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의 심화 첫 단계
☞ 본 글에서 인용한 모든 문장은 본서 <공부란 무엇인가>에서 발췌했음을 밝힙니다.
책 <공부란 무엇인가>의 내용으로서 실제 마지막 장인 ‘4부 공부의 심화: 생각의 정교화’에서 주로 다루고 있는 것은 ‘토론’이다.
앞서 공부에 대한 마음가짐으로 시작하여 구체적인 준비와 기초 요소들을 거쳐 자신의 공부(연구)에 대한 결과물을 쓰는 단계에서 이제 발표하고 토론하는 마지막 단계에 접어든 것이다.
먼저 ‘4부 공부의 심화: 생각의 정교화’의 각 단락은 다음과 같다.
논쟁의 여지가 있는 영역에 뛰어들어라―주제 설정
발화의 쾌감에 탐닉하기 전에 생각할 것들―청중과 독자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것이 계획의 특징이지만―연구 계획서 쓰는 법
욕망을 충분히 아는 자, 그럴수록 절제하라―문체에 관하여
멍청한 주장에 대해 멍청한 비판을 하지 않기 위해서―비판의 덕성
자기 견해를 갖는다는 것의 의미―토론의 기술
게으른 사회자가 토론을 망친다―사회의 기술
분석적인 요약문에 필요한 것들―발제하는 법
세미나의 비극을 넘어서―세미나를 즐기는 법
첫 단락인 ‘논쟁의 여지가 있는 영역에 뛰어들어라―주제 설정’은 먼저 주제 설정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주제를 정하는 데 있어, 개인의 충족감을 위해 감당하기 벅찬 주제를 선택한다거나 일반 상식에 부합하지 않는 주제를 선정하는 경우, 합리적인 증거나 반론을 제시하기 어려운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또한 너무 결과가 뻔한 논쟁거리도 피해야 한다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공부의 목적 중 하나는,
논쟁의 여지가 있는(contestable) 영역에서
자신의 입장을 명확히 하고,
그 입장을 남에게 공적으로 설득하는 것이다.”
핵심은 ‘논쟁의 여지가 있는 영역’이다. 이런 영역의 논쟁에서 설득력 있는 주장을 통해 자기 생각을 피력하여 상대와 청중을 설득해 가는 과정이 토론이라 하겠다.
토론에서 나의 주장에만 신경 쓸 것이 아니라 상대의 말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 토론은 일방적인 주장을 펴내며 싸워 이기기 위한 자리가 아니라 서로의 의견을 들어보고 장점을 취합하여 더 나은 의견으로 수렴하기 위한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주제에 대한 상대의 의견을 청취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청중과 독자는 중요하다.
두 번째 단락 ‘발화의 쾌감에 탐닉하기 전에 생각할 것들―청중과 독자’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사람들은 고함을 칠수록 귀를 닫고, 속삭일수록 귀를 기울이는 법.
… (중략) …
자신의 이야기가 허공에 흩어지는 게 아니라
청중이나 독자의 마음에 가닿기를 염원한다면,
자신의 청중이 누구인지를 떠올리고
그 사람을 위해 말하고 써야 한다.”
이 점은 화자나 저자의 입장으로 봤을 때, 매우 중요한 말인 것 같아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문장이다.
이제 주제가 정해졌고, 주제에 따른 청중이나 독자에 대한 판단도 섰다면 이제 자신의 연구에 대한 계획서를 짜야한다.
세 번째 단락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것이 계획의 특징이지만―연구 계획서 쓰는 법’에서는 ‘프러포절(proposal)’로 불리는 계획서 쓰는 법에 대하여 그 의미와 특성을 통해 간략하게 파악해 본다.
계획서는 “일정 정도 작업이 진행되어야 제대로 쓸 수 있는 글” 또는 진행된 작업의 점검 차원에서 쓰는 글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여기에는 ‘해당 분야의 현황에 대한 나름의 이해와 정리가 필요’할 뿐 아니라, ‘자신의 시각을 입힌 스토리’와 어떠한 ‘방법론’을 통해 어떤 결과를 이끌 것인지 생각해야 한다. 또한 ‘자신의 연구가 답이라면 문제는 무엇인지를 생각하고 이를 명시하는 것이 좋다’고 충고하고 있다.
다음으로 ‘욕망을 충분히 아는 자, 그럴수록 절제하라―문체에 관하여’ 단락에서는 ‘문체’를 다루고 있다. 저자는 무엇이 되었든 일단 쓰는 작업에는 문체가 나타난다고 말한다. 말에도 어조가 있듯이.
항간에 논문이나 논술문에서는 문체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지만, 저자는 논문이나 논술문에도 문체는 있으며 역할이 있다고 주장한다.
구체적으로 먼저 비문(非文)의 최소화를 말하고 있는데, 이런 문장을 맞이할 때마다 나도 살짝 찔리는 구석이 있다. 비문은 글의 신뢰성을 떨어뜨리기 때문인데, 글을 많이 써본 사람이라 해도 비문을 골라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또한 과한 표현의 남발이나 너무 건조하게 문법에만 맞춘 형식적인 글도 좋지 않다고 한다. 당연한 얘기지만 글을 쓰는 동안에 생각의 이미지가 넘쳐나거나 너무 부족한 경우에 종종 겪는 일이다.
또 ‘해상도가 높은 글’이라는 표현으로 설명한 부분은 선뜻 이해가 쉽지 않았다. 해상도는 화면이나 2D 이미지에서 사용하는 용어기 때문이다. 그러나 ‘논문’이라는 특성을 고려하면 차후에 학회지 같은 곳에 다른 나라 언어로 쓰일 경우를 감안해서 쓰라는 말로 이해했다. 우리말에만 있는 어휘를 사용한 경우에는 다른 국가의 언어로 표현했을 때 저작자의 의도가 달리 전달될 수도 있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했다.
마지막으로 ‘통제와 자제’를 언급하고 있는데, 가장 쉽지 않은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논술문이라는 형식에 한정해 설명하는 것이라면 고민해 볼 필요는 있을 듯싶다. 그러나 현재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시점에서도 ‘통제와 자제’는 쉽지 않고, 제대로 적용되고 있는지 어떤지조차 가늠하기 어렵다.
글을 쓸 때, 퇴고가 어려운 가장 어려운 이유는, 전체를 다시 읽어볼 때마다 문법적인 오류나 오타 이외에 느껴지는 어색한 문장 때문일 것이다. 반복해서 읽어봐도 문법적 오류는 없음에도 왠지 어색한… 그런 문장을 달리 고치다 보면 전체적인 흐름이 깨져버려 아예 새로 쓰다시피 해야 하는 경우도 생기는 걸 보면, 쓰는 순간의 통제와 자제는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9로 이어집니다.)