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이 보장된 나의 집
쓰레기더미 - 러브, 데스 + 로봇 시즌1(2019)
√ 스포일러가 엄청납니다. 원치 않는 분은 읽지 않으시길 추천합니다.
☞ 러브, 데스 + 로봇(Love, Death + Robot) 시즌1 중에서
쓰레기더미(The Dump)
☞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애니메이션 / 18부작 옴니버스
☞ 2019.03.15. 넷플릭스 방영 / 절대 성인용
☞ 작품 관련 이미지 출처 : 넷플릭스
시에서 나온 조사관이 드보르챠크의 쓰레기장을 찾아온다.
주변 개발에 방해가 되니 쓰레기장을 없애야 한다고 말하며 서류를 내민다.
드보르챠크는 조사관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은 후에도 생각에 변함이 없다면 사인하겠노라 말하며 이야기를 들려준다.
온갖 쓰레기가 모여 살아있는 괴물이 되었고, 괴물 ‘오토’가 친구 펄리를 잡아먹었다는 황당한 얘기였다.
조사관은 드보르챠크의 이야기를 무시하고 사인을 재촉하는데, 진짜로 오토가 나타나 조사관을 삼켜버린다.
<쓰레기더미>의 작화는 실사 수준은 아니지만 매우 디테일하게 그려졌다. 때문에 죽은 쥐라던가 질척한 오물의 묘사는 거부감을 끌어내려는 목적을 확실하게 완수하고 있다.
작품의 시작 부분에서 드보르챠크는 쓰레기장을 ‘유일한 나의 집’으로 소개한다. 성경 문구까지 인용해가며 안식처의 평화를 깨트리는 침입자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말도 덧붙인다.
그가 비록 더러운 쓰레기장이지만, 자신의 유일한 안식처임을 자부하는 이유는 잠시 ‘집’의 의미를 생각해보게 한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있어 가장 필수적인 의식주 중에서 주(住)의 역할은 무엇일까?
역사적 관점에서 잠깐 살펴보면, 원시시대부터 사냥으로 식(食)을 해결하던 인간은 맹수나 자연재해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고, 사냥으로 생긴 피로를 풀기 위해 편안하게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다.
의(衣) 또한 기온의 변화나 날카로운 나뭇가지, 가시 등으로부터 몸을 보호하기 위한 필요에서 생겨났다.
초기에는 동굴과 같은 자연적 구조물을 활용했으나, 문명의 발전과 더불어 도구를 사용해 재료를 가공하기 시작하면서 주거의 개념을 갖는 집을 짓게 된다.
즉, 집은 ‘안전 보장’이 가장 핵심이다.
이런 ‘안전 보장’을 전제로 한 집의 이야기로 가장 유명한 작품은 영국 민담 ‘아기 돼지 삼형제’를 각색해 1933년 월트디즈니 애니메이션스튜디오에서 제작한 애니메이션 단편 <아기 돼지 삼형제(The Three Little Pigs)>가 있다.
지금은 어쩌다가 집의 개념마저 ‘투자 상품’이 되어버렸지만, 집의 개념은 한자의 뜻에서도 분명하듯 ‘사는’ 공간이어야 한다. ‘산다’는 개념을 이해한다면 ‘집’을 ‘투자 상품’으로 생각하지는 못할 것이다.
늙은 노인 드보르챠크가 적(?)의 침입에도 느긋할 수 있었던 것은 ‘오토’의 존재 때문이었다.
애니메이션의 특징인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판타지’를 접목한 존재가 바로 ‘오토’다.
가공할 양의 쓰레기더미 속에서 생겨난 생명제(?)인 오토는, 작품에서 먹어치우는 모든 것을 자신의 일부로 흡수해서 물리적인 형체를 갖춘다는 설정이다.
드보르챠크는 작은 강아지 한 마리가 아직 살아있는 채로 오토의 일부가 되어 있는 것을 알게 된다.
이 작은 설정으로 거대한 괴물은 순식간에 드보르챠크의 애완견으로 변한다. 그리고 다른 개들이 그러하듯 집을 지킨 것이다.
사람들은 하나같이 쓰레기를 혐오하지만, 그 쓰레기를 만들어 내는 것은 다름 아닌 자신들임을 알아야 한다. 쓰레기 문제는 이제 인류 전체의 숙제가 되고 있다. 지구 전체뿐 아니라 우주에도 인간이 만들어 낸 쓰레기로 가득하다.
2021년 2월,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한국 SF영화 <승리호(Space Sweepers, 2020)>는 2092년 우주 쓰레기를 청소하는 청소 우주선 ‘승리호’를 배경으로 한다.
미래의 새로운 사업 형태가 될 것으로 예상되는 우주 쓰레기 청소업이라는 소재는 재미있으면서도 긍정적인 아이디어였다.
다행히 아직 우주에는 쓰레기로 고통받는 생명체가 없지만, 지구는 아주 심각한 상황이다.
UN 환경계획의 자료에 따르면 연간 10만 마리 이상의 해양 포유류, 100만 마리 이상의 바닷새가 해양쓰레기로 인해서 죽어가고 있다고 한다.
이렇게 버려진 쓰레기로 인해 죽어가는 동물들, 오염되는 대기, 썩어가는 땅 등 지구 전체가 쓰레기장으로 변해가고 있는 현실이다.
이렇게 방치된 쓰레기 문제는 이제 먹거리에까지 스며들어 인간을 향해 되돌아오고 있다.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