우렁차게 야옹 소리를 내며 당당히 맞섰으니, 그 투쟁은 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이제는 둘째를 자신보다 한참 아래 서열로 생각하고 있으며(물론 막내 혼자 생각), 첫째와는 하루에도 서너 번은 타이틀 매치를 벌인다. 매번 그녀의 패배로 끝나지만 중요한 건 단 한 번의 승리다. 최후의 1승을 위해 오늘도 그녀는 첫째에게 선전포고를 던진다.
의진을 가졌을 때 고양이들이 걱정되었던 것도 사실이다. 자기 영역에 대한 경계심이 강한 그녀들이 의진을 침입자로 생각하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었다. 유튜브를 보다 보면 간혹 아이를 지켜주는 고양이들이 등장하곤 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판타지일 뿐, 그저 할퀴지만 않길 바랄 뿐이었다. 다행히 그녀들은 의진을 자신의 경쟁자로 생각하진 않았고, 뭐랄까,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것처럼 철저히 무시했다. 눈길 한번 주지 않았으며, 아이의 근처에도 가지 않았다. 다만 의진이 태어나기 전부터 아이의 물건에 쉬를 싸며자신들의 흔적을 남길 때가 있었다. 우리는 그녀들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으로 아이의 물건을 숨겼다.
의진이 분리 수면에 성공한 것도 고양이들 덕분이었다. 의진이 6개월쯤 되었을 무렵, 고양이 중 한 마리(아마도 첫째 고양이, 황냥꾼)가 며칠 연속 아기침대에 쉬를 싸기 시작했다. 처음엔 실수려니 했지만, 반복되니 이건 분명한 메시지였다. - 여기는 자신들의 공간이니 아이를 재우지 말라는 - 매일같이 이어지는 이불빨래에 지친 우리는 의진을 다른 방에 따로 재우고, 고양이들이 들어올 수 없도록 철창으로 된 문을 설치했다. 마침 생후 6개월째가 분리 수면을 할 수 있는 좋은 시기이기도 했다. 반강제적으로 시작한 조치였지만 지나고 나니 모두에게 행복한 결말이었다. 열이 많은 의진은 밤사이 자주 깨곤 했는데, 분리 수면을 통해 훨씬 더 쾌적하게 잠을 잘 수 있었고, 우리 역시 의진의 작은 뒤척임에도 깨지 않게 되어 수면의 질이 높아졌다. 고양이들은 아이가 있던 침대에서 잠을 자기 시작했다. 아. 이게 다 냥꾼이가 우리 가족을 위해 대승적인 결단을 내린 거였구나.우리 부부는 그렇게 생각하자고 결론지었다.
어느덧 아이는 자라, 몸무게도 고양이들의 두세 배가 되었다. 고양이들은 애써 의진을 무시하려 했지만, 의진은 태어날 때부터 이 집에 존재했던, 엄마도 아빠도 아닌, 네발로 기어 다니는 이 생명체들이 너무 궁금했던 모양이다. 그녀들이 의진을 괴롭히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이제는 반대의 상황이 되었다. 의진이 누워만 있을 땐 멀찍이 떨어져 있으면 그만이었지만 걸음마를 뗌과 동시에 그녀들은 바빠지기 시작했다. 냥냥펀치를 날리며 의진에게 다가오지 말라고 했지만 아이는 굴하지 않고 계속 다가갔다. 고양이들이 싫어한다고, 그렇게 만지면 안 된다고 여러 날 의진에게 알려주었다. 의진은 그 말을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그녀들에 대한 의진의 관심도 조금씩 줄어드나 싶었다. 하지만 그에게도 결코 좌시할 수 없는 순간들이 있었으니, 바로 그녀들의 서열투쟁현장이었다. 우리 집 평화 유지군인 의진은 누구라도 싸우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고양이들이 부대껴 있을 때면, 어김없이 땍땍 소리를 내며 달려들어 현장으로 출동한다. 의진이 가까이 오면 바로 싸움을 멈추고 흩어지는 그녀들이다. 의진이 안 볼 때 그녀들이 싸우고 있으면, 우린 투철한 시민의식으로 의진에게 이 사실을 신고한다. “의진아 저기 고양이들 싸우고 있어, 그만하라고 해 줘.” 정의의 수호신은 참는 법을 모른다. 급하게 뛰어가느라 발이 걸려 넘어져 위풍을 잃을 때도 있지만, 끝까지 땍땍거리며 기어코 평화를 사수해 낸다.
싸우는 걸 제일 싫어하는 의진이기에 우리 부부도 아들이 보는 앞에서는 싸우지 말자고 서로 약속을 한다. 그 다짐은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을까. 만약 조금이라도 의진이 보는 앞에서 다투는 일이 있으면, 아들은 지체 없이 우리를 말리러 올 것이다. 어느 날 우리, 이 다짐을 지키지 못한다면 그때는 그녀들처럼 의진을 말을 잘 들어주자고, 다시 화목해지기 위해 노력하자고, 이중의 보호 장치를 마음에 걸어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