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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지막 네오 Oct 25. 2022

폭력, 인간 본성의 문제

무적의 소니 - 러브, 데스 + 로봇 시즌1(2019)

√ 스포일러가 엄청납니다. 원치 않는 분은 읽지 않으시길 추천합니다.


☞ 러브, 데스 + 로봇(Love, Death + Robot) 시즌1 중에서
무적의 소니(Sonnie’s Edge)
☞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애니메이션 / 18부작 옴니버스
☞ 2019.03.15. 넷플릭스 방영 / 절대 성인용
☞ 작품 관련 이미지 출처 : 넷플릭스


<무적의 소니>의 간단한 줄거리는 이렇다.


주인공 소니는 동료 웨스, 이브리나와 함께 크리처 격투에 참가한다.

부호 디코가 나타나 승부조작을 제시하지만 단칼에 거절하고 힘겹게 승리한다.

제니퍼는 디코의 지시로 소니를 죽이려 하지만 오히려 소니에게 죽임을 당한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애니메이션 시리즈답게 실사에 가까운 섬세하고 화려한 작화가 인상적이다.

뛰어난 상상력으로 이루어진 인물과 크리처의 융합, 짧은 단편임에도 스토리도 짜임새 있고, 숨어있는 메시지도 강렬했다.


<Sonnie’s Edge>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소니가 정신을 동기화해서 전투를 벌이는 크리처 ‘카니보어’는 빠른 스피드와 꼬리와 촉수 끝에 달린 칼날을 이용해 상대를 공격한다. 또한 ‘Edge’는 소니 내면에 자리하고 있는 날카로운 또 다른 칼끝을 의미하기도 한다.


격투 장면은 상당히 잔인하다폭력적 수위가 굉장히 높다선정성 수위도 높은 편이다.


요즘 미국에서 만들어지는 영화나 드라마는 발전한 영상기법과 그래픽 기술을 이용해 섬세하고 세밀한 화면을 제공하고 있지만, 제작사 측에서는 이런 기술적 측면보다 시청자의 뇌리에 강하게 박히는 장면을 더 중시하는 추세다. 이런 추세는 어느덧 경쟁이 붙어 시청자들의 뇌 속을 마약처럼 헤집고 다닌다. 더 강한 자극만이 기존의 자극을 지워낼 수 있다는 것을 그들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시청자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마약중독자가 되고 있는 셈이다.

그런 점을 인식하고 시청하는 것과 아무 생각 없이 이런 강렬한 장면들을 담은 작품을 보는 것과는 중요한 차이를 남긴다는 점을 기억하자.


<무적의 소니>에서 느낀 메시지는 먼저 피해자로서의 여성이다. 소니는 과거에 갱단에게 이용당하고 강간, 폭행까지 당한 후 처절하게 버려진 인물이다.

소니가 ‘카니보어’를 조종해 온통 남성들뿐인 ‘크리처 격투’를 하면서 상대들을 제압해 나가는 이유도 자신이 겪은 공포에 대한 두려움을 증오로 바꿔 ‘가해자로서의 남성’에 분노를 표현하고자 하는, 일종의 사회적 복수인 것이다.


‘돈이면 뭐든지 살 수 있다’는 잘못된 생각을 가진 인물 디코가 승부조작을 제안하며 거액을 제시하지만, 단칼에 거절하는 것도 개인의 자존심이 아니라 바로 ‘가해자로서의 남성’들을 향한 증오와 복수에 대한 의지 때문이다. 디코라는 인물 또한 그 그룹에 포함되는 것이다.


그러나 극 후반에는 이 메시지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폭력의 가해는 성별의 차이로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지시한 사람은 권력자 디코지만, 소니를 해치는 인물은 거짓으로 소니를 유혹한 제니퍼였다.

제니퍼는 소니의 과거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서 알고 있는 상태였지만, 오히려 그것을 소니에게 접근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한다.


상대의 가장 아픈 부분을 이용하는 것은 물리적인 폭력보다 더 나쁜 발상일 수 있다.

소니가 대항할 수 없는 상태가 된 후에도 제니퍼는 아주 잔인하게 소니를 파괴한다. 자발적인 증오 없이 지시받은 것만으로 할 수 있는 행동이 아니다.

제니퍼의 이런 행동은 ‘가해자로서의 여성’인가? 가해자와 피해자의 성별이 같은데 거기에 ‘여성’, ‘남성’을 붙여야만 하는 것인가?


즉, 폭력은 남성이기 때문에 여성을 상대로 가하는 것이 아니고, 여성이기 때문에 남성에게 피해를 입는 것도 아닌 것이다. 성별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 본성에 대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본성 자체가 악한 사람은 상대의 성별이나 나이는 물론이고 종류도 가리지 않는다. 주위에 동물 학대를 일삼는 사람들만 봐도 학대의 명확한 이유를 알 수가 없다. 굳이 이해하려고 생각해낸다면 ‘자신보다 약한 상대’라는 점이다. 결국 ‘악한 인간 본성’을 끄집어내서 벌이는 ‘괴롭힘’ 외에는 달리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말이다.


그 개인 스스로 내면에 키워온 결핍, 불만, 분노 따위가 자라나 만들어진 악한 본성이 원인인 것이다. ‘성범죄’ 또한 같은 이치다. 상대를 존중받아야 할 하나의 인격체로 보는 것이 아닌, 자신의 욕구를 해소할 도구로 보는 잘못된 인성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무적의 소니> 같은 애니메이션을 접했을 때도 받아들이는 메시지가 사람마다 다르다.

누군가는 ‘남성’과 ‘여성’의 입장을 이분법적 시선으로 나눠 비판할 것이고, 누군가는 ‘잔인한 인간 본성’에 초점을 맞추는가 하면, 또 다른 누군가는 ‘좀 더 강하고 자극적인 폭력’으로 응징하는 것을 상상할 것이다.


이처럼 각자 생각이 다르고 느끼는 바가 다르지만, 그 다름을 무조건 개인적 성향으로 인정하는 것에 앞서 보편적 인간상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평화로운 공존을 위해 서로에 대한 배려와 존중에 대한 깊은 고민이 반드시 우선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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