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요? 1
살다 보면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생긴다.
대부분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은 생각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살짝만 달리 생각하면 쉽게 이해될 수 있는 것들이다.
그런 차이는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고 느낌이 다르며, 보고 듣고 맛보고 냄새 맡는 하나하나 모두 다르기 때문에 생겨나는 것 같다.
두 사람이 같은 영화를 보고도 서로 느낀 감상이 달라서 영화에 대한 평이 달라진다.
한 사람은 재미있게 봤다고 하고, 다른 사람은 형편없는 영화라고 평한다.
반면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에서는 이쪽도 저쪽도 아닌 ‘중립’을 강조하고 있다.
사실 ‘중립’으로 강조되고 있는 것 자체가 한쪽으로 이미 쏠려있는 것을 합리화하는 방식이지만, 사람들은 ‘중립’이 마치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은, 단어의 뜻 곧이곧대로 ‘공정’처럼 착각한다.
특히 ‘차이’가 명백한 사람들의 대립에서 과연 ‘중립’이 애초에 성립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을 던져봐야 할 것이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있을 때는 물어봐야 한다.
혼자 방식대로 이해한 것을 고집하며 타인의 생각을 무작정 배척하는 것은 올바르지 않다.
이것은 누군가 ‘이렇기 때문에 그렇다’ 하고 정해 놓은 바는 아니지만, 누구에게나 더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는 부분은 분명히 있다.
이렇게 소수 사람의 고집이나 아집보다는 더 많은 대다수의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이해 방식을 따르는 것이 ‘민주적’인 방식이다.
여러 사람이 모여 사회와 국가를 이루고 살면서 함께 진보적인 미래를 이뤄가며 잘 살아가기 위해서, 오랜 역사적 진통 끝에 안착한 방식이다.
그러므로 더 다수의 의견이 전체를 굴러가도록 하는 것이 맞다.
그러나 몇몇 소수의 의견이 다수의 의견보다 강하게 나타날 때가 있다.
힘을 가졌거나 돈을 가졌거나 권력을 쥐었거나. 그런 사람 내지는 세력을 ‘기득권’이라고 한다. 그들의 의견은 소수의 의견임에도 불구하고 항상 다수의 의견을 압도하려 한다.
심지어 자신이 가진 특권을 이용하여 마치 다수의 보편적인 의견인 것처럼 조작하는 경우도 있다.
정보를 가진 사람이 곧 세상을 지배하는 현실인 지금, 여전히 기득권층은 정보를 독점하려 시도하고 비밀스럽고 은밀한 방식으로 자신의 기득권을 지켜내려 하고 있다.
이런 과정에서 이해할 수 없는 상황들이 발생하고, 복잡하고 구체적인 내용을 다 모르는 일반 사람들은 무엇이 올바른 것인지,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구분하지 못하고 혼란스러워하며 갈피를 잡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어린 시절, 학교에서 선생님의 말씀을 듣다가 손을 번쩍 들어 물어본 일이 있다.
“길을 건널 때는 신호등이 푸른색일 때 건너야 해요.”
“왜요?”
“응. 그것은 우리 모두 안전하기 위해서 서로 지키기로 한 약속이에요. 그렇게 정한 약속을 지킴으로써 모두가 안전하게 지낼 수 있어요. 이런 것을 질서라고 해요.”
“아니요. 선생님. 제가 궁금한 것은요… 그러면 질서를 지켰는데도 교통사고로 죽은 사람들은 왜 죽은 거예요?”
“그것은 약속을 지키지 않거나 부주의한 사람들 때문에 그래요.”
“그 사람은 왜 약속을 지키지 않았는데요?”
“그건… 순간적으로 남들보다 먼저 가고 싶었거나, 그래도 된다고 생각한 것이죠. 그래서는 안 되는데 말이에요.”
“그럼… 질서를 지킨 사람만 손해잖아요.”
“음… 우린 모두 함께 살잖아요? 함께 잘 지내기 위해서는 법도 필요하고, 규범이라는 것도 필요해요. 그리고 질서도 꼭 필요한 거예요. 그래서 이것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벌을 줘요.”
“그럼 대통령도 그런 것 다 지켜야 하는 건가요?”
“물론이죠. 대통령이라면 더욱 솔선수범해서 지켜야 하는 거예요.”
“…그런데, 왜 우리 대통령은 안 지켜요? 대통령은 누가 벌을 줘요?”
선생님은 결국 수업 끝나고 따로 남으라고 했다.
내가 수업 시간에 계속해서 하는 질문 때문에 수업에 차질이 생기는 것도 질서를 지키지 않아 다른 아이들에게 피해를 주는 행동이라는 말로 내 질문에 대한 답변을 대신했다.
그날, 처음 질문을 시작했을 때보다 더 많은 궁금증만 생긴 채 왠지 모를 더러운 기분이 되어 집으로 터덜터덜 걸어왔던 기억이 난다.
궁금한 것이 있을 때는 물어보라더니, 정작 물어보니 제대로 대답해주는 어른이 별로 없다는 것을 깨닫는 날이었다.
‘왜 어른들은 솔직하지 못할까?’
‘왜 어른들은 자기들도 지키지 않는 것을 우리에게 지켜야 한다고 가르치는 걸까?’
솔직함의 시작은 궁금한 것을 참는 것이 아니라 묻는 것이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