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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지막 네오 Oct 25. 2022

의존하는 인간에 대한 경고

요거트가 세상을 지배할 때 - 러브, 데스 + 로봇 시즌1(2019)

√ 스포일러가 엄청납니다. 원치 않는 분은 읽지 않으시길 추천합니다.


☞ 러브, 데스 + 로봇(Love, Death + Robot) 시즌1 중에서
요거트가 세상을 지배할 때(When the Yogurt took over)
☞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애니메이션 / 18부작 옴니버스
☞ 2019.03.15. 넷플릭스 방영 / 절대 성인용
☞ 작품 관련 이미지 출처 : 넷플릭스


요거트(정확하게는 유산균)가 인간 과학자들의 실험을 통해 천재적인 지적 존재가 되어 인류가 해결하지 못한 각종 문제를 해결하며 유토피아를 이룬다. 요거트에게 전적으로 의지하게 된 인류는 요거트가 지구를 떠날까 봐 걱정한다는 내용으로 끝난다.




이 에피소드는 정말 짧다. 마치 심각한 어떤 문제만 제기하고는 바람처럼 도망가버린 것 같다.

문제는 그 짧은 시간에 던진 숨겨진 문제의 심각성이다.


요거트라는 ‘심각함’과는 거리가 먼 소재를 어울리지 않는 문제와 결합해 황당하게 받아들일 수 있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이 애니메이션에서 요거트는 현실에 실재하는 A.I(Artificial Intelligence, 인공지능)로 대체해서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뒷골이 띵할 것이다.


작품에서 요거트는 과학자들이 지표상 가장 우수한 DNA를 락토바실러스 델브루에키이(요거트 발효균)에 이식하여 천재적인 지능을 갖게 되는 생명체로 묘사된다.

물론 재미있고 황당한 발상이다. 발효균도 살아있는 생명체이니 완전히 말도 안 되는 설정도 아니다.


작품을 조금 자세히 보면 요거트는 단일 개체가 아니라 지능을 가진 집단 개체임을 알 수 있다. 성대도 없이 언어를 구사한다는 것은 과학적으로 따져봐야 하겠지만, 어쨌든 자신들의 요구사항을 말할 때 ‘우리’라는 표현을 쓰기 때문이다.


작품상의 요거트와 실재하는 A.I는 다음과 같은 차이점 및 공통점이 있다.


① 요거트는 이미 존재하던 생명체가 과학적 조작에 의해 지능이 월등해진 것이며, A.I는 컴퓨터와 네트워크 등 첨단기술을 바탕으로 아예 존재하지 않던 것을 인간이 창조한 것이다. 즉, 생명체가 아니다. 이 차이점은 요거트는 사멸 가능성이 있지만 A.I는 끝내 죽음을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② A.I는 기술 발전과 더불어 계속 연구 및 개발되고 있다. 현재 머신러닝(Machine Learning) 단계를 거쳐 딥 러닝(Deep Learning) 단계도 연구되고 있다. 딥 러닝 단계가 완성되는 시점에는 작품 속 요거트의 능력을 상회하는 지능과 한계 없는 확장이 가능할 것으로 판단된다. 유산균은 물리적, 환경적 제한으로 인해 인간 없이는 사멸 가능성이 높다.


③ 둘 다 인간적 감정이 없다. 이 점은 인간에게 유익할 수도 아주 위험할 수도 있다. 감정이 없고 공감을 하지 못하는 지도자는 히틀러나 박정희가 순수한 아기처럼 느껴지게 할 것이다.


지금부터는 요거트를 인공지능으로 대체해 이야기를 풀어보겠다.


인류 사회는 점차 많은 부분에서 A.I에 의존하게 될 것이다. 각종 사회문제부터 경제, 법, 금융, 교통, 의학 등등. 마주해야 하는 많은 결정의 순간마다 A.I의 도움을 받을 것이다.


지금 현재 우리가 인터넷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처럼, A.I에 대한 의존도는 그것을 초과할 것이다.     

이 작품의 마지막에서 경고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의존!’


인간은 원시시대 그 이전부터 자신의 소망을 들어줄 ‘신’을 바랐다. 따라서 신이란 전지전능하고 만능이며 완벽한 존재다.

인간은 자신의 소망을 비춰 ‘신’을 만들어 가면서까지 의지하고 의존하는 나약한 존재인 것이다. 그런 나약한 인간에게 미래의 A.I는 신과 같은 존재가 될 것이다.

스스로 마음을 기탁해 믿음으로 기도하는 신앙과는 다를 수 있지만, 소망하는 바를 실제로 척척 해결해 주는, 실존하는 존재에게 의존하게 될 것은 너무나 뻔한 이치다. 인간 스스로가 자각하지 못할 뿐 이런 의존은 지금도 심각한 상태에 있다.


몇몇 전문가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의존하던 대상이 사라진다고 해도 인간은 풀뿌리처럼 다시 문화를 만들고 삶을 이어갈 것이라고 말하지만, 한 개인이 겪는 커다란 절망과 좌절, 두려움과 상실은 극복하기가 비교적 쉬우나 전체 집단이 주체가 된다면 패닉 상태에서 벗어나는 것은 결코 쉬운 일도, 단순한 문제도 아니다.


온 인류가 더 깊이 생각해봐야만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매우 어렵겠지만 모두가 공감하고,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결론을 도출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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