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란 무엇인가>를 읽고 #2/10

정확한 단어 사용, 개념 정의 그리고 모순

by 마지막 네오

☞ 본 글에서 인용한 모든 문장은 본서 <공부란 무엇인가>에서 발췌했음을 밝힙니다.




새로운 책을 펼칠 때면 항상 대학 신입생이 되어 쭈뼛쭈뼛 낯선 강의실로 들어서는 나의 모습을 상상해본다. 이 책을 덮을 때쯤엔 내 텅 빈 머리와 가슴에 무엇이 남겨질 것인지 궁금하면서 두근거린다.


나도 한창 청춘일 때는 하늘의 별빛조차 너무 아름다운 진리로 내게 쏟아져 내리는 축복처럼 여길 때가 있었다.

이제 나이가 조금 들어서는 그 시절엔 생각하지 못했던 질문을 던지기도 하는데, 너무 당연하게 여겼던 혹은 맹목적이어서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것 중에, 내가 배우고자 하는 내용을 가르치는 사람, 즉 ‘선생님’ 또는 ‘스승’에 대해서도 생각하고 비판하기 시작했다.


좋은 스승을 만나야 올바른 지식과 지혜를 배울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좋은 스승이란 어떤 스승일까?


내가 살면서 깨우친 것은, 좋은 스승은 사람일 수도 있고, 책일 수도 있고, 경험일 수도 있고, 살아가는 삶 자체일 수도 있고, 나를 둘러싼 자연과 우주를 포함한 그 무엇이라도 될 수 있으며, 심지어 심연 속의 나 자신인 경우도 가능하다는 것을 알았다.

특히 아름답고 좋은 것, 기쁘고 행복한 것들보다는 아프고 괴로운 것, 슬프고 고통스러운 것이야말로 나를 깨우쳐주는 참된 스승임을 깨닫는다.

또한 그 깨달음은 죽는 순간까지 계속되는 새로움이어야 한다는 것도.


이 책의 탁월함은 그중에 ‘좋은 스승과 책’에 대한 ‘좋다’를 어느 정도 충족시켜 준다는 점이다. 탁월함이라 적은 이유는 살면서 좋은 스승이나 좋은 책은 생각보다 만나기 어렵다는 점 때문이다. 적어도 이 책에 적힌 생각과 처신으로 보았을 때, ‘김영민’이라는 교수는 ‘좋은 스승’ 임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는 알 수 없으나, 적어도 그가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생각하고 느낀 바를 기록해 놓은 이 책은 ‘좋은 책’이라 느꼈다.


책 <공부란 무엇인가>의 ‘1부 공부의 길: 지적 성숙의 과정’은 세부적으로 다음과 같은 단락들로 이루어졌다.

명료함은 사람들을 화나게 한다―정확한 단어 사용법
알맞은 이름을 불러다오―개념 정의가 필요하다
세상에 대해 논술문을 쓰기 위해서는―모순 없는 글쓰기
모호함은 때로 권력자의 무기다―논술문에서 피해야 하는 것
말뜻의 사회적 함의―단어와 사회
나도 제목을 붙이는 것이 귀찮을 때가 많다―제목의 효용


‘1부 공부의 길: 지적 성숙의 과정’에서는 이해를 위한 준비를 다루고 있다. 구체적으로 ‘논술문 쓰기’를 위한 부연으로 보인다.

기본적인 소통을 위해 필수적인 글이나 말의 표현에 기본이 되는 단어 사용, 개념, 함의 등을 재미있는 이야기와 예를 들며 쉽게 설명했다.


그 과정에서 얻어야 할 것과 버려야 할 것을 명확하게 함으로써 기초를 다져 성숙의 길로 이어갈 수 있도록 준비시킨다.


‘단어 사용’의 경우, ‘단어를 부정확하게, 그리고 일관되지 않게 사용하는 것’‘조리에 맞지 않는 말의 기본적인 특징’으로 밝히면서 유사어 판별, 맥락에 맞는 사용, 숨겨진 함의 파악의 필요성에 이르기까지 조목조목 설명한다. 또한 정치외교학과 교수님답게, 주로 사용되는 단어를 통해 그 사회를 가늠해 볼 수 있다는 점도 빠트리지 않고 있다.


‘개념 정의’에서는 디아스포라(diaspora, 離散)를 언급하며 ‘경계’에 머무는 모호함을 명확하게 해야 할 필요성을 강조한다.

디아스포라란 “팔레스타인을 떠나 세계 각지에 흩어져 살면서 유대교의 규범과 생활 관습을 유지하는 유대인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후 의미가 확장되어 본토를 떠나 타지에서 자신들의 규범과 관습을 유지하는 민족 집단 또는 그 거주지를 가리키는 용어로도 사용된다.”

[출처 및 참고 : 두산백과 두피디아]


한자 이산(離散)은 ‘이산가족’ 할 때 그 이산이 맞다. 전쟁으로 인해 남북으로 흩어져버린 이산가족 역시 디아스포라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저자는 이 부분에서 김춘수 시인의 <꽃>을 인용하며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단순히 어떤 이름을 부른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죠.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이름을 불러야
비로소 그 이름은 현실이 되지요.”


또한 말의 재정의와 사회 변화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는데, 저자의 생각과 가치관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라 옮겨본다.


“말이 재정의되는 일은 한 사회의 마음이 변화하고 있다는 표시이기도 합니다.
… (중략) …
따라서 입학시험 성적보다는 입학할 때와 졸업할 때를 비교하여,
가장 큰 긍정적인 변화를 일으키게 하는 대학이 좋은 대학일 겁니다.
이런 식으로 좋은 대학을 재정의하게 되는 때가 오면,
이른바 대학의 서열이라는 것도 달라질지 모릅니다.”


‘모순 없는 글쓰기’에서는 ‘모순 없는 사회가 가능할까?’라는 질문으로 시작한다.


모순은 단어가 함의하고 있듯이, 모순(矛盾), 무엇이든 뚫는 창과 무엇이든 막아내는 방패를 뜻한다. 따라서 일단 이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나는 ‘아니오. 가능하지 않다’라고 답변할 것이다. ‘무엇이든’을 빼면 창과 방패는 분명히 존재하는 것이고 기능 또한 틀린 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처럼 우리가 사는 세계는 ‘빛과 어둠’, ‘선과 악’, ‘불과 물’ 등과 같이 대립의 구도에서 존재하는 것들이 있다. 각각의 필요성은 말할 필요도 없으나, 여기에서 주목할 것은 ‘대립’ 구도이다. ‘대립’ 자체가 존재 이유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모순적인 상황이나 모순적인 생각을 벗어나려면 ‘대립’이라는 이분법적인 혹은 흑백논리에 편승해 편협하게 한쪽으로 기울어 생각할 게 아니라 합리적인 판단을 끌어내야 한다. 문제는 그게 쉽지 않다는 것이다. 거기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말을 본문에서 찾아 인용하면 이렇다.


“세상을 자기 희망대로 단순화하지 않았을 때야
비로소 그전까지는 보이지 않던 문제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 (중략)…
공부하는 이가 할 일은,
이 모순된 현실을 모순이 없는 것처럼 단순화하는 것이 아니라
복잡한 모순을 직시하면서 모순 없는 문장을 구사하는 것이다.”


(#3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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