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호함, 사회적 함의 그리고 제목의 중요성
☞ 본 글에서 인용한 모든 문장은 본서 <공부란 무엇인가>에서 발췌했음을 밝힙니다.
모호함이란 이도 저도 아닌 어중간한, 명확하지 않은 상태를 말하는데, 보통 자신에게 주어진 책임을 회피하거나 모면하려는 경우에 인위적으로 선택하기도 한다.
그 경우, 두리뭉실해서 폭넓어 보이는 것 같지만, 알고 보면 아무런 알맹이 없는 허울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 대표적인 예로 정치인들이 사용하는 화법에서 이를 찾아볼 수 있다. 그들은 결과적으로 나타날 어떤 상황에서든 ‘빠져나갈 구멍’을 마련하는 방식으로 모호한 말을 한다.
정치인의 약속, 즉 ‘공약’은 때로는 개인 의지와 상관없이 지키기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는 경우도 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그들의 모호한 화법은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거짓으로 혹세무민하는 말은 결코 용납되어서는 안 될 일이므로 거짓과 모호함은 명확하게 구분해야 할 것이다.
명확화는 중요하다. 그렇다고 모호함을 무시하라는 말은 아니다. 뚜렷하지 않은 모호함은 무조건 배척할 게 아니라 판단되어야 한다. 저자는 이 점을 빠트리지 않고 있다.
모호함은 시인이 시를 쓴다거나, 예술가가 자신의 의도를 숨기면서 해석을 유도하는 경우처럼 필요에 따라 허용되어야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자칫 표현에 담긴 의미를 나중에 자의적으로 조작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 권력자의 강력한 무기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분명하게 구분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 공부하는 입장에서는 자신의 견해를 최대한 명료하게 함으로써 스스로 판별하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앞 단락에서 ‘정확한 단어 사용’에 대하여 이야기했는데, ‘말뜻의 사회적 함의’ 단락에서는 이를 확장해 일반적으로 쉽게 사용하고 있는 말이 사실은 말뜻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사용되는 경우가 많음을 예를 통해 설명하고 있다. 그러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오용되는 단어, 남용되는 단어, 모호한 단어, 다양한 용례가 있는 단어일수록,
신중한 사람들은 해당 단어의 사용을 자제하고,
그 단어를 가능한 한 정확히 정의하고자 든다.
말뜻을 판별하는 일은 한 줄 문장을 쓰는 일을 넘어서,
큰 사회적인 함의가 있다.”
여기에서 ‘사회적인 함의’란 ‘사회를 이루는 모두에게 같은 의미로 이해될 수 있는 속뜻’을 말한다. 따라서 단어는 그대로 사용되지만, 그 단어가 가진 속뜻은 역사적 맥락이나 시대적 흐름에 따라 또는 현실적 이슈에 따라 달리 해석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단순한 한 줄 문장에 포함된 단어라 할지라도 그 단어가 갖는 사회적 함의를 고려해야 한다.
하나의 단어에도 이렇듯 원래의 뜻과 숨겨진 속뜻이 있을 수 있다. 문맥상에서 바르게 쓰기 위해서 또는 바르게 읽어내기 위해서는 이렇게 ‘정확한 단어 사용’과 더불어 여러 가지를 고려해야 한다는 말이다.
특히 긴 글을 짧게 요약하거나 주제를 상징하는 핵심을 한 줄로 나타내는 ‘제목 짓기’의 경우에 이런 이유로 더욱 어렵다. 그런데도 저자는 자기 제자들에게 제목 붙이기를 강조하는데,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제목을 붙이는 것도 지적인 훈련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제목을 붙이는 과정에서, 학생은 자신이 쓴 글의 내용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해볼 수 있다.
그리고 제목 붙이기는 전체와 부분의 관계,
그리고 ‘대표’ 혹은 재현(representation)이라는 개념에 대해
생각해볼 좋은 기회를 제공한다.”
나 또한 글 쓰는 자체보다 글에 제목 붙이는 일이 더 어려운 경우가 많기에, 단락 제목인 ‘나도 제목을 붙이는 것이 귀찮을 때가 많다’에 공감한다. 그러나 긴 단락 제목보다 아래 작게 달린 소제목 ‘제목의 효용’, 그중에서도 ‘효용’이 중요하다. 저자는 제목의 필요성도 말하고 있지만, 보통 제목의 필요성 자체가 효용성의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제목은 ‘주제, 핵심, 함축, 특징, 대표, 명확함, 주목도, 상징성’ 등 한 번에 담아내야 할 게 많다. ‘좋은’ 제목은 짧고 단순하면서도 여기 나열한 의미가 최대한 복합적으로 드러나거나 의도되도록 해야 한다. 아, 쓰면서도 개념 잡는 것조차 머리 아프다.
그래서인지 김영민 교수도 이 단락에서는 주로 예를 들거나 긴 설명 위주로 서술하고 있다. 그중에 글의 핵심으로 보이는 두 문장을 가져오자면 이렇다.
“요컨대, 제목은 내용을 잘 반영하되, 함축적이어야 하고,
함축적이면서 눈길을 끌 수 있어야 한다.”
“이처럼 제목은 중요하다.
제목은 독자의 관심을 환기하고,
일견 모호하고 불투명한 책 내용을 선명히 해줄 수 있고,
다면적인 글 내용에 일정한 방향성을 부여하는 역할을 할 수도 있다.”
(#4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