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는 결코 단순한 사고가 아니다
나는 이 참사를 ‘세월호 침몰 방관 사건’이라 불러야 한다고 생각한다. ‘세월호 침몰 방관 사건’은 사고로 배가 침몰했다는데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침몰을 ‘방관’했다는 것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즉 충분히 구할 수 있는 시간이 있었음에도 구하지 않았다는 부분이 핵심이다. 그래야 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여론이 생길 것이고, 책임 소재를 따지는 과정에서 진실이 밝혀지는 것은 자연스럽게 따라오리라 생각한다.
누군가는 세월호 참사를 단순히 ‘교통사고’에 비유해서 말하지만, 세월호 참사는 다른 재난 사고와 분명하게 다른 점이 있다.
1994년 10월에 발생했던 ‘성수대교 붕괴사고’는 총 49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갑자기 무너져 내리면서 발생한 사고임에도 발생 직후 대책본부를 설치하고 소방대, 119 구급대가 출동하여 사상자를 구조했다. 사고 당일 오후 7시, 책임을 물어 서울특별시장이 바로 경질되기도 했다.
또한 1995년 6월에 발생한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는 사망 502명, 부상 937명, 실종 6명의 피해자가 발생했다. 이때도 119 구조대, 경찰, 서울특별시, 대한민국 국군, 정부, 국회까지 나서 범국민적인 구호 및 사후 처리에 나섰다. 포기하지 않고 생존자 수색을 벌인 덕분에 생존자 최명석은 11일, 유지환은 13일, 박승현은 17일(377시간) 만에 구조되기도 했다. 삼풍건설산업 회장을 비롯해 서초구청장 등 사고와 관련되어 기소된 피고인은 총 25명으로 모두 법의 심판을 받았다.
그러나 ‘세월호 침몰 참사’는 304명이 사망하고 172명이 생존했으나, 생존자의 절반 이상은 해경보다 한참 늦게 도착한 민간 어선 등에 의해 구조되었으며, 이후 정확한 참사 원인도 밝혀내지 못했고, 최초 신고도 승무원이 아닌 학생의 신고로 이루어졌다. 해경 소속 헬기 511호와 해경 123정이 먼저 도착했으나 세월호와 교신조차 하지 않았다. 또한 해경은 무슨 이유인지 선장과 선원들만 태워 현장을 떠났다. 생존자들이 전하는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해경은 헬기 1대와 경비정 20척을 투입했지만, 구조했다고 하기보다는 스스로 겨우 탈출한 사람들을 바다에서 주워 담았다고 보는 게 맞다. 그나마도 일반 어민들이 달려와 도와준 덕에 많은 생명이 살 수 있었다. 기울어가는 배를 쳐다만 보면서 골든타임을 다 보내고, ‘가만히 있으라’ 해서 가만히 있던 나머지 사람들을 결국 구하지 않고 방관한 것이다. [참고 : 위키백과]
세월호 참사를 단순한 사고라고 할 수 없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다른 사고기록과 비교해 봐도 이상하지 않은가? 다른 사고는 안타까운 사고로부터 하나의 생명이라도 더 구하려고 노력했고, 즉각 세세한 수사를 통해 사회적 책임을 물어 처벌이 이루어졌다. 반면 세월호 참사는 그렇지 않았다. ‘왜 구하지 않았나?’ 묻는 이들의 입을 틀어막고 여론전을 형성해 핍박했으며, 사회적 파장이 컸던 데 비해 그 누구도 책임지지 않았고*** 의문에 대해 밝혀진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점, 현재도 이상한 여론몰이로 오히려 피해자들을 손가락질해대는 이해할 수 없는 기현상 등, 마치 누군가 뒤에 숨어 조직적으로 은폐·호도하고 있다는 의심마저 든다.
*** 참고 : “세월호 참사 7년, 처벌 어디까지 이뤄졌나… 대부분 무혐의” (CBS노컷뉴스. 2021.04.16.)
그러므로 이는 국가에 대한 국민적 신뢰를 위해서도 당연히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정치 조직에서도 좀 더 책임을 느끼고 국민들이 신뢰할 수 있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도록 힘써야 할 것이다.
또한 세월호 참사는 아픔과 통곡으로 점철된 우리 역사에서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될 또 하나의 비극적인 역사가 되어가고 있다. 왜구나 열강 세력에 침략당해 유린당한 것도 참을 수 없는 슬픔이지만, 더 슬프고 비참할 뿐 아니라 억울하기까지 한 경우는 자국의 군대나 권력에 의해 자행된 폭력이다.
우리나라를 침략해 수탈했음에도 전혀 반성하지 않는 일본을 보면 화가 치밀어 오른다. 그러나 그런 일본에 빌붙어 동족을 팔아넘긴 친일 세력은 더욱 증오스럽다.
책 본문에서 박예나는 이렇게 말한다. “지나가는 사람에게 들은 말은 나중에 잊어버리지만 가까운 사람에게 들은 말은 가슴에 박혀요”라고. 그렇다. 가깝다고 생각한 사람. 지금 현시점에도 ‘가짜뉴스’나 악의적인 의도를 가진 유튜버 등에 의해서 혐오와 증오가 생산·확산되고 있다. 이렇게 생산된 그럴듯한 거짓은 가까운 이웃이나 친구들에게 피해자들을 더욱 소외시키고 경멸하는 시선을 갖도록 만들고 있다.
이렇게 우리 사회에 혐오와 증오가 넘쳐날수록 벌어지는 틈새에서 이익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있다. 대표적인 예를 들면 평소에는 국민을 개·돼지로 보던 자들이 선거 때만 되면 큰절을 하며 표를 호소하는 것을 들 수 있다. 또 혐오를 키워드로 자신의 배를 불리는데 열심인 일부 정치적 성향의 유튜버들이 그렇다. 그 외에도 이루 다 예를 들 수 없을 만큼 많은 기회주의적인 파렴치한 이들이 득세하는 세상이다.
이렇게 현재 우리 사회는 선량하고 건전한 사회 공동체 자체가 위기에 봉착해 있다. 점점 더 배려 없는 사회, 이기적인 사회, 삭막한 사회로 변화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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