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엔 세 명의 사람과 세 마리의 고양이가 산다. 첫 번째 고양이의 이름은 냥꾼이. 블리자드 게임 ‘와우’에서는 사냥꾼을 줄여 냥꾼으로 부르는데 거기서 따온 이름이다. 가끔 말을 안 들을땐 성까지 붙여 ‘황냥꾼’이라 부르기도 한다. 그럼 이름이 ‘냥꾼이’가 아니라 ‘냥꾼’ 이지 않나라는 의문이 들기도 하는데, 어째하다 보니 냥꾼이라 부르자고 정리했다. 사냥꾼의 독일말은 예거인데 <진격의 거인>의 주인공 이름도 거기서 착안한 에렌 예거다. 그는 주인공치곤 제멋대로인 경우가 많아 ‘아 진짜 잰 왜 또 저래’ 할 때가 많았는데, 냥꾼이가 저러는 것도 이름 때문인가 라는 생각도 들었었다. 냥꾼은 에렌 예거처럼 자유를 갈망하는 용감한 아이다. 엄마 아빠가 아닌 다른 사람이 만지려고 할 땐 거침없이 냥냥 펀치를 날리며 자기의 몸을 지킨다. 의진도 냥꾼이에게 몇 번 냥냥 펀치를 맞더니 이제는 그녀에게 쉽게 다가가지 못한다. 냥꾼이가 의진에게 동물적 본성으로 ‘거절’을 이해시킨 거라고 그녀의 공을 치하했다.
두 번째 고양이의 이름은 ‘냥키’. 냥자 돌림으로 이름을 짓고 싶었는데, 마침 아메리칸 숏헤어가 믹스된 고양이라 만들어진 이름이다. 냥키를 데리고 오는 차 안에서 ‘냥키 고 홈’이라는 드립을 쳐도 되는 건지, 냥키라는 말 자체를 써도 되는 건지 조금 조심스러웠다. 그러다 뉴욕 양키스가 떠올라 뭐 괜찮겠지 하며 일단락. 냥꾼이완 달리 뒷글자에 받침이 없어 이름은 냥키 두 글자다.
데려올 때부터 수다쟁이였던 그녀는 4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할 말이 많은 고양이다. 애정표현도 풍부해 엄마 아빠에게 늘 스킨십을 시도한다. 낯선 사람도 잘 가라지 않아 먼저 친근하게 다가간다. 우리 집에 처음 온 손님들은 냥키의 이런 모습에 신기해하며 하염없이 이뻐해 준다. (하지만 여러 번 온 사람들은...?)
냥키는 냥꾼이가 생후 4개 정도 됐을 무렵 우리와 함께 살기 시작했다. 성묘가 된 지금에야 냥키가 제일 덩치가 크지만, 그 당시엔 2개월 정도 빠른 냥꾼이가 냥키를 자주 괴롭혔다. 급기야 냥키의 상태가 안 좋아져 밥도 잘 못 먹고 앓게 되자 그녀를 핥아주며 보듬어주었다(aka. 병 주고 약 주기). 냥꾼이의 정성스러운 병간호로 냥키는 기력을 회복하기 시작했다. 냥키가 낫자 가장 신이 난 건 냥꾼이었다. 냥키를 다시 괴롭힐수 있었으니까. 이제는 괴롭히는 일이 거의 없지만 그때의 트라우마인지 아직도 냥키는 낭꾼에게 꼼짝을 하지 못한다.(제대로 한판 뜨면 우리 둘 다 냥키에게 배팅할 거라 내기를 못 하는 중)
막내인 ‘냥반이’가 처음 집에 왔을 때 냥키가 격리된 케이지를 향해 계속 하악질을 해, 순하기만 한 그녀에게 이런 모습이 있었구나 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니 역시나 서열 최하위. 가끔 냥반이의 시비에 응대하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꼴찌의 삶에 만족하는 분위기다. 냥꾼이와 냥반이는 하루에도 네다섯번은 서열 다툼을 하지만, 냥키는 홀로 평화롭다. 그깟 서열, 너희들이 1, 2등 해, 난 필요 없으니. 츄르 조금 늦게 먹는다고 묘생 크게 바뀌는 건 없다. 다른 고양이들이 좋아하는 공간은 안 가면 그만이다. 갈 때는 많이 있으니까. 어느 주말의 낮, 포근한 햇살이 비추는 소파 위에 누워 배를 훤히 드러내며 잠을 청하는 그녀를 보며, 경쟁과 서열다툼의 무의미를 실감했다. 안분지족이란 이것이었구나.
셋째의 이름이 ‘냥반이’인 이유는 그녀가 브리티시 숏헤어 종이었기 때문이다. 영국은 신사의 나라니까, 신사를 조금 더 한국식으로 표현해 보니 양반이 제격이었다. 분양을 도와주시는 분은 ‘아 진짜 이름을 냥반으로 하시려고요..? 이렇게 이쁜 얘 이름을...’이라며 말끝을 흐렸지만 결정엔 흔들림이 없었다. 냥반이 역시 성을 붙여 부를 땐 ‘황냥반’ 세 글자지만 이름은 역시나 ‘냥반이’다. 그녀가 처음 집에 왔을 땐 언니들과의 체격 차가 제법 났지만 단 한 번도 쫄았던 적이 없었다. 갖은 위협과 하악질에도 굳건히 버텨낸 그녀는 현재 서열 2위를 차지하고 있다. 깡다구뿐이었던 그녀를 단련시킨 건 끝없는 수련이었다.
제법 통통했던 냥반이었지만 캣휠이 생긴 후부터 그녀의 삶은 달라졌다. 처음엔 몇 번 도는가 싶다가 바로 헥헥거렸지만 몇 년이 지난 지금은 캣휠 위를 날라달려도 결코 지치는 법이 없다. 군살은 빠지고 라인은 살아나니 걸그룹 못지않는 몸매를 보유 중이다. 캣휠을 탈 때면 늘 자신을 칭찬해 달라고 야옹 소리를 내는데 ‘우리 냥반이 너무 잘 탄다, 너무 멋지다’라고 머리를 만져주면 그렇게 행복한 표정을 지을 때가 없다. 고양이들에겐 한없이 용맹하지만, 엄마 아빠에겐 사랑을 갈구하며 애정표현을 한다.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밤이 되어 불을 끄고 자리에 누우면, 어김없이 침대 위로 올라오는 고양이의 기척이 느껴진다. 대체 언제 누울 거냐고 한참 전부터 울어댔던 냥키다. 반쯤 눈이 풀린 채 내 몸 위에 올라타 꾹꾹이를 시작한다. 고양이들은 꾹꾹이를 하며 어린 시절 어미의 젖을 먹던 행복한 시절을 떠올린다고 한다. 그릉그릉 한참 기분 좋은 숨을 쉬더니 힘을 빼고 내 몸 위에 눕는다. 그렇게 한참을 지나도 내려갈 생각이 없다. 냥키를 침대에 내려놓고 다시 잠을 청한다. 잠시 뒤에 또 한 마리의 고양이가 찾아온다. 이번엔 냥꾼이다. 양볼을 마사지해주자 그녀 역시 그릉그릉 소리를 낸다. 내 몸에 몇 분 누워있다 그녀가 먼저 잠을 자러 떠난다. 나도 이제는 잠이 든다.
새벽에 잠시 눈을 뜨자 베개 옆에 냥반이가 자고 있다. 냥반이는 숨소리가 아주 커서 코를 골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턱을 만져주고 머리를 쓰다듬어준다. 행복한 꿈을 꾸고 있는지, 기분이 좋아 보인다.
우리 집에 세 명의 사람과 세 마리의 고양이가 산다. 우리 여섯 가족 모두 오래오래 행복하기를 꿈꾸며 다시 잠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