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요? 10 End
이제 ‘왜요?’하고 묻는 말이 조금은 두렵지 않다.
‘제대로 대답해주지 않는 어른들’은 알고 보니 ‘제대로 대답할 수 없는 어른들’이었다.
제대로 대답하기 싫어서가 아니라 그들도 헤매고 있다.
그들의 어린 시절도 지금 아이들이 던지는 질문과 같은 궁금증으로 가득했었다.
그 질문들은 냉혹한 현실을 담아낸 답변보다 희망찬 현재를 기대하며 던진 이해할 수 없는 현상들에 대한 것이었다.
무엇보다 해맑고 솔직한 질문이었다.
어른이 된 이후, 얽매이게 되는 ‘사회적’ 문제들 앞에 압도되어 질문하는 것을 잊었다. 그래서 오늘날의 어떤 질문은 오래전에 누구나 한 번쯤은 가졌던 의문임에도 마치 생각해 본 일 없는 당혹스러움으로 앞에 선다.
왜 더 똑똑하고 현명하다는 어른들이 서로 대립하고 싸우는지,
(아빠, 저 사람들은 왜 저렇게 싸워요?)
건널목을 건널 때, 손을 들고 오가는 차량을 살피고 조심스럽게 건너라던 어른들은 왜 그보다 훨씬 명료한 질서조차 지키지 않는 것인지,
(분명하게 잘못된 것은 다 아는 것 아니에요? 다 아는 걸 가지고 왜 싸워요?)
거짓말하면 나쁘다고 가르치는 어른들은 왜 표정 하나 바뀌지 않고 날마다 거짓말을 하는 것인지,
(… 그런데, 왜 우리 대통령은 안 지켜요? 대통령은 누가 벌을 줘요?)
진실한 사람이 되라고 말하면서 왜 진실을 말하지 못하고 사는지,
(아빠, 어른들은 거짓말해 놓고 왜 안 했다고 또 거짓말하는 거예요?)
사람은 누구나 평등해야 한다고 가르치면서 왜 서로 차별하고 모욕하는지,
(아빠, 우리 집은 왜 이렇게 가난해요?)
모두가 자유로운 세상이 아름다운 세상이라고 말하면서 왜 모두가 얽매이고 핍박받아야 하는 것인지
(아빠, 저분들은 왜 울어요?)
아마 어떤 사람은 이 질문들이 유치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말 그대로 어린아이들이나 할법한 그런 질문들이니까. 그런데 이 유치한 질문에 당당하고 솔직하게 답할 수 있는 사람은 의외로 적다. 더군다나 아이가 이해하도록 설명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똑같이 태어나 아직 어릴 뿐, 그들도 자라면 어쩔 수 없이 같아질 수밖에 없다고도 말할지 모른다.
인정한다. 직접 보고 경험했으니까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아이들이 갖는 의문이 잘못된 것이 아닌 것은 확실한데, 그들이 어른이 된다는 이유만으로 달라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이 우리가 자라면 부당한 것들을 당연시하게 만드는 것일까?
생각 없이 ‘그냥 세상 이치가 그래’라고 말하기는 편할 것이다. 그런데 거기에 ‘왜요?’라고 토를 달면 현명한 답변을 이어갈 수 있나?
맑은 눈빛을 맞추며 “왜요? 왜 세상 이치가 그런데요?”라고 묻는다면 말이다.
아이들의 질문은 단순하다. 단순해서 어렵다. 언제나 단순함 안에 인간의 삶 전체를 관통하는 철학이 들어있다. 물론 아이들이 철학적인 이해를 바탕으로 하는 질문은 아니지만, 그 질문을 맞닥뜨리는 어른은 분명 당황스러울 것이다.
그 이유를 한번 헤아려보았다.
사람은 완벽하게 마음 편히 살 수는 없다. 그건 분명한 사실이다.
산다는 것 자체가 우여곡절과 이야기니까.
그러나 사람에게 주어진 기본적인 인권과 자유, 평등의 상실 때문에 마음 상해서는 안 될 것 같다. 말 그대로 기본적인 권리는 ‘기본권’이지 않은가!
기쁜 일에는 함께 큰 소리로 웃고,
슬픈 일에는 모두 마음 깊이 운다.
나의 기쁨이 이웃의 기쁨이고,
나의 슬픔을 함께 슬퍼해 줄 때 큰 위로를 받는다.
혼자 사는 게 아니기 때문에 생겨나는 일들이지만
혼자 사는 게 아니기 때문에 치유될 수 있어야 한다.
차이…
살다 보면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생긴다.
대부분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은 생각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약 80억의 다른 생각들이 모여 사는 지구.
누군가는 그런 차이에 ‘중립’을 지켜야 해소될 수 있다고 말하지만
차이에 중립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좋고 나쁨이 있을 뿐, 중립 된 차이가 가능하다면 대립과 갈등은 애초에 발생하지 않을 것이므로.
그것은 헛된 바람일 뿐, 겉치장에 불과한 거짓이다.
차이를 극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어린아이처럼 묻는 것이라 생각했다.
어떤 이익이나 손해를 염두에 두지 않은 솔직한 질문.
마찬가지로 그 어떤 손익을 따지지 않고 솔직하게 답해야 한다.
‘나’의 입장에서 답변하지 말고 ‘상대’의 입장에서 답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런 답을 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상대의 입장이 되어 생각해봐야 한다. 내가 이해하고 있는 언어가 아닌 상대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말해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소통’이 된다.
있는 그대로… 서로 숨기는 것 없이 궁금한 것을 묻고 답하는 것.
바로 이 단순함이 내 생각이자 결론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