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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정한 무관심 Oct 27. 2023

곡성, 가을, 길

 “응? 곡성에 가자구? 아니 뭐 나쁘진 않은데... 근데 거긴 대체 왜...?”     


 메신저를 통해서도 고스란히 느껴지는 아내의 당혹감은 충분히 예상한 일이었다. 아이와 함께 가는 첫 번째 여행인데 곡성이라니. 그곳은 무엇이 중요한지 도무지 알 수 없었던, 게다가 아쿠마와 신령이 사는 곳 아니었던가. 지자체 지원금이 나와 신청해보려 한다는 말에 알겠다곤 했지만, 며칠 뒤 떨어졌다는 소식에 느껴졌던 아내의 안도감은 기분 탓만은 아니었을 거다.     


 그렇게 한 달이 조금 지났을 무렵, 또 한 번 곡성 여행을 지원한다는 문자가 도착했다. 이번엔 선착순 5인 마감이었다. 아내에게 바로 메시지를 보냈지만 1이 사라지지 않았다. 기다릴 새가 없었다. 이럴 때 중요한 건 속도니까. 핸드폰을 꺼내 재빨리 참석한다는 문자를 보냈다. 20여 년 전의 대학교 수강신청이 떠올랐다. 그때의 실패들이 오늘의 성공을 만들 것이다. 조금 뒤 아내에게서 답이 왔다.     


“응...? 곡성이라고? 저번에 떨어진 거 아녔어?”


다시 기회(?)가 왔다고, 어떤 티켓팅보다 빨랐으니 무조건 당첨일 거라고 확신에 찬 답을 보냈다. 이쯤 되니 아내도 운명이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그래, 이번엔 한 번 가보자"는 대답에서 전에 느꼈던 망설임은 보이지 않았다. 덕분에 나도 마음을 조금 놓을 수 있었다. 아. 그런데 곡성이 어디에 있더라.     


 4시간 30분. 네이버 맵의 도착지에 곡성군을 입력하니 나온 시간이었다. 막연히 충청도에 가까운 전라북도 정도로 생각했었는데 그보다 한참 아래였다. 이 정도면 거의 부산 가는 거리나 마찬가지였다. 조금씩 불안감이 들기 시작했다. 아이를 데리고 갈 수 있을까. 나는 그 긴 시간 동안 운전을 할 수 있을까. 하지만 이런 기회가 아니라면 장거리 여행은 당분간 어려울 것이다. 가을은 점점 지나가고 있었고 하루라도 일찍 여행을 떠나는 게 좋겠다는 생각에 날짜를 추려보았다. 10월 23일 월요일이 눈에 들어왔다. 아무래도 토요일 출발은 차가 막힐 테니, 월요일에 휴가를 내 1박 2일로 다녀오는 것이 나아 보였다. 그리고 그날은 우리의 결혼기념일이었다.      


 기본적으로 자유여행이었지만, 지자체에서 요구하는 필수여행지 몇 군데가 정해져 있었다. 곡성에 대해 아는 게 아무것도 없었기에, 이편이 오히려 동선을 짜는데 편리했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필수여행지가 모여 있었고 그 중심부에 숙소를 정했다. 온돌이 있는 한옥의 사랑채였다. 곡성도, 한옥도, 우리에겐 모두 생소했지만, 숙소까지 정하고 나니 조금씩 여행 느낌이 나기 시작했다. 아내는 아이에게 개량한복을 입힐 생각에 들떠 보였다.




 그렇게 일요일 아침이 찾아왔다. 몇 번의 보챔이 있었지만 의진은 생각보다 차를 잘 타주었고 우리는 무사히 곡성에 도착했다.  우선 첫 번째 목적지인 곡성 치유의 숲으로 향했다.

 

 굽이굽이 이어진 길을 보듬은 건 오후 네시의 햇살이었다. 그 햇살로 하늘과 바람은 더 포근해졌으며, 따스함을 머금은 대지와 강줄기에 일렁이는 윤슬의 반짝임은 마음을 한결 느긋하게 만들었다. 마침내 치유의 숲에 들어서니 사방을 둘러싼 산과 그 앞을 흐르는 강으로 시야는 가득했다. 걷기 좋게 만들어진 길을 의진과 나란히 걸었다. 함께 내디딘 그 걸음들과 풍경을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었다.      


 치유의 숲을 나오니 붉어지는 하늘에 맞닿은 길들이 서서히 물들어가고 있었다. 완연한 가을이 곡성의 거리마다 내려앉았다. 곡성에 오길 잘했다고 아내가 말했다. 나 역시 같은 마음이었다.     


 ‘곡성은 길의 고장이다. 하늘 닮은 섬진강은 쉴 새 없이 흐르면서도 속도로써 우리를 재촉하지 않는다. 그 옆에는 물길 따라 자전거길, 자동차길, 기찻길, 숲길이 겹을 이루고 있다. 길과 길이 만나는 곳에서는 사람도 서로 만나 소담한 마을이 만들어지고, 마을마다에는 전설처럼 전해지는 우리네 이야기가 있다. 사람이 그리워 어깨를 한껏 낮춘 산들은 토란과 능이버섯을 아낌없이 베풀어 준다. 들녘에는 새벽이면 이슬로 변하는 섬진강을 머금은 채 딸기, 멜론, 블루베리 등이 영글어 간다. 저녁이면 아이부터 어른까지 한 식탁에 앉아 도란도란 정담을 나눈다. 사람 수만큼이나 많은 희망들이 섬진강 윤슬처럼 함께 반짝이는 곡성은 그야말로 자연 속의 가족 마을이다.’, 유근기 전 곡성군수     


 고향을 향한 애틋한 마음을 숨길 수 없던  곡성  군수는 이곳을 길의 고장이라고 했다. 우리는 그렇게 이틀 동안 물길을, 자동차길을, 기찻길을, 그리고 숲길과 꽃길을 거닐었다. 그 길에는 마을을 사랑하는 모든 이들의 시간이 스며든 것 같았다. 우리도 그 길에 마음을 보탰다. 언젠가 이곳을 다시 올 때, 의진은 지금보다 훌쩍 더 커있을 테지. 그때 다시 이 고장의 따스함을 나누고 싶다. 더할 나위 없는 가을날이었다.               


                                      

국립 곡성 치유의 숲



동화정원


침실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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